[주말을 여는 책]조선 선비들이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가 실종된 사회’의 답을 찾는다

지역내일 2008-12-26
이 황, 유성룡, 박지원의 편지 … 오늘의 아버지를 돌아보는 계기

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김영사

아버지는 없다. 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조영아)’는 ‘아버지가 필요한 자리에는 없고,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있다’고 강조한다. 44세의 아버지는 이 소설에서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를 팔기로 한다. 이른바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다.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으로 보낸 뒤 혼자 집을 지키게 된 주인공(아버지)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인터넷에 ‘아버지를 빌려 드립니다’사이트를 연다. 이 사이트는 돈을 받고 아버지 역을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사이트다. 왜 오늘의 아버지는 아버지를 파는 것일까. 현대에는 진정한 아버지가 없기 때문일까. 의문은 꼬리를 잇는다.
그렇다면 진짜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현대가 잃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럴 때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 된다. 과거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이 궁한 물음에 대답이 될 만한 책이 한권 나왔다. ‘아버지의 편지’(정민·박동욱 엮음, 김영사)다.
조선의 선비들이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들이다. 조선의 쟁쟁한 학자 예술가들이기 전에 아버지였던 이황, 유성룡, 백광훈, 이식, 박세당, 안정복,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선생 등의 자식들에 대한 편지를 한데 묶었다.
이 편지들은 대부분 고담준론(高談峻論)보다는 일상의 문제들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다룬다. 천리만리 먼 곳에서도 아이들의 공부를 걱정한다. 자식들의 하루하루에 관심을 보인다. 조선 시대 아버지의 자리는 확고해 보인다. 조선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겠지만 교육에 관한 아버지의 권한은 강력하고 주도면밀한 것 같다. 조선의 아버지들은 일일이 문제점을 따지고 방법을 제시하는가 하면 확인한다.
반면 현대의 아버지들은 이 모든 것을 통장의 잔고와 연결시킬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기러기 아빠’가 그 대표적인 예이겠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가 어디 아버지만의 책임인가. 그렇다고 가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아버지의 편지’는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아버지에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할만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문서를 살피는 여가에도 때때로 책을 저술하고 혹 법첩을 임서하며 붓글씨 연습을 한다. 너희가 1년 내내 무슨 일을 일삼고 있는 게냐…. 나는 비록 손발이 근질거려 한 것이라 스스로 그만둘 수는 없지만, 너희가 심심하게 날을 지내며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는 생각을 하니 어찌 매우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젊을 적에 이와 같다면 장차 늙어서는 어찌 지내려는 게냐….”
아버지의 꾸지람은 절절하다. 조선 후기의 문인 연암 박지원이 1796년 아들에게 보낸 편지내용 중의 일부다. 이렇게 준엄하면서도 다른 편지에서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낸 소고기 볶음에 대한 반응이 없다고 아들을 나무란다. “소고기 볶음은 잘 받아 아침저녁 찬거리로 했느냐. 어째 한 번도 좋다는 뜻을 보여주지 않느냐”며 “고추장도 내가 손수 만든 것이니, 맛이 어떤지 자세히 알려 달라”고 다그친다. 장대한 기골에 범상의 무서운 표정을 지닌 그의 초상화와는 딴판의 자상함이다.
이 책을 펴낸 정 민교수(한양대)는 “사실 이 책을 엮은 이유가 과거의 자녀교육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세상 사는 이치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으니 그 거울에 비춰보면 오늘이 보이고 또 내일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는 이 책을 엮으며 조선의 아버지와 현재의 아버지의 차이에 눈길을 돌렸다.
“두 시대의 차이라면 교육에 관한한 조선의 아버지가 주도권을 확고히 쥐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이 완전히 어머니의 몫이 된 것과 대비되는 것이지요. 더욱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거나 가족과 식사할 시간조차 없는 주변적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러기 아빠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옛 아버지의 활발한 목소리가 더욱 새삼스럽습니다.”
실제로 편지 속의 조선 아버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대부분 가난을 함께 하면서도 생활이든 학업이든 예술이든 주문과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읽는 것이 옳으며, 그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유배지 제주도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글쓰기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를 담담한 필치로 풀어내기도 한다.
정 민 교수는 “옛글을 읽어 지금과 겹쳐 보는 작업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시간을 준다”고 말한다. 정말 오늘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버지가 실종된 사회’라는 지적과 우려를 우선 아버지 스스로부터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편지’를 한번 읽어보자.

김광원 칼럼니스트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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