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규 (신부. 성공회대 교수)
얼마 전 미사집전을 위해 강화도에 있는 한 시골 교회를 방문하였다. 전국이 가뭄 때문에 모내기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이곳 들녁은 모내기를 끝낸 파릇파릇한 새끼 벼들이 넘실거리는 물 속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래도 강화도에 왔으니 갯벌에 가서 바다구경도 하고, 일년 내내 차 뒤에 두고 다니는 이천원 짜리 낚시대 갖고 망둥어라도 잡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갯벌로 향했다. 5월말의 맑은 날씨에 도취되어 잠시 웃옷을 벗고 낚시에 몰두했다. 넣기만 하면 몇 초가 안가 조그만 두 세 마리의 게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가 하면, 새끼 망둥어들이 입에 바늘이 꿰이기도 전에 지렁이를 물고 놓지 않아 올라오는 것들을 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잡은 게들과 망둥어는 썰물로 빠져나간 고여있는 물에 담가두었다가 모두 살려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 어깨가 햇빛에 타서 빨갛게 익어버린 것이다. 봄햇살이라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실수였던 것이다. 오이를 붙여보기도 하고, 한 수녀님이 주신 알로에를 발라 보기도 하였지만 한 일주일은 화상에 가까운 통증으로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아, 인간처럼 약한 존재가 없구나. 우리가 풀이나, 나무와 같은 식물을 참으로 우습게 보는데, 이들은 한 겨울 내내 영하의 기온도 이겨내고,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고 잎이 나고, 강렬한 햇빛도 이겨내 잎이 마르거나 빨갛게 익어버리지도 않고 초록의 자태를 가을까지 마음껏 보여주고 있구나.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추워도, 조금만 더워도, 그리고 햇빛에 조금만 노출되어도 이런저런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으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말이다. 사람이 땅을 자꾸만 들여다보면 거기서 하늘도 보고 자연도 본다는 것이다. 곧 사람이 땅을 본받는 것이고, 이것은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의 바탕이 이 깨달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폐로 숨을 쉬는데, 저 산과 들의 나무와 풀이 숨을 쉬지 않으면 내 폐가 숨을 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근본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근본에서 멀어지면, 우리의 이기적인 나, 곧 아상(我相)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고, 그것이 삶의 중심을 흐트러뜨리고 세상의 욕심의 바다에서 출렁거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온통 자본주의의 천박한 문화가 인간이 자연과는 동떨어지게 가도록 계속 끌고 가고 있으니, 새삼 자연과 본래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어렵기만 하다. 자연을 존중하고 인권을 존중하여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다행히 우리 고양지역에 많은 시민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각각의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소비자운동, 환경생태운동, 여성인권운동, 러브호텔반대운동, 잉여농산물 나눔, 외국인근로자인권운동, 그 외에 여러 사회복지시설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들을 갖고 돌보고 있음을 볼 때 점차 발전되고 확대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시민운동은 주민들이 단순한 소비자라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권에 관해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자발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운동이다. 이를 위해 지역의 많은 공간들이 개방되어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월마트와 맞은편 도시가스 건물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하여 공간을 일부 열어주고 있으며, 병원과 의원들이 이들을 위하여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아울러 지역신문과 구청, 시청의 공무원 모두가 ‘자연과 인권’에 중심을 세우고 시민운동과 협력과 보완의 방법으로 방향을 세울 때 고양시가 다른 지역들보다도 삶의 질이 높은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미사집전을 위해 강화도에 있는 한 시골 교회를 방문하였다. 전국이 가뭄 때문에 모내기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이곳 들녁은 모내기를 끝낸 파릇파릇한 새끼 벼들이 넘실거리는 물 속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래도 강화도에 왔으니 갯벌에 가서 바다구경도 하고, 일년 내내 차 뒤에 두고 다니는 이천원 짜리 낚시대 갖고 망둥어라도 잡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갯벌로 향했다. 5월말의 맑은 날씨에 도취되어 잠시 웃옷을 벗고 낚시에 몰두했다. 넣기만 하면 몇 초가 안가 조그만 두 세 마리의 게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가 하면, 새끼 망둥어들이 입에 바늘이 꿰이기도 전에 지렁이를 물고 놓지 않아 올라오는 것들을 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잡은 게들과 망둥어는 썰물로 빠져나간 고여있는 물에 담가두었다가 모두 살려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 어깨가 햇빛에 타서 빨갛게 익어버린 것이다. 봄햇살이라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실수였던 것이다. 오이를 붙여보기도 하고, 한 수녀님이 주신 알로에를 발라 보기도 하였지만 한 일주일은 화상에 가까운 통증으로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아, 인간처럼 약한 존재가 없구나. 우리가 풀이나, 나무와 같은 식물을 참으로 우습게 보는데, 이들은 한 겨울 내내 영하의 기온도 이겨내고,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고 잎이 나고, 강렬한 햇빛도 이겨내 잎이 마르거나 빨갛게 익어버리지도 않고 초록의 자태를 가을까지 마음껏 보여주고 있구나.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추워도, 조금만 더워도, 그리고 햇빛에 조금만 노출되어도 이런저런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으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말이다. 사람이 땅을 자꾸만 들여다보면 거기서 하늘도 보고 자연도 본다는 것이다. 곧 사람이 땅을 본받는 것이고, 이것은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의 바탕이 이 깨달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폐로 숨을 쉬는데, 저 산과 들의 나무와 풀이 숨을 쉬지 않으면 내 폐가 숨을 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근본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근본에서 멀어지면, 우리의 이기적인 나, 곧 아상(我相)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고, 그것이 삶의 중심을 흐트러뜨리고 세상의 욕심의 바다에서 출렁거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온통 자본주의의 천박한 문화가 인간이 자연과는 동떨어지게 가도록 계속 끌고 가고 있으니, 새삼 자연과 본래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어렵기만 하다. 자연을 존중하고 인권을 존중하여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다행히 우리 고양지역에 많은 시민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각각의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소비자운동, 환경생태운동, 여성인권운동, 러브호텔반대운동, 잉여농산물 나눔, 외국인근로자인권운동, 그 외에 여러 사회복지시설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들을 갖고 돌보고 있음을 볼 때 점차 발전되고 확대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시민운동은 주민들이 단순한 소비자라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권에 관해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자발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운동이다. 이를 위해 지역의 많은 공간들이 개방되어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월마트와 맞은편 도시가스 건물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하여 공간을 일부 열어주고 있으며, 병원과 의원들이 이들을 위하여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아울러 지역신문과 구청, 시청의 공무원 모두가 ‘자연과 인권’에 중심을 세우고 시민운동과 협력과 보완의 방법으로 방향을 세울 때 고양시가 다른 지역들보다도 삶의 질이 높은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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