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 교수의 이산가족 이야기(37)

남북분단에 일본 책임 있다

지역내일 2001-06-24
그러고 보니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의 일로 동경을 방문하였을 때, 이제 그곳에 눌러 사는 오랜 친구의 안내를 받아 아주 특별한 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일본헌법을 수호하려는 사람들
동경에서도 가장 번화한 빌딩의 숲 속 신주쿠에 듣도보도 못한 뒷골목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 당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마치 멀리 흘러가 버린 세월의 잔해와도 같은 유별난 영역이었다. 그 뒷골목은 네온사인이 휘황한 중심거리에서 도보로 불과 5분밖에 안 걸렸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보존된 역사의 중간, 비좁고 루핑을 얹은 지붕이 낮으며 어째 으스스하기까지 한 그 공간을 찾아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거기서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필자의 친구가 자주 드나든다는, 마치 선술집 같은 그 업소의 주인은 중년고개를 넘긴 여인이었다. 수더분하고 사람 좋아 보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는 나를 위해 '아리랑'을 불러주었는데, 웬걸 그 아리랑 노래는 한국의 원판에도 없는 4절까지의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징병이나 징용을 당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종전후 일본에 남은 사람들의 망향가가 그렇게 4절까지 늘어난 아리랑 노래였던 것이다. 그제야 필자를 안내한 친구는 그 집의 주인이 NHK에도 자주 나가는 일본의 이름 있는 연극인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일본헌법 수호운동을 하는, 곧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제한하는 일본헌법을 준수하자는, 양심적인 일본 문화인 그룹의 일원이라고 소개했다.

분단책임의 근원은 일제의 통치
그리고 필자더러 이 좁은 선술집을 채우고 있는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라고 권했다. 조용히, 때로는 낮은 웃음을 주고받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사람들은, 대개 일본 문화계의 걸물들이었다. 필자는 새로이 눈을 밝힌 느낌으로, 일본 지식인 가운데 역사적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날 필자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강조했던 한가지 사실은, 한반도의 분단에 따른 일본과 세계 열강의 책임문제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의 남북에 진주한 미소양군의 군사적 편의주의에서 오늘날의 남북분단이 시발되었던 것이 아닌가 말이다.
36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다른 민족을 압살한 그 죄과와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던 탄압의 실상은 잠시 보류해두고 생각해도, 일본이 지금의 부유와 번영으로 으스대며 역사의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 도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일본인 가운데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일 뿐, 일본 정치의 중심세력은 지금 역사교과서 수정문제에서 보듯 오히려 과거보다 더한 퇴행의 길로 들어서는 듯 하다. 한술 더 떠서 정치의 최고책임자에 해당하는 인사가 주변국들이 보라는 듯이 공식적인 신사참배를 거론하는 형편이다.
그런가하면 그 와중에서도 '오사카서적'의 경우처럼, 만주사변과 관련해 사용한 '지배'라는 표현을 오히려 '침략'으로 수정하는 용기 있는 출판사도 없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 당국 또는 당무자들은, 일본 정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일본내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문화종사자들을 일깨우는 전략도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남북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활용
동시에 남북 분단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일본과 세계 열강의 책임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방법론과 그것이 증폭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할 터이다.
일찍이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에서 남북 이산가족 재회촉구 범세계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 바로 그 열강의 책임을 내세웠던 것을 상기해 볼 만하다. 그 서명운동은 세계 153개국에서 무려 2120만2192명이 서명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일본의 책임을 묻는 일에는, 북한과 쉽사리 공통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것을 십분 활용하는 것은 일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정체성과 유대감을 확립하는 데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교과서문제든 동아시아국가들의 상호소통 문제든, 여기엔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포함하여 하나의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도 있다. 일본의 역사적 책임이 너무도 분명하기에, 그것을 남북문제를 풀어나가는 지렛대중 하나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국장
/경희대교수 kart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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