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지역내일 2009-01-08 (수정 2009-01-09 오전 7:05:33)
주역강의/ 서대원 지음/ 을유문화사/ 2만 5000원


고달픈 인생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맬 때면 한번쯤 들춰보게 되는 게 바로 주역이다. 가시덤불을 헤치고라도 계속 나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감춰져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길흉화복의 열쇠를 담고 있다는 주역은 다음의 다섯 글자로 시작된다. ‘乾元亨利貞’. 온통 상징과 비유, 그리고 비약으로 이뤄진 본문의 첫 ‘하늘(乾) 편’ 중에서도 첫 글귀다. 과연 무슨 뜻이런가.
보통은 “건(乾)은 크고 형통하고 이롭고 곧으니라”로 해석되곤 한다. 새해 첫날 점괘를 뽑아 건괘(乾卦)가 나오면 일단 “올해는 만사형통”이라는 식으로 간주되는 것도 그런 해석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주역강의’의 저자인 서대원은 첫 대목에서부터 견해를 달리한다. 건(乾)은 하늘의 절대성을 뜻하며, 다음에 이어지는 네 글자는 각각 혼돈(시작)에서 소멸(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별 시기를 의미한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따라서 그는 이 귀절을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풀이한다. 이렇게 해석이 남다른 것은 주역이 개인의 운명을 알려주는 ‘비기(秘記)’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다른 유교 경전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땅한 도리와 처세의 가르침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둘째 줄에 이어지는 ‘潛龍勿用’도 “능력이 모자라면 설치지 말고 때를 기다려라”고 해석한다. 말 그대로 “물에 잠긴 용은 쓰지 말지니라”로 풀이되는 귀절이다. ‘잠룡(潛龍)’을 혼돈 상태에서 아직 덜 갖춰진 상태로 파악한 결과다.
‘하늘 편’의 해석은 “일을 시작할 때가 있고 물러날 때가 있으니, 일을 해내려면 용이 물을 박차고 연못 위로 떠오르듯 과감하게 일어서야 할 것이다”라고 좀더 이어진다. 일을 이루려면 타인과의 소통이 중요하며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지 말 것도 당부한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오랫동안 역술인으로 지내왔다는 사실부터가 눈길을 끈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적어도 동양철학을 학문적으로 섭렵한 정통 학자는 아니다. 주역을 머리맡에 두고 틈틈이 읽으면서 번뇌와 천착으로 터득한 나름대로의 깨달음이다.
더욱이 이 책은 지금껏 수두룩하게 나온 다른 해설서들에 비해 해석이 명쾌하다. 그동안 주역을 점술과 연관짓다 보니 해석이 어려웠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 부분을 떼어냈다. 이 책은 주역을 이루는 본문, 괘상(卦象), 십익(十翼) 가운데서도 본문만을 다루고 있다.
주역에서 점을 치는데 주로 쓰여지는 것은 8괘, 또는 64괘를 다루는 괘상 부분. 그러나 그 내용이 본문과 서로 겉도는 대목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뒷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점술 목적으로 이리저리 덧붙여졌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기도 하다.
대학, 논어, 맹자, 중용과 더불어 시경, 서경과 함께 사서삼경을 이루는 주역이 오늘날 점술책으로 더 널리 인식되는 것도 괘상 때문이다. 하지만 주역으로 운세를 읽고자 하는 것은 화투짝으로 일진을 따져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저자는 주역이 점치는 데나 쓰는 책이 아니라고 거듭 주장한다. 30년도 넘게 역술가로 활동해 온 나름의 결론치고는 뜻밖이다. 점괘를 찾기보다 실천적 지혜를 강조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야만 주역이 제시하는 드넓은 세계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해석에 의해 그 다음 내용을 계속 따라가 보자. 본문 두번째 편인 ‘땅(坤) 편’은 “나아가 뜻을 펼치니 처음은 혼미해도 끝내 뜻을 얻으리라”며 쉽게 포기하지 말 것을 권유하면서 “큰 정치인도 상생의 도리를 어기면 모리배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은 민심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며 작은 청탁이나 뇌물로 큰일을 그르치지 말 것을 깨우쳐 준다. “다스리는 사람은 많지만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개탄하면서 간계와 술수를 부려서는 안된다고도 강조한다.
뒷부분의 해석도 처세의 가르침을 전하기는 비슷하다. 얄팍한 학문으로 득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며, 마른 밥찌기를 위해 양심을 팔지 말 것이며, 진정한 사랑의 열매는 지혜로운 자만이 맛볼 수 있다는 등등.
이밖에 화려한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돌보지 않는 현실을 꾸짖기도 한다. 욕심을 버린 무망(无妄)의 삶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땀방울로 얼룩진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과 용기에도 관심과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슴을 울리는 것은 “때가 되면 뿌리치고 떠나가는 것이 어디 젊음이나 권력 뿐일까”라는 귀절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밝음이 다하면 어둠이 오기 마련인 것을. 그것이 삼라만상 불변의 이치이며 섭리다.
하지만 어둠이 걷힌 뒤에는 또다시 여명이 찾아오는 법. 당장 시절이 어렵다고 가슴만 치며 한탄할 것이 아니라 띠풀이라도 엮으며 새롭게 밝아오는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가르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해간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멈춘 듯이 움직이고 혼돈에 휩싸인 듯하면서도 어느새 일정한 원리에 따라 바뀌어간다. 우주 만물이 그렇고 우리의 인생 또한 다르지 않다.
이처럼 만물이 변화해가는 음양 원리를 바탕으로 처세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 주역이다. 과거 5천년 동안 동양 고전의 으뜸으로 꼽혀 왔던 지혜의 곳간이기도 하다. 그 옛날, 공자도 주역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번이나 끊어지도록 탐독했다는 고사가 전해질 정도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면서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요즘이야말로 주역을 읽기에 더 없이 좋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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