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하는 일자리의 시대
/ 박태웅 열린사이버대학교 부총장
후대의 역사가들은 21세기의 초입을, ‘일자리가 멸종해가는 것을 전세계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게 된 첫 번째 시기’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일자리들이 남극의 얼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라져가는 일자리는 특히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을 직접 타격한다.
유럽에서는 ‘700유로 세대’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한달에 700유로(약 126만원)를 받고 임시직으로 일하는 30살 미만의 청년 세대를 말한다.
지난해 12월 그리스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스페인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번졌던 대규모 시위의 배경도 이들 ‘잃어버린 세대’들의 실업이었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전체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7.1%지만, 25살 이하 청년들의 실업률은 평균 15.9%로 그 배가 넘는다. 한국에는 그보다도 못한 ‘88만원 세대’가 있다.
끊임없이 ‘성장’만을 도모하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원인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져야, 즉 보다 적은 사람으로 보다 많은 상품을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수요’다. 물건은 갈수록 더 많이 만들게 되는데,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준다. 월급을 받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내부 유보금을 갈수록 늘리고 있는 것은, 이런 문제의 해결이 이제는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상공회의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543개 제조업체의 사내유보율은 600%를 넘은 347조원이다. 큰 곳일수록 더해서, 매출액 100대 기업은 722%, 상장기업 주식가격 순위 30위권은 무려 1015%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그저 쌓아두고 있다.
미국과 유럽쪽도 사정이 비슷하다. 금융위기가 있기 전 미국 기업들의 이익의 절반 이상이 금융시장 거래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물경제에 기반하지 않은 채 홀로 부풀어오르던 거품이 결국 부피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 이번 금융 위기의 속내다.
문제가 ‘생산’쪽이 아니라 ‘수요’쪽에 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 보인다. 정규직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저임금 임시직이 그 자리를 채워 ‘유효수요’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임시직 일자리를 더 늘린다는 게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가령 정부가 청년실업대책의 ‘야심작’으로 소개한 대학생들의 미국연수취업프로그램이 그렇다. 연간 최대 5000명의 대학생들에게 어학연수와 인턴취업, 여행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최소한 2000만원이 있어야 지원할 수가 있고, 그래서 얻게 될 자리가 ‘인턴’이다.
대규모 토목공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중장비로 일을 하는 토목 건설현장에서 생기는 일자리는 대개 한시적인 임시직이다. 정부지출의 파급효과를 다룬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를 봐도 건설부문보다는 교육과 보건부문에 투자할 때 소득창출액이 더 많았다.
수요에 초점을 맞춰보면, 사회서비스가 우리나라에 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은 전체 서비스업 가운데 20.2%에 그친다. 스웨덴의 43.9%나 미국의 32.4%에 견줘 턱 없이 적다. 사회서비스에 재정을 투입하면 특히 육아 여성·노인·기초생활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갈 수 있고, 복지정책의 기반을 닦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수는 대략 320여만명, 한 학기 등록금은 평균 350만원쯤이다. 곱하면 11조4000억원 안팎이다. 소득이 낮은 3분의 1의 대학생들을 전액 무상으로 대학교를 다니게 해주는데 6조원이면 충분하다.
학자금 대출 연체자가 3만2000여 명에 달하고, 보증자가 67만여 명에 달한다. 교육투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저소득층 청년에 대한 지원은 사회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유효수요를 늘리는 데도 좋다.
언제까지나 청년들이 공포에 질린 채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위한 성장’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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