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모범적인 준법정신을 보여야
최임식 한국노총 노사대책국장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비로소 날개짓을 시작한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법철학 강요’(1821) 서문에 나오는 명구절이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서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다. 왜 황혼에야 지혜가 움틀까? 세상의 모든 혼란은 바둑과 같아서‘그때 거기서’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혼란의 종말과 동시에 비로소 객관적인 관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松柏)의 청청함을 알 수 있다는 세한도(歲寒圖)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실체와 주장의 정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사회의 숙명적인 보수화를 온상으로 여론을 짓누르는 유력 언론사에 막힌 ‘어린 백성들’의 언로는 인터넷 공간 외에는 어디 있는가? 네티즌들의 다양한 여론을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과연 얼마나 수용해 줬는가? 정권은 네티즌들의 글을 단순한 해우소라고 지켜봐줄 수 있는 여유도 없단 말인가? 머슴처럼 국민을 섬기겠다는 그 충심은 어디가고, 온갖 감시와 압박으로 국민들을 통제하겠다는 기제만 난무하고 있다. 속도전과 ‘돌격앞으로’에는 절차와 협의는 없고 오로지 ‘리더십’만 있다.
우리 사회의 조급증과 옹색함은 정치공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말 그렇게 중요하고 긴급한 법률들이라면 차분히 준비하고 미리미리 국민과 야당을 설득했어야 한다. 국회는 개개 법률들이 여야협상의 대상이지만 이해관계자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절체절명의 주제가 된다. 법률 처리과정은 피를 말리는 긴장의 순간이고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생업을 전폐하고 챙겨봐야 할 문제이다. 그런 법률들을 그냥 단숨에 해치우겠다는 발상에 과연 국민들은 안중에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강행처리 시도가 무산된 뒤 가벼운 농담처럼 국민에게 사과하고 바로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놓은 뒤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는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줄줄이 외유에 나가거나 준비하고 있다. 원내대표들이 TV쇼에 나와서 그야말로 ‘쇼’를 하는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국회는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의장 말대로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 여당 원내대표는 빨간 점퍼와 빨간 넥타이로 무장하여 의장에게 불법적인 직권상정을 압박할 게 아니라 85개 법안 하나하나를 면밀히 따져보고 국민의견 수렴, 전문가 검토·성실한 협의 등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지켜야 한다. 특히 가장 기초적인 공청회는 반드시 열어야 한다. 국회법은 제정법이나 전면 개정법은 반드시 공청회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경제회생을 위한 긴급법률일수록 이들 절차는 꼼꼼히 챙겨야 한다. ‘청부입법’의 비난을 받는 법안일수록 국회의 정책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국회법 59조의 법안 성숙기간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의장은 위원회 심사 후 최소 1일 뒤 본회의에 상정하는 인내심은 가져야 한다(국회법 93조의2). 아무리 급해도 상임위원들이 법안목록도 모르고, 법안을 통과시킬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읽어보지도 않고 통과시킬 수는 없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법을 만드는 주체가 법을 어길 때 국민들의 준법정신은 기대할 수 없다. 정부당국이 은행에게 외환매입을 자제하라고 분명히 압력을 가했지만 ‘문서행위’가 없었다며 강요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검찰이 그 장단에 춤추며 미네르바를 구속했다. 그런데 입법부는 자신이 만든 법을 아무런 고민없이 가볍게 위반하면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순이 모순을 부르는 악순환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국회가 가장 모범적인 준법정신을 보여 주어야 스스로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 눈비를 맞으며 국회를 지키는 해태는 법을 지키는 표상이지 편법과 탈법의 상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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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 한국노총 노사대책국장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비로소 날개짓을 시작한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법철학 강요’(1821) 서문에 나오는 명구절이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서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다. 왜 황혼에야 지혜가 움틀까? 세상의 모든 혼란은 바둑과 같아서‘그때 거기서’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혼란의 종말과 동시에 비로소 객관적인 관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松柏)의 청청함을 알 수 있다는 세한도(歲寒圖)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실체와 주장의 정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사회의 숙명적인 보수화를 온상으로 여론을 짓누르는 유력 언론사에 막힌 ‘어린 백성들’의 언로는 인터넷 공간 외에는 어디 있는가? 네티즌들의 다양한 여론을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과연 얼마나 수용해 줬는가? 정권은 네티즌들의 글을 단순한 해우소라고 지켜봐줄 수 있는 여유도 없단 말인가? 머슴처럼 국민을 섬기겠다는 그 충심은 어디가고, 온갖 감시와 압박으로 국민들을 통제하겠다는 기제만 난무하고 있다. 속도전과 ‘돌격앞으로’에는 절차와 협의는 없고 오로지 ‘리더십’만 있다.
우리 사회의 조급증과 옹색함은 정치공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말 그렇게 중요하고 긴급한 법률들이라면 차분히 준비하고 미리미리 국민과 야당을 설득했어야 한다. 국회는 개개 법률들이 여야협상의 대상이지만 이해관계자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절체절명의 주제가 된다. 법률 처리과정은 피를 말리는 긴장의 순간이고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생업을 전폐하고 챙겨봐야 할 문제이다. 그런 법률들을 그냥 단숨에 해치우겠다는 발상에 과연 국민들은 안중에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강행처리 시도가 무산된 뒤 가벼운 농담처럼 국민에게 사과하고 바로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놓은 뒤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는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줄줄이 외유에 나가거나 준비하고 있다. 원내대표들이 TV쇼에 나와서 그야말로 ‘쇼’를 하는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국회는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의장 말대로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 여당 원내대표는 빨간 점퍼와 빨간 넥타이로 무장하여 의장에게 불법적인 직권상정을 압박할 게 아니라 85개 법안 하나하나를 면밀히 따져보고 국민의견 수렴, 전문가 검토·성실한 협의 등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지켜야 한다. 특히 가장 기초적인 공청회는 반드시 열어야 한다. 국회법은 제정법이나 전면 개정법은 반드시 공청회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경제회생을 위한 긴급법률일수록 이들 절차는 꼼꼼히 챙겨야 한다. ‘청부입법’의 비난을 받는 법안일수록 국회의 정책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국회법 59조의 법안 성숙기간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의장은 위원회 심사 후 최소 1일 뒤 본회의에 상정하는 인내심은 가져야 한다(국회법 93조의2). 아무리 급해도 상임위원들이 법안목록도 모르고, 법안을 통과시킬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읽어보지도 않고 통과시킬 수는 없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법을 만드는 주체가 법을 어길 때 국민들의 준법정신은 기대할 수 없다. 정부당국이 은행에게 외환매입을 자제하라고 분명히 압력을 가했지만 ‘문서행위’가 없었다며 강요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검찰이 그 장단에 춤추며 미네르바를 구속했다. 그런데 입법부는 자신이 만든 법을 아무런 고민없이 가볍게 위반하면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순이 모순을 부르는 악순환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국회가 가장 모범적인 준법정신을 보여 주어야 스스로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 눈비를 맞으며 국회를 지키는 해태는 법을 지키는 표상이지 편법과 탈법의 상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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