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 차이에 업계 이익 대변하는 태생적 한계도
(어깨)금융권 양대 싱크탱크 금융연구원·증권연구원
은행권 ‘20년 관록’ 대 자본시장 ‘패기’
지역내일
2009-03-04
(수정 2009-03-04 오전 8:06:10)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금융산업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전례 없는 금융위기와 맞물려 넘쳐나는 갖가지 현안으로 금융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을 분석하고 판단해 금융시장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금융 연구기관들의 존재감이 새삼 크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금융연구원과 증권연구원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올해로 각각 설립 18주년을 맞는 금융연구원은 은행권을 비롯해 금융시장 전반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 연구기관이다. 1997년 설립된 증권연구원은 비교적 후발주자임에도 자본시장법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성과를 내면서 금융연구원의 위상을 바짝 뒤쫓고 있다. 두 연구원은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대립 하며 국내 금융계의 양대 싱크탱크로 자리잡고 있다. 규제완화, 금융개방부터 외환위기,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까지 국내 금융시장의 주요 사건에 대한 논의 중 적지 않은 부분은 이들 연구원이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주름잡은 ‘20년 관록’ =
금융연구원은 전국은행연합회 내부 금융연구소를 확대개편하면서 1991년 박사급 연구위원 6명으로 조촐하게 발족했다.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 압력이 점점 거세지던 시기였다. 박재윤 초대 원장은 1992년 “외국은행들의 대형화 등 경영여건의 변화는 국내 은행 간 합병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며 처음으로 시중은행 합병 문제를 공론화했다.
1992년 초 정부가 금융산업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제도개편 연구에 착수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금융부문 개혁과제에 관한 연구 대부분은 금융연구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이들 연구의 과제에는 금리자유화를 비롯한 규제완화와 금융기관 합병을 통한 대형화, 구조조정, BIS 국제감독체계 등 오늘날 현실화된 내용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특히 금융연구원은 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은행간 통폐합 연구에서는 한미은행과 지방은행, 신한은행과 조흥은행 등의 합병을 점치면서 해당 은행들의 반발을 사고, IMF 구제금융이 있기 1년 전부터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증권연구원은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출범했다. 설립 초기에는 ‘외국인 투자영향 분석’ ‘증권설계를 통한 기업갱생제도 개선방안’ ‘코스닥시장의 위상 재정립과 효율화 방안’ 등의 보고서를 내며 자본시장 추스르기에 나서던 증권연구원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다. 2004년 6월 신보성 금융투자정책실장은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 심포지엄에서 자통법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금융시장을 이끌어 가는 두 축은 자본시장과 은행”이며 “은행은 보수적, 전통적 사업을 선호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혁신산업의 발전은 자본시장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괄주의, 기능별 규제, 겸업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증권연구원의 안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2007년 통과된 자본시장법은 결국 지난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이를 준비하는 동안 10명 내외였던 박사급 연구원은 28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자본시장 육성’에 한 목소리 … ‘팔 안으로 굽는’ 태생적 한계도 =
금융연구원과 증권연구원은 서로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도 반대하기도 하면서 우리 금융시장 역사에 기여해 왔다.
이들은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을 위해 함께 금융시장 통합 방안을 연구하면서 자본시장 육성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자본시장법도 일견 이 연구의 부분적 성과에서 출발한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 기관 모두 자기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도 보인다. 이번 자본시장통합법 일부 내용을 놓고 엇갈리는 주장을 내놓았을 때가 대표적이다.
자본시장법의 시행을 앞둔 지난해 말까지 두 연구원은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허용 여부와 겸업 허용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금융연구원은 “증권사의 건전성 규제 및 위험관리에 문제가 있다” “자산운용업과 신탁업은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두 사안에 대해 계속 반대를 했다. 근거가 없지는 않으나 당장 고객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은행권의 속내가 읽힌다. 반면 증권연구원 측은 “고객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하다” “기본 방향이 옳으므로 문제가 확인되면 보완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시장을 은행권만큼 키우기 위해서는 ‘파이’ 독식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두 연구원이 가진 태생적 한계로 풀이된다. 금융연구원은 은행들의 공동출자로, 증권연구원은 증권유관기관과 10대 증권사로부터 받는 회비로 운영된다. 재원이 업계에서 충당되는 탓에 업계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성향 차이도 있다. 정부 지분이 많은 주요 은행의 출자를 받다보니 금융연구원은 보수적인 의견을 표하는 일이 잦다. 반면 증권사들은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증권연구원 역시 보다 시장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편집자 주
올해로 각각 설립 18주년을 맞는 금융연구원은 은행권을 비롯해 금융시장 전반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 연구기관이다. 1997년 설립된 증권연구원은 비교적 후발주자임에도 자본시장법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성과를 내면서 금융연구원의 위상을 바짝 뒤쫓고 있다. 두 연구원은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대립 하며 국내 금융계의 양대 싱크탱크로 자리잡고 있다. 규제완화, 금융개방부터 외환위기,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까지 국내 금융시장의 주요 사건에 대한 논의 중 적지 않은 부분은 이들 연구원이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주름잡은 ‘20년 관록’ =
금융연구원은 전국은행연합회 내부 금융연구소를 확대개편하면서 1991년 박사급 연구위원 6명으로 조촐하게 발족했다.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 압력이 점점 거세지던 시기였다. 박재윤 초대 원장은 1992년 “외국은행들의 대형화 등 경영여건의 변화는 국내 은행 간 합병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며 처음으로 시중은행 합병 문제를 공론화했다.
1992년 초 정부가 금융산업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제도개편 연구에 착수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금융부문 개혁과제에 관한 연구 대부분은 금융연구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이들 연구의 과제에는 금리자유화를 비롯한 규제완화와 금융기관 합병을 통한 대형화, 구조조정, BIS 국제감독체계 등 오늘날 현실화된 내용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특히 금융연구원은 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은행간 통폐합 연구에서는 한미은행과 지방은행, 신한은행과 조흥은행 등의 합병을 점치면서 해당 은행들의 반발을 사고, IMF 구제금융이 있기 1년 전부터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증권연구원은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출범했다. 설립 초기에는 ‘외국인 투자영향 분석’ ‘증권설계를 통한 기업갱생제도 개선방안’ ‘코스닥시장의 위상 재정립과 효율화 방안’ 등의 보고서를 내며 자본시장 추스르기에 나서던 증권연구원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다. 2004년 6월 신보성 금융투자정책실장은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 심포지엄에서 자통법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금융시장을 이끌어 가는 두 축은 자본시장과 은행”이며 “은행은 보수적, 전통적 사업을 선호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혁신산업의 발전은 자본시장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괄주의, 기능별 규제, 겸업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증권연구원의 안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2007년 통과된 자본시장법은 결국 지난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이를 준비하는 동안 10명 내외였던 박사급 연구원은 28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자본시장 육성’에 한 목소리 … ‘팔 안으로 굽는’ 태생적 한계도 =
금융연구원과 증권연구원은 서로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도 반대하기도 하면서 우리 금융시장 역사에 기여해 왔다.
이들은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을 위해 함께 금융시장 통합 방안을 연구하면서 자본시장 육성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자본시장법도 일견 이 연구의 부분적 성과에서 출발한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 기관 모두 자기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도 보인다. 이번 자본시장통합법 일부 내용을 놓고 엇갈리는 주장을 내놓았을 때가 대표적이다.
자본시장법의 시행을 앞둔 지난해 말까지 두 연구원은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허용 여부와 겸업 허용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금융연구원은 “증권사의 건전성 규제 및 위험관리에 문제가 있다” “자산운용업과 신탁업은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두 사안에 대해 계속 반대를 했다. 근거가 없지는 않으나 당장 고객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은행권의 속내가 읽힌다. 반면 증권연구원 측은 “고객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하다” “기본 방향이 옳으므로 문제가 확인되면 보완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시장을 은행권만큼 키우기 위해서는 ‘파이’ 독식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두 연구원이 가진 태생적 한계로 풀이된다. 금융연구원은 은행들의 공동출자로, 증권연구원은 증권유관기관과 10대 증권사로부터 받는 회비로 운영된다. 재원이 업계에서 충당되는 탓에 업계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성향 차이도 있다. 정부 지분이 많은 주요 은행의 출자를 받다보니 금융연구원은 보수적인 의견을 표하는 일이 잦다. 반면 증권사들은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증권연구원 역시 보다 시장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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