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으로 날새는 대한민국 국회
날치기→몸싸움→점거 악순환 … 법안 2785개 먼지 쌓인 채 대기
지난해 12월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박 진 위원장과 한나라당 위원 11명은 외통위 회의장을 걸어잠궜다. 한미FTA비준안 상정에 반대하는 야당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뒤 자기들끼리 비준안을 상정하기 위해서였다. 날치기가 감행된 것이다.
민주당은 외통위 회의실에 진입하기 위해 해머와 망치, 톱을 동원했다. 소화기가 등장했고 욕설이 난무했다. 세계언론이 난장판이 된 한국국회를 보도했다.
이후 여야는 국정과 법안을 뒤로 한 채 끝없는 정쟁으로 돌입했다. 같은달 19일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실과 외통위 회의실을 점거하더니 26일엔 극비작전을 통해 국회 본회의장을 점령했다. 여당의 단독처리를 몸으로 막겠다는 의지였다.
이 과정에서 국회 사무처는 본회의장 탈환을 시도했다가 야당 의원 및 당직자들과 거친 몸싸움을 빚었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민노당 강기갑 대표는 국회의장실과 사무총장실로 진격해 거칠게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했다.
여야 대치는 2월 국회에서도 재연됐다. 여야가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3월 1일 이번엔 여당인 한나라당이 본회의장 앞을 점거했다. 사상초유의 사태였다. 야당에게 본회의장을 뺏겨 법안을 처리할 수 없었던 1월의 악몽을 재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몸싸움도 재연됐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당직자에게 폭행 당해 병원으로 실려갔고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넘어졌다.
18대 국회는 출발부터 파행이었다. 의장단 선출과 원구성 협상이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3개월 가까이 출범이 늦어졌다. 그동안 의원들은 아무 것도 못하고 세월만 축냈다. 9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가까스로 넘긴 국회는 연말부터 법안처리를 놓고 다시 충돌을 빚었고 제대로 한 일도 없이 총선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18대 국회 들어 4052개의 법률안이 제출됐지만 1277개만 처리(가결 부결 폐기 철회)되고 나머지 2785개는 국회 창고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다. △대중교통육성법 △항공기소음 피해지역 지원법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법 △중소기업 제품구매촉진법 △재래시장 육성법 △고령자주거 안정법 등 서민에게 시급한 민생법안들이 싸움만 일삼는 게으른 국회 때문에 빛을 못보고 있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18대 국회도 시작 첫 해부터 날치기와 망치, 몸싸움으로 점철되면서 과거 국회를 반복하고 있는게 현실”이라며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실망이 극대화되면서 대의정치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싸움만하는 국회로는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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