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지역내일 2009-03-16
최근 모 건설사가 분양하는 복합 주거타운의 이름이 ‘경희궁의 아침’이라 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건설사는 이곳이 백두대간의 정기가 모여 왕이 태어난다는 ‘용맥’이며 조선시대 왕궁터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경희궁은 서울의 우백호인 인왕산 자락에 기대어 자리잡았다. 산줄기로는 백두대간 철령에서 대성산―백운산―운악산―도봉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한 지맥이요, 더 자세히 보면 북한산 보현봉에서 형제봉을 거쳐 북악산―인왕산―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바로 안쪽이다.
이 산줄기는 서대문―남대문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이 축선을 따라가면 사직단과 경희궁, 덕수궁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어 옛 선조들의 풍수지리 개념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은 도로와 온갖 건축물로 제각기 단절된 생태섬이 돼 버렸지만, 원래 인왕산과 사직단, 경희궁, 덕수궁은 거대한 녹지대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늦은 저녁이면 경희궁 뒤편 숲에는 천연기념물 324호로 지정된 <소쩍새>가 날아와 선명한 울음을 토해낸다.

임란 이후 궁궐을 재건한 광해군
16세기에서 17세기 전반을 지나면서 흔히 ‘양반’으로 지칭되던 - 양반의 한 축인 무반(武班)들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지만 용어는 그대로 쓰였다 - 사대부들의 정치·사회적 위상은 한층 높아진다. 집권 사대부들의 권세가 커질수록 당연히 왕권은 약해졌다.
중종(1506∼1544) 때 기록을 보면, 왕이 경회루 지붕을 청기와로 덮으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미 근정전과 사정전이 청기와로 되어 있었으나 신하들이 비용이 많이 든다고 반대했던 것이다.
조선 초 새로운 왕조의 상징물로 지어졌던 궁궐들은 16세기 이후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도성 안의 3대 궁궐이 모두 불에 탔고 새로 궁궐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이 복구되어 250년 동안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되었음은 지난 3월23일자 <창덕궁> 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경희궁은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1608~1623) 때 지어졌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궁궐을 새로 짓는 일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점점 노골화되어가는 사대부들 간의 권력다툼 속에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과정에서 풍수가들의 말에 따라 도성 안에 새로 2곳의 궁궐을 지었다.
창경궁 중건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1616) 광해군은 인왕산 아래 사직단 뒤편에 새로운 궁궐인 인경궁(仁慶宮)을 지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정비되기는 했어도 이궁(離宮)으로 궁궐이 하나 더 필요했으므로 이 공사는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경궁 공사를 하면서 또 다시 돈의문(서대문) 안 색문동(塞門洞)에 경덕궁(慶德宮)이란 이름의 새 궁궐을 지었으니, 순전히 그곳에 왕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풍수가들의 말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곳에는 원래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원군(定遠君)의 집이 있었다. 정원군의 아들이 뒤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니 그 풍수가의 말이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일제 침략 이후 본격적인 수난 당해
글자 뜻이 좋다는 인왕산을 끼고 지어진 2곳의 궁궐 가운데 인경궁은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나면서 빈 궁궐이 되었고, 인조 때 창덕궁과 창경궁을 수리하는 데 쓰임으로써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경덕궁은 영조 36년(1760)에 경희궁(慶熙宮)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날까지 일부 전해지고 있다. 경희궁은 조선후기 270년 동안 경복궁 대신 정궁으로 쓰인 동궐(창덕궁)에 대해 ‘서궐(西闕)’로 불렸으며 이궁으로서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고종 연간에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경복궁이 법궁이 되고 동궐(창덕궁)이 이궁이 되었고, 그 결과 경희궁은 왕이 임어(臨御)하지 않는 빈 궁궐이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던 경희궁은 일제 침략 이후 본격적인 수난을 당하게 된다.
순종(純宗) 3년(1909년) 통감부는 일본인 자제와 조선인 자제에게 신교육을 실시한다며 경희궁을 헐고 그 자리에 통감부중학교(내용적으로는 ‘일본인 거류민단립중학교’였음)를 지었다.(일제강점 이후 통감부중학교는 ‘총독부중학교’를 거쳐 ‘경성중고등학교’, 즉 서울중고등학교의 전신이 된다)
이후 숭정전, 희상전, 흥정당, 흥화문과 회랑만 잡초더미 속에 묻혀 있었는데, 1926년에는 그나마 숭정전과 희상전이 조계사(曺溪寺 : 현 동국대학교)에 옮겨졌고 흥정당은 1928년 장충동 2가 광운사(光雲寺)로 옮겨가 정문인 흥화문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1932년 일제는 남산 동쪽자락에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라는 절을 지으면서 흥화문을 뜯어다 정문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나라 궁궐의 정문을 뜯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화신인 이등박문을 기리는 절의 정문으로 세운 참담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광복 이후 영빈관으로 쓰이던 박문사 자리에는 신라호텔이 들어섰다. 1988년까지 흥화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신라호텔의 정문 노릇을 해야 했다.

제자리를 잃어버린 흥화문
1988년 흥화문은 다시 경희궁으로 돌아왔으나, 제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흥화문이 서 있던 자리에 이미 다른 빌딩(구세군회관)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흥화문은 제자리가 아닌 궁의 남서쪽 모퉁이에 남향으로 아주 어색하게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경희궁의 동남 모퉁이에서 운종가(雲鐘街:종로)를 보며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흥화문은 지금은 그 자리와 좌향을 잃어버렸고, 그나마 좌우 담장은 물론 흥화문의 위용을 돋보이게 하던 월대(月臺)도 없이 덜렁 문만 복원되어 있다.
옛 서울중고등학교 건물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쓰이고 있고, 미술관 동쪽의 넓은 터에는 서울시립박물관이 새로 들어섰다.
경희궁 영역은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일반에게 정식으로 공개되어 있지는 않지만 복원공사가 끝난 흥화문, 숭정문 등은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숭정전 옆 회랑을 따라 경사진 언덕을 오르는 약간의 수고를 더한다면 자정전 등 일부 중심건물에 들어갈 수도 있고 서쪽 언덕에서 경희궁 전역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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