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지역내일 2009-05-14
제주 올레와 녹색 성장

바닷가 파도소리가 귓전에서 노래하고, 해초와 숲의 향긋한 냄새가 코끝에 살랑거리는 초여름 날, 제주 올레를 걸었다. 바닷가 검은 바윗돌과 자갈밭으로 이어진 길 아닌 길, 언덕의 덤불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요리조리 돌며 걸었다. 때로는 수평선을 저 멀리 바라보면서 절벽 위로 잘 다듬어진 나무판 길로도 걸었다.
주초 이틀에 제주 올레 7코스와 3코스를 계속 걸었다. ‘찬가지로 놀멍 쉬멍’(천천히 놀며 쉬며: 제주 방언) 걸었다. 올레는 제주말로 집에서 거리의 한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올레 길의 많은 부분은 한 줄로 걸어야 한다. 어느 한곳도 직선 길은 없다. 올레 길은 제주의 남쪽 해안을 따라 주로 이뤄져 있다. 동쪽 끝에서부터 1코스로 시작하여 남쪽을 지나 서쪽 끝 12코스로 이뤄져 있는데 모두 이으면 220여 km에 이른다.
제주도를 그동안 수십 차례 왔지만, 이번처럼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손으로 만지듯 이 느끼며, 자연의 위대한 손길을 호흡으로 몸속 깊이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올레 길은 불과 2년전, 언론계에 몸담았다가 언론 일을 접은 한 여성의 아이디어로 개척되었다. 지금도 올레꾼과 함께 매일 걷다시피하는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온전히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을 걷고,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긴 길이 이 아름다운 땅 제주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디지털 광속도의 시대에 새삼 느림의 미학이 회자되는 것도 속도전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의 경고등이 전 지구촌에 깜박거리기 시작했고, 그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튀어오고 있다. 제주 특산물 한라봉이 전남 고흥과 경남 밀양에서도 재배되고, 강원도 평창에서도 사과가 나오고 있다. 동해안에서 잡히던 오징어가 서해안 흑산도에서도 만만치 않게 잡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해 8.15 경축사에서 ‘건국 60년’이 지난 향후 새로운 60년의 국가 비전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의 깃발을 들었다. 이로부터 정부는 작년에 ‘제1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2008~2030)’ ‘제4차 기후변화 대응 종합기본계획(2008~2012)’ ‘그린에너지산업발전전략’ ‘지식·혁신주도형 녹색성장 산업발전전략’ 등등에 이어 올해도 ‘녹색 뉴딜’ 추진방안과 ‘녹색성장기본법안’을 내놓고 있다.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녹색 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삼아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데 굳이 반대할 이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도 누려야하고,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우리 땅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 에너지, 국토 등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전략적인 구상들이 요즘 같이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번에 제주올레 길을 걸으면서 여러 번 자문해보았다. 녹색은 본래 느림의 철학이 바탕이다. 산림녹화가 산에 페인트칠을 하듯 될 수 없듯이 세월이 흘러야 한다. 아무리 개발·성장이라고 해도 앞에 녹색이라는 말이 붙으면, 적어도 토건개발주의의 속도전으로 해치울 수는 없지 않은가. 대운하 계획은 물 건너갔다지만, ‘4대강 살리기’가 언제 변신을 할지 의구심이 가셔지지 않는다.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2기를 더 건설하여 국내 발전량의 절반을 담당하게 한다지만, 유럽에서는 중단 방향으로 가고 있는 원전계획 아닌가. 방사능 누출의 가능성, 폐기물 처리의 후 세대 이관, 건설비용, 우랴늄 채굴 등등 얼마나 많은 문제점들이 심도있고, 진지하게 논의되었는지 의아스럽다.
우리나라는 석유 수입 5위, 천연가스 수입 3위, 석유 소비량 7위, 에너지 소비량 10 등 세계 최고 에너지 소비국가(2005년)이다. 1인당 소비전력량은 2005년 7,403킬로와트시로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국민들보다 더 많이 사용한다. 에너지 정책도 정부측의 일방적인 공급위주에서만 강구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수요 측면에서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균형잡힌 정책으로 가야한다. 그렇다면 녹색성장 비전도 관변 위주가 아니라 시민, 시민사회와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여 만들어나가야 한다.
제주 해안가 곳곳에는 외래식물인 개당귀가 판을 치고 있다. 일년생 풀이지만 사람 키만큼 자라고 줄기도 지름이 5~6cm나 되는 위압적인 식물이다. 토착식물을 짓누르면서 번식한다. 역시 외래종인 개민들레는 제주 오름 능선 곳곳에 노란 꽃 장관을 이루고 있다. 민들레보다 키는 크지만 꽃대가 여러 개가 올라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린다. MB 정부의 녹색성장 프로그램에서도 개당귀와 개민들레는 있을 것이다. 개당귀는 퇴출시키고 개민들레는 제주 땅에 느림의 토착식물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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