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유력정치가의 뒤에서 그를 돕는 ‘카게무샤’가 뜨고 있다. 16세기 일본 전국시대 영주가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그림자무사’를 전쟁터에 데리고 나가 적을 속였는데, 이 가짜 영주가 카게무샤다. 여의도의 카게무샤는 물론 외모가 닮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따르는 유력정치가의 철학을 비롯 일거수일투족을 쏙 빼닮았다. 유력정치인의 ‘입’ 역할을 하는 덕분에 유권자들에겐 유력정치인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오기도한다.
◆진수희 “인간적 매력에 빠졌다” = 진수희 의원은 짧은 기간 카게무샤로 활약했지만 가장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경우다. 진 의원은 자타공인 이재오 전 의원의 최측근이다. 이 전 의원이 해외에서 체류하던 10개월간 그는 한국과 이 전 의원을 잇는 유일한 연결통로였다.
진 의원이 처음부터 이 전 의원과 가까웠던 것은 아니다. 2005년말 당 여성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이 전 의원측에서 다른 후보를 내세우는 바람에 경선에서 진 것. 이 전 의원에 대해 실망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 의원은 “이듬해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 전 의원의 강권으로 원내공보부대표를 맡아 함께 일하면서 인간 ‘이재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함께 일해보니 강경하고 투쟁적인 이재오는 선입관에 불과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사람이더라는 것. 진 의원은 “독재시절엔 민주화투쟁에 앞장서고 야당 초선시절엔 만년여당이었던 의원들을 이끌고 대여투쟁을 주도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투사이미지가 고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의원은 “이 전 의원의 지역구(은평을) 민심이 이 전 의원 초선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한다”며 좋아했다. 이 전 의원은 15대 총선에서 43.6%란 비교적 높은 지지율로 금배지를 달았다.
정몽준 최고위원의 카게무샤로는 안효대 의원이 꼽힌다. 정 최고위원이 5선을 지낸 울산 동구 사무국장으로 10년 넘게 일하다가, 지난해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심안심(鄭心安心, 정몽준과 안효대는 한마음)이란 구호를 사용했을 정도로 가깝다.
안 의원은 “정 최고위원은 서민적이고 소탈한 사람” “고급음식점보단 재래시장 국밥을 즐기는 스타일” “한번보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편안한 인상” 등 정 최고위원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는데 바빴다. 정 최고위원이 큰 꿈을 이루도록 능력껏 돕는게 인간적 도리 아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김문수 경기지사에겐 차명진 의원이 있다. 차 의원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차기 대통령은 김문수”라고 얘기할 정도로 ‘김문수 사람’임을 숨기지 않는다. 김 지사의 노동운동 후배이고 의원보좌진을 지냈다. 지역구(부천소사)도 물려받았다.
차 의원은 의정활동에서 김 지사의 ‘입’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차 의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를 놓고 ‘망국론’까지 제기하며 반대했다. 김 지사의 세종시 반대를 구체화시킨 것. 최근엔 행정구역개편특위에 들어가 도 폐지를 적극 반대했다. 김 지사의 이해를 대변한 것은 물론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겐 여러 측근이 존재하거나 또는 존재했지만 현재 ‘입’을 꼽으라면 단연 이정현 의원이라는 평이다. 이 의원은 당직자 시절 ‘소신발언’을 한 것이 박 전 대표 눈에 띄어 발탁된 뒤 당 부대변인과 박근혜 경선캠프 대변인을 거치면서 온 몸을 던져 박 전 대표를 도왔다. 그는 말끝마다 ‘대표님’에 대한 존경을 감추지않고 의원회관 사무실도 박 전 대표 사무실(5층) 바로 아래(4층)로 잡았을 정도다.
최근 박 전 대표의 근황을 알고싶거나 정국에 대한 입장을 들으려면 이 의원에게 물어보면된다. 당연히 이 의원의 휴대전화는 기자들로 인해 24시간 쉴 틈이 없다.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장관에겐 최규식 의원이 있다. 두 사람은 신기할만큼 비슷한 인생경로를 겪어왔다. 초등학교(전주초)-중학교(전주북중)-고교(전주고)-대학(서울대)를 함께 다녔다. 첫 직업도 같은 기자였다. 최 의원은 최근 정 전 장관의 귀국과 무소속 출마과정에서 ‘입’ 역할을 자처했다.
◆누린만큼 피해도 큰 카게무샤 = 과거에도 카게무샤는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겐 ‘좌동영 우형우’라고 불렸던 김동영, 최형우 전 의원이 있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겐 권노갑 전 고문과 박지원 의원 등이 존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좌광재 우희정’으로 알려진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최고위원이 존재했다. 이들은 ‘모시는 분’이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땐 역시 권력핵심으로 활약했지만 그 대가로 검찰수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했다.
카게무샤는 ‘모시는 분’을 등에 업고 빨리 뜨는 장점이 있지만, 정치태풍에 휩쓸려 난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실제 카게무샤처럼 영주 대신 칼을 맞기도하는 것이다. 큰 그늘에 가려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데 실패하는 바람에 정치생명이 짧게 끝나기도한다. 안효대 의원은 “정 최고위원은 내 사무국장 시절을 떠올리면안된다. 독자영역을 구축해야한다’고 조언하더라”며 “주민이 뽑아준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는게 당연하고 19대, 20대 총선에서도 당당히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