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과 ‘존엄한 퇴진’
성 한 표
대법원은 어제(21일) 이른바 ''존엄사‘의 길을 열어 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엄을 해치게 되므로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재판에서 신영철 대법관도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사전은 ‘존엄’을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이 바로 존엄한 자리다. 임명장에 의해 유지되는 자리가 아니라 수많은 법관들의 신뢰 위에서 유지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신 대법관 문제로 전국의 판사들이 연일 회의를 열고 있으며 21일에는 서울고법 배석판사 회의가 열렸다.
서울고법은 가장 큰 규모의 고등법원인데다 배석판사들도 다른 고법과 비교해 경력이 높은 편이다. 이들이 대부분 모였다는 점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던 회의였다. 이날 6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는 `신 대법관의 행위는 법관의 재판독립 침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결론을 냈다.
고법판사들도 신 대법관 거취 논의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이 있었고, 외부에 알리지 말자는 다수 의견에 따라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장 판사들에 이어 고법 판사들까지 거취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에 대한 법관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났다. 모든 사건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법관이 법관들의 신뢰를 잃으면 대법관으로서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
신 대법관은 이제 자진사퇴의 결단을 내릴 때다. 우선 그가 오랜 세월 몸담았던 사법부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법부는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불러왔지만 이미 동료인 박시환 대법관이 사법부의 현 사태를 ‘5차 사법 파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현 사태가 ‘파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일반인의 시각이지 법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흔히 판사회의 같은 법 테두리 안에서 하는 의사표현은 파동이라고 부르지 않고, 연판장이나 집단사표 등을 통한 법 테두리를 넘어서는 의사표현 단계에 들어가야 파동이라고 부른다고들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보인 판사들의 움직임은 과거 이른바 사법파동에 비해 매우 신중하다. 그것은 사법부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지혜로운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신 대법관이 스스로 물러나면 사법부는 법관의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하고 이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 결단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대법관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번에 보일 그의 처신에 따라 긴 판사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내려지게 되어 있다. 사법부 구성원들의 상당수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관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법관은 그 직을 물러난다고 하여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생계로 말하면 변호사 일을 통해 대법관 당시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현직을 유지하는 이유는 명예와 국가에 대한 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연이는 판사회의의 대상이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더 이상 국가에 봉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어렵다.
자진사퇴가 명예를 지키는 길
그렇다면 아직도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 결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고집일지도 모른다. 일선 판사들이 나를 비판한다고 해서 물러나면 나의 명예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버텨보겠다는 고집을 나을 수 있다.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여론몰이를 통한 압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신 대법관은 지금 여론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중추인 판사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신 대법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존엄사’의 길을 열어주자는 쪽에 손을 들었다. 이제 자신의 ‘존엄한 퇴진’을 생각할 때다. 존엄한 퇴진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퇴진이다. 대법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반 직장의 필부들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면 사표를 던진다. 사표는 곧 실직이고, 가족의 생계가 벼랑 끝에 서는 일임에도 그들은 그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다. 지금이 자리에 연연하는 대법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변호사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성 한 표
대법원은 어제(21일) 이른바 ''존엄사‘의 길을 열어 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엄을 해치게 되므로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재판에서 신영철 대법관도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사전은 ‘존엄’을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이 바로 존엄한 자리다. 임명장에 의해 유지되는 자리가 아니라 수많은 법관들의 신뢰 위에서 유지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신 대법관 문제로 전국의 판사들이 연일 회의를 열고 있으며 21일에는 서울고법 배석판사 회의가 열렸다.
서울고법은 가장 큰 규모의 고등법원인데다 배석판사들도 다른 고법과 비교해 경력이 높은 편이다. 이들이 대부분 모였다는 점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던 회의였다. 이날 6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는 `신 대법관의 행위는 법관의 재판독립 침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결론을 냈다.
고법판사들도 신 대법관 거취 논의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이 있었고, 외부에 알리지 말자는 다수 의견에 따라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장 판사들에 이어 고법 판사들까지 거취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에 대한 법관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났다. 모든 사건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법관이 법관들의 신뢰를 잃으면 대법관으로서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
신 대법관은 이제 자진사퇴의 결단을 내릴 때다. 우선 그가 오랜 세월 몸담았던 사법부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법부는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불러왔지만 이미 동료인 박시환 대법관이 사법부의 현 사태를 ‘5차 사법 파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현 사태가 ‘파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일반인의 시각이지 법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흔히 판사회의 같은 법 테두리 안에서 하는 의사표현은 파동이라고 부르지 않고, 연판장이나 집단사표 등을 통한 법 테두리를 넘어서는 의사표현 단계에 들어가야 파동이라고 부른다고들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보인 판사들의 움직임은 과거 이른바 사법파동에 비해 매우 신중하다. 그것은 사법부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지혜로운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신 대법관이 스스로 물러나면 사법부는 법관의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하고 이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 결단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대법관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번에 보일 그의 처신에 따라 긴 판사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내려지게 되어 있다. 사법부 구성원들의 상당수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관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법관은 그 직을 물러난다고 하여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생계로 말하면 변호사 일을 통해 대법관 당시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현직을 유지하는 이유는 명예와 국가에 대한 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연이는 판사회의의 대상이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더 이상 국가에 봉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어렵다.
자진사퇴가 명예를 지키는 길
그렇다면 아직도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 결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고집일지도 모른다. 일선 판사들이 나를 비판한다고 해서 물러나면 나의 명예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버텨보겠다는 고집을 나을 수 있다.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여론몰이를 통한 압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신 대법관은 지금 여론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중추인 판사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신 대법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존엄사’의 길을 열어주자는 쪽에 손을 들었다. 이제 자신의 ‘존엄한 퇴진’을 생각할 때다. 존엄한 퇴진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퇴진이다. 대법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반 직장의 필부들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면 사표를 던진다. 사표는 곧 실직이고, 가족의 생계가 벼랑 끝에 서는 일임에도 그들은 그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다. 지금이 자리에 연연하는 대법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변호사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