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4년 뒤를 기약하며
김종걸
한양대국제학대학원 교수 경제학
지난 1년 간의 경제위기 원인에 대해 우리의 정책담당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정권초의 유가상승, 그리고 작년 9월 이후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금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경제위기를 증폭시킨 것은 현정부의 ‘실력’과 ‘신뢰’와 ‘논리’의 부족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첫째 ‘실력’이 부족했다. 환율이 요동치던 민감한 상황에서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통령은 서로 엇박자로 말을 바꾸어나갔다. 이것이 시장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52개 생필품의 집중관리라는 발상은 결국 관리대상품목의 ‘집중적’ 물가상승으로 귀결됐다. 단기적 위기국면에 대한 해결능력이 너무나도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신뢰’가 부족했다. 정책이 거센 반대에 직면할 때마다, 내용이 아니라 이름만 바꾸어나갔다. 공기업민영화는 공기업선진화로, 한반도대운하는 4대강유역개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경제성장률 예측도 엉망이었다. 정권초의 7% 성장론은 논외로 하더라도, 위기가 본격화된 작년 말 예산안책정 당시의 2% 성장론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모든 행위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하게 했다.
셋째로 ‘논리’가 부족했다. 경제살리기의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사용된 재벌규제 완화와 감세가 어떻게 기업의 투자증대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창출로 귀결되는지, 명확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은 늙어가고 양극화는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발표된 ‘능동적 복지’도 일자리창출의 비전이 없다면 복지정책으로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관철되는 원칙은 있었다. 바로 버블을 버블로, 그리고 양극화를 양극화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부동산버블이 꺼졌을 때 꺼내든 카드는 바로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완화와 토목사업 구상이었다.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토건 중심의 경기회복,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버블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도박’에 경제 전체가 올인하고 있다. 재벌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벌을 중심으로 한 양극화 성장노선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현정부가 각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갇혀 고집스러울 정도로 ‘홀로’ 가고 있다. 견제를 위한 그 어떠한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통령제 하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정부의 오만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의회권력이 정부여당에 의해 장악되고, 사법권력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와의 괴리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이 때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리와 컴퓨터 앞에서 외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촛불시위에 대한 과잉 대응, 미네르바 구속 등과 같은 상황 속에서는 이 또한 여의치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은 다음 정부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4대강 유역개발로 어그러질 ‘생태’를 복원하는 일, 재벌에 의해 장악될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일, 일그러질 서민생활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안정시키는 일, 그리고 견제와 균형과 관용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모두가 조화롭게 엇물렸을 때, 사람의 경쟁력을 극대화시킨 새로운 경제성장의 모델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 줘야 한다. 성장이 평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평등 속에 안정된 성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나가야 한다. 안정된 복지체계가 경제의 혁신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도록 그 연결고리를 치밀하게 모색해야만 한다.
이것은 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르그먼(‘자유주의자의 양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담대한 희망’)도 누차 강조하는 사항이다. 한국적 상황 속에서, 버블과 양극화성장을 넘어선 새로운 정책의 준비, 또한 그것을 추진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준비, 이것이 남은 4년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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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를 기약하며
김종걸
한양대국제학대학원 교수 경제학
지난 1년 간의 경제위기 원인에 대해 우리의 정책담당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정권초의 유가상승, 그리고 작년 9월 이후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금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경제위기를 증폭시킨 것은 현정부의 ‘실력’과 ‘신뢰’와 ‘논리’의 부족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첫째 ‘실력’이 부족했다. 환율이 요동치던 민감한 상황에서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통령은 서로 엇박자로 말을 바꾸어나갔다. 이것이 시장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52개 생필품의 집중관리라는 발상은 결국 관리대상품목의 ‘집중적’ 물가상승으로 귀결됐다. 단기적 위기국면에 대한 해결능력이 너무나도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신뢰’가 부족했다. 정책이 거센 반대에 직면할 때마다, 내용이 아니라 이름만 바꾸어나갔다. 공기업민영화는 공기업선진화로, 한반도대운하는 4대강유역개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경제성장률 예측도 엉망이었다. 정권초의 7% 성장론은 논외로 하더라도, 위기가 본격화된 작년 말 예산안책정 당시의 2% 성장론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모든 행위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하게 했다.
셋째로 ‘논리’가 부족했다. 경제살리기의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사용된 재벌규제 완화와 감세가 어떻게 기업의 투자증대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창출로 귀결되는지, 명확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은 늙어가고 양극화는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발표된 ‘능동적 복지’도 일자리창출의 비전이 없다면 복지정책으로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관철되는 원칙은 있었다. 바로 버블을 버블로, 그리고 양극화를 양극화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부동산버블이 꺼졌을 때 꺼내든 카드는 바로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완화와 토목사업 구상이었다.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토건 중심의 경기회복,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버블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도박’에 경제 전체가 올인하고 있다. 재벌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벌을 중심으로 한 양극화 성장노선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현정부가 각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갇혀 고집스러울 정도로 ‘홀로’ 가고 있다. 견제를 위한 그 어떠한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통령제 하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정부의 오만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의회권력이 정부여당에 의해 장악되고, 사법권력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와의 괴리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이 때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리와 컴퓨터 앞에서 외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촛불시위에 대한 과잉 대응, 미네르바 구속 등과 같은 상황 속에서는 이 또한 여의치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은 다음 정부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4대강 유역개발로 어그러질 ‘생태’를 복원하는 일, 재벌에 의해 장악될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일, 일그러질 서민생활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안정시키는 일, 그리고 견제와 균형과 관용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모두가 조화롭게 엇물렸을 때, 사람의 경쟁력을 극대화시킨 새로운 경제성장의 모델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 줘야 한다. 성장이 평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평등 속에 안정된 성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나가야 한다. 안정된 복지체계가 경제의 혁신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도록 그 연결고리를 치밀하게 모색해야만 한다.
이것은 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르그먼(‘자유주의자의 양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담대한 희망’)도 누차 강조하는 사항이다. 한국적 상황 속에서, 버블과 양극화성장을 넘어선 새로운 정책의 준비, 또한 그것을 추진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준비, 이것이 남은 4년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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