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 칼럼]무엇이 추모열기를 만드나(유승삼 2009.05.26)

지역내일 2009-05-26
무엇이 추모열기를 만드나
유승삼 (언론인)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이토록 뜨겁게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정부와 한나라당 인사들이 그 열기에 눌려 욕설에 물벼락까지 맞으면서도 숙제하듯 기어이 조문을 마치는 모습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노 전 대통령의 옛 비서가 “왜 이렇게 세상이 갑자기 달라졌는지 모르겠다”며 얼떨떨해 할만도 하다.
더 놀라운 것은 보수언론들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이다. 22일까지도 근거 없는 추측보도까지 해가며 갖은 수모를 주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추모기사로 지면을 칠갑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했을 때는 ‘살인마’라 했다가 파리에 입성하자 ‘황제 폐하’로 호칭을 바꿨다는 당시 프랑스 최대지 ‘모니퇴르’의 낯 뜨거운 변신을 꼭 닮았다.
어쨌거나 도대체 이 놀라운 추모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저런 사람들이 말을 듣노라면 짐작되는 바가 있다.
2002년 대선 때 찬조 연설을 했던 아지매는 이렇게 말했다. “와 죽노? 더 많이 받고 더 못된 짓 한 사람도 저리 사는데…” 한 여대생은 “재임 기간 내내 힘들어했는데 그 때는 몰라주었던 게 너무 후회돼요”라며 울먹였다.

서민들의 연민과 동병상련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가 울며 말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같은 장애자들을 위해 애써 주신 분이에요” 참여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한 한덕수 주미대사는 “어려운 사람과 사회적 음지에 관심이 많았던 분”이라고 증언했다.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은 “만나는 사람마다 검찰수사를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고 질문해 깜짝 놀랐다”고 민심을 전했다.
안타까움, 동정, 회한, 고마움, 분노 등등 갖가지 동병상련의 감정이 추모 열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보다 세상을 버린 뒤에 더 추앙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을 벗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끝내 대학 진학을 하지 못했다. 고교를 졸업하고는 한때 생계를 위해 부두에서 막노동까지 해야 했다. 대통령 노무현을 임기 내내 괴롭혔던 ‘막말’ 버릇도 그 때 생긴 것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노동인권운동변호사가 된 것도 그런 성장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 상대도 하필이면 6·25때 부역한 사람의 딸이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그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와 닿아 있었다. 대선에서 그가 당시로서는 소수인 네티즌과 젊은 유권자 층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자살과 유서 내용을 보며 그가 ‘순수한 사람, 이상을 품은 사람’이라는 평가에 공감한다. ‘수치심을 아는 사람’이란 중국 네티즌의 평도 마찬가지이다. “부패한 인물이라면 부패 혐의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겠지만 노 대통령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는 영국 더 타임스의 분석 역시 정확하다. “청렴한 정치인으로 명망이 높았기 때문에 자신이 부패 혐의로 수사 받는 것을 특히 고통스러워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추모 열기가 우리 사회의 전체 모습은 아니다. ‘왜 자살을 서거라고 표현하느냐’고 시비를 거는 극우인사들이 있어서가 아니다. 한 신문 인터넷판이 ‘덕수궁 앞 임시 분향소에 대한 경찰 통제’가 ‘명백한 추모방해’냐 ‘폭력집회 우려 당연’이냐를 물은 결과 ‘추모방해’라고 보는 견해가 60%를 좀 넘었지만 ‘폭력집회 우려 당연’이라는 의견도 40%에 가까웠다.
추모 열기의 기세에 눌려 있지만 내심으로는 여전히 노 전 대통령에 비판적이고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에게도 적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 지지층을 한 30%로 잡고 있는데 다만 지금은 진보 지지층과 중도층 내지 부동층이 감성적 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잠재된 국민열망을 감지해야
정부·여당은 그런 보수층을 믿고 ‘이때만 잘 넘기자’고 마음먹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지극히 안이하고 위험한 생각이다. 이번 추모 열기를 통해 잠재되었던 서민 열망과 그 폭발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장례식만 끝나면 사라질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바보 노무현의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현실정치의 벽에 막혀 비극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꿈은 추모열기 속에서 서민들의 갈망으로 되살아났다. 집권층을 포함한 기득권층이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분열과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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