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이귀복 이사

“5·18 행불자, 국가가 증거 찾아줘야”

지역내일 2009-06-01 (수정 2009-06-01 오전 10:34:40)


유가족 증거 찾으려면 생계포기해야 할 판
“심사위원들, 책상 앞에서 6하 원칙만 고집”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 이사의 말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재심을 몇 차례나 거쳤는지 모른다. 청와대를 내 집 드나들 듯이, 정부종합청사를 수십번 찾아간 후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국가에선 5·18피해자로 인정해주지 않으니 유가족들은 괴로울 뿐이죠.”
5·18 민주화운동으로 행방불명돼 가족이 심사를 요청한 인원만 1500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 중에서 행방불명자로 인정된 사람은 단 76명.
이귀복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이사도 5·18 당시 아들을 잃고 팔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정부에서 5·18 피해자 신고를 받았지만 행방불명된 아들이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행불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은 시신이 없을 뿐 아니라 증거나 증인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사는 “5·18 피해자보상 심사위원회에서는 6하원칙에 따라 서류를 작성해오라, 새로운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는 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의 경우 5·18 당시 가족들은 광주에 있고 혼자만 완도에 나가 공사일을 하다가 차량이 통제돼 5월 말이 돼서야 광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광주에 와보니 초등학교 1학년이 큰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을 찾아 몇 달 동안 산으로 계곡으로 다녔지만 계속 그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결국 생계 때문에 아들 찾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82년쯤 5·18 피해자를 신고하라는 법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행방불명됐다고 신고를 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 이사의 말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재심을 몇 차례나 거쳤는지 모른다. 청와대를 내 집 드나들 듯이, 정부종합청사를 수십번 찾아간 후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가 행방불명자와 관련한 활동을 한창할 때 일가족 4명이 행방불명된 사례도 알게 됐었다. 어머니와 남동생 둘, 아들이 무안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광주로 오려다가 행방불명된 것이었다. 행방불명 신고를 했는데도 경찰 측에서는 ‘기차타고 오다 계란을 먹고 체해서 죽었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렸고 몇 차례 심사에서 떨어진 유가족은 포기를 했다.
이 이사는 “4명의 일가족이 어떻게 동시에 같은 이유로 죽을 수가 있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 행방불명 가족은 이후 한 친척이 발벗고 나서 자료를 수집해준 덕분에 결국 행방불명자로 인정을 받게 됐다.
이 이사는 “아침밥 먹고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행방불명 아니냐”며 “그것을 어떻게 뚜렷하게 증명할 길이 있냐”며 반문했다.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은 가족들이 신고를 하기 위해 ‘행불자의 성격은 어떻고, 외모는 어떻고,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 등’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작성해서 제출하면 심사위원회에서는 ‘육하원칙에 따라 써오라, 새로운 증거를 가져오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라고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증거를 찾기는 더 힘들어지고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계속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오라고 하니 더 힘들 수밖에 없다. 1년에도 몇 차례씩 심사가 열리지만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유가족들이 하나 둘 사망하기도 하고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나마 가족이 있는 경우는 다행이다. 당시 광주에 구두닦이, 거지, 넝마주이 등 가족이 없이 혼자 지내던 사람들이 600~700명 정도가 있었다.
5·18 이후로 거리에 이런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을 챙기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알 수가 없다. 실제 행불자는 훨씬 많은데도 지금까지 인정받는 숫자는 76명에 불과하다.
이 이사는 “공권력으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이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서 생계도 포기해가며 증거 자료를 찾아와야 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게다가 피해자 보상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구 전남도청 별관을 없애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 곳은 내 자식이 피흘리며 죽어간 곳이다. 이미 5·18과 관련한 다른 곳들이 다 헐렸는데 이 곳까지 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 박소원 방국진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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