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강자인 제나라 경공은 아끼는 궁녀가 많은 탓에 태자를 책봉하지 않은 채 정사를 대부 진씨에게 맡겼다. 군주가 해야 할 일을 대부가 대신하니 민심이 기울어 급기야 진씨는 경공을 시해하고 정권을 찬탈했다.
경공이 아직 건재할 무렵 이웃 노나라에서 찾아 온 공자에게 정사가 무엇인지 물으니 공자는 임금이 임금 구실을 하고 신하는 신하 구실을 하는 것(君君臣臣父父子子)이라 답했다.
경공이 “그렇지 못할 바엔 창고에 곡식이 있더라도 내 어찌 먹겠는가” 하고 감탄했는데, 정작 자신은 임금 구실을 하지 않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이와 비슷하게 장자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 도에 가깝다’고 했다. 두 사례는 일맥상통하면서 모두 윤리 개념의 핵심을 짚은 것으로 보인다.
미 금융위기, 탐욕의 산물
월가 금융엘리트들의 도덕적 파탄에서 비롯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동반침체로 몰아넣으면서 기업인의 윤리의식이 다시 한 번 지구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 사회에서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가까이는 2001년 엔론사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이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각인시켰다. 포춘지 선정 미국 7대 기업에 포함되기도 했던 엔론사가 회계법인과 짜고 대규모 분식과 정·관계 로비를 저지른 결과 미국 경제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후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앞 다퉈 윤리경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의 경우 윤리경영의 전통이 비교적 오래된 터여서 충격이 컸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존슨앤존슨사의 윤리경영 선언은 1930년대에 이뤄진 것이다.
이 회사는 1943년 최초의 기업윤리강령으로 알려진 ‘우리의 신조’를 공표하고 경영에 접목했다. 우리의 신조는 상품 수요자, 임직원, 세계 공동체, 주주 등에 대한 윤리 규정을 담은 일종의 기업인 행동 수칙이다.
1982년 타이레놀 병에 독극물이 주입돼 8명이 사망하자 이 회사는 2억4000만달러를 들여 출시된 제품 전량인 3100만병을 수거해 폐기함으로써 자신이 세운 신조를 지켰다.
한국 기업의 경우 지난해 10월 전경련이 85개 회원사를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윤리경영이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의견이 51.3%를 차지했다. 또 응답 기업 중 76%가 윤리경영을 담당하는 조직을 설치해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 경영에 접목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의 윤리경영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08년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6점으로, 180개 국 중 40위였다. 또 지난해 포춘지가 발표한 존경받는 세계 기업 중 50위권에 국내 기업은 3개뿐이다.
통계가 말해주듯 국내 기업에서 윤리경영은 선의의 경쟁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선언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의 윤리경영이 종종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기업 윤리경영 미흡
그간 삼성은 안으로 세부적인 자체 윤리강령을 만들어 시행하는 가운데 이를 고객과 주주, 종업원에 대한 무한책임과 일치하도록 확장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삼성이 오래 전부터 마련해 온 5대 삼성경영원칙 가운데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 완수’ 원칙을 핵심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도덕적 기업이 되는 것이 삼성 윤리경영의 목표이며 그 원칙을 지킬 때 실제로 지속가능한 초일류 기업 달성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밖으로 삼성은 협력사를 동반자로 존중하는 기풍을 강조해 왔다. 이윤우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취임과 함께 CEO 직속 상생협력실을 신설하고 7월에는 1350여개 협력사와 ‘하도급 공정거래 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상생협약으로, 상생협력실이 이뤄낸 첫 가시적 성과였다. 올 3월에는 각 분야 전문가와 전직 삼성전자 임원으로 구성된 협력사 경영컨설팅단을 발족해 경영 노하우 전수를 시작했다.
해외에서 삼성은 기업의 신의를 지켜 현지화에 성공한 많은 선례를 남겼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과 맺은 특별한 관계는 그 대표적인 경우다.
1990년 소련의 해체는 이러한 볼쇼이 발레단에 미증유의 재정난을 몰고 왔다. 걸출한 안무가들이 물러난 것은 물론, 서방으로 떠나는 스타급 배우들이 속출했다. 이 때 갓 러시아 진출을 시작한 삼성전자가 볼쇼이발레단 지원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구소련이 붕괴한 뒤인 1992년부터 무려 13년 동안 빠짐없이 볼쇼이발레단에 후원금을 보탰다. 악화일로를 걸었던 십여 년을 생각하면 삼성의 고민도 적지 않았을 터이다.
이들의 재정난이 극도로 악화된 1991년, 당시로서는 국제 사회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삼성전자가 경영진의 결단 하에 매년 14만 달러를 발레단에 보내기로 했다. 그밖에 회사는 극장에 필요한 와이드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현물까지 보탰고, 급기야 홍보전단 인쇄까지 맡았다.
1998년 한국과 러시아가 비슷한 시기에 국가 재정난에 빠졌지만 삼성전자는 볼쇼이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윽고 2000년 푸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이 보태진 이래 3년이 지나서야 발레단은 안정을 되찾았다. 볼쇼이의 부활과 함께 삼성전자는 이제 러시아에서 국민기업에 어울리는 대접을 받게 됐다.
그럼에도 최근 경제주간지 배런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지난해보다 6계단이나 떨어진 48위를 차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이는 한국 기업 윤리경영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시장경제 운명 걸린 문제
20세기에 많은 초대형 부패사건이 터졌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속도나 규모는 21세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록히드사에서 뇌물을 받은 일로 일본의 내각이 무너지고 남아프리카에 무기를 수출했다는 이유로 올린사가 기소당하거나 걸프석유회사의 회장이 뇌물 스캔들 때문에 사임한 일 따위가 그렇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엘빈 토플러는 “20세기 들어 기업의 윤리적 자세가 환경이나 사회체제에 버금가는 문제로 등장한 것”이라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금은 이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 기업의 윤리의식 부재가 세계 경제의 운명마저 좌우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안철수 박사는 이를 두고 지금이 ‘좀비 하나가 멀쩡한 사람들을 물어 모두 좀비로 만드는 시대’라 규정한다.
기업이 사회적 존재인 이상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요구하는 양식을 지켜야 함은 당연하다. 윤리학자들은 그 양식이 사회로부터 강제된 법과 제도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된 도덕규범까지 포괄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더욱이 법과 도덕 가운데 우위에 있는 것은 도덕이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강조한 것처럼 “도덕은 오랜 시일에 걸쳐 형성되지만 결국에는 사회를 지탱하는 확고부동한 초석을 이루기 때문이다.”
기업이 법과 제도에만 머물 때 일시적으로 이윤 추구에 집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도덕규범을 외면하는 행태를 누적시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존립 기반이 고객에 있고 그 고객은 시장경쟁이라는 조건 속에서 동등한 환경이라면 언제나 도덕적으로 더 나은 기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당장 한 푼의 이익이 아쉬운 기업이라면 윤리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매순간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기업들은 언제나 이와 같은 미망에 사로잡힐 수 있다. 현대 기업이 빠지기 쉬운 이 함정을 갈파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들에게 “탐욕이 아닌 혁신과 창업가정신에 기초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라”고 권했다. 그렇게 쌓은 부가가치를 사회에 환원시킬 때 비로소 지속가능경영이 가능함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위기는 이윤에 집착한 일부 민간의 탐욕과 제어 능력을 상실한 공공부문이 결합할 때 시장경제를 뿌리째 뒤흔들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서운 것은 오늘날 지구촌 변두리 매장을 스쳐지나가는 소비자조차 거대기업의 사소한 부도덕에 즉시 등 돌릴 자세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포춘지는 매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을 선정하는데, 2004년까지 최상위에 올랐던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저임금과 성차별 혐의로 구설에 오르면서 2007년 한 해만에 순위가 19위로 떨어졌다. 회사가 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회복하는데 무려 2년이 걸렸다.
부도덕에는 크고 작음이 구별되지 않는다. 햄릿이 “위대하다는 것은 위대한 명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린 문제라면 지푸라기 하나를 놓고도 싸우는 것”이라 말한 것처럼, 21세기 시공간에 내던져진 기업들은 얼핏 실수라 치부될 행위 하나도 방치하지 않으며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윤리경영이 그 지점에서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경공이 아직 건재할 무렵 이웃 노나라에서 찾아 온 공자에게 정사가 무엇인지 물으니 공자는 임금이 임금 구실을 하고 신하는 신하 구실을 하는 것(君君臣臣父父子子)이라 답했다.
경공이 “그렇지 못할 바엔 창고에 곡식이 있더라도 내 어찌 먹겠는가” 하고 감탄했는데, 정작 자신은 임금 구실을 하지 않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이와 비슷하게 장자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 도에 가깝다’고 했다. 두 사례는 일맥상통하면서 모두 윤리 개념의 핵심을 짚은 것으로 보인다.
미 금융위기, 탐욕의 산물
월가 금융엘리트들의 도덕적 파탄에서 비롯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동반침체로 몰아넣으면서 기업인의 윤리의식이 다시 한 번 지구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 사회에서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가까이는 2001년 엔론사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이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각인시켰다. 포춘지 선정 미국 7대 기업에 포함되기도 했던 엔론사가 회계법인과 짜고 대규모 분식과 정·관계 로비를 저지른 결과 미국 경제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후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앞 다퉈 윤리경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의 경우 윤리경영의 전통이 비교적 오래된 터여서 충격이 컸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존슨앤존슨사의 윤리경영 선언은 1930년대에 이뤄진 것이다.
이 회사는 1943년 최초의 기업윤리강령으로 알려진 ‘우리의 신조’를 공표하고 경영에 접목했다. 우리의 신조는 상품 수요자, 임직원, 세계 공동체, 주주 등에 대한 윤리 규정을 담은 일종의 기업인 행동 수칙이다.
1982년 타이레놀 병에 독극물이 주입돼 8명이 사망하자 이 회사는 2억4000만달러를 들여 출시된 제품 전량인 3100만병을 수거해 폐기함으로써 자신이 세운 신조를 지켰다.
한국 기업의 경우 지난해 10월 전경련이 85개 회원사를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윤리경영이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의견이 51.3%를 차지했다. 또 응답 기업 중 76%가 윤리경영을 담당하는 조직을 설치해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 경영에 접목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의 윤리경영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08년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6점으로, 180개 국 중 40위였다. 또 지난해 포춘지가 발표한 존경받는 세계 기업 중 50위권에 국내 기업은 3개뿐이다.
통계가 말해주듯 국내 기업에서 윤리경영은 선의의 경쟁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선언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의 윤리경영이 종종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기업 윤리경영 미흡
그간 삼성은 안으로 세부적인 자체 윤리강령을 만들어 시행하는 가운데 이를 고객과 주주, 종업원에 대한 무한책임과 일치하도록 확장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삼성이 오래 전부터 마련해 온 5대 삼성경영원칙 가운데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 완수’ 원칙을 핵심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도덕적 기업이 되는 것이 삼성 윤리경영의 목표이며 그 원칙을 지킬 때 실제로 지속가능한 초일류 기업 달성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밖으로 삼성은 협력사를 동반자로 존중하는 기풍을 강조해 왔다. 이윤우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취임과 함께 CEO 직속 상생협력실을 신설하고 7월에는 1350여개 협력사와 ‘하도급 공정거래 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상생협약으로, 상생협력실이 이뤄낸 첫 가시적 성과였다. 올 3월에는 각 분야 전문가와 전직 삼성전자 임원으로 구성된 협력사 경영컨설팅단을 발족해 경영 노하우 전수를 시작했다.
해외에서 삼성은 기업의 신의를 지켜 현지화에 성공한 많은 선례를 남겼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과 맺은 특별한 관계는 그 대표적인 경우다.
1990년 소련의 해체는 이러한 볼쇼이 발레단에 미증유의 재정난을 몰고 왔다. 걸출한 안무가들이 물러난 것은 물론, 서방으로 떠나는 스타급 배우들이 속출했다. 이 때 갓 러시아 진출을 시작한 삼성전자가 볼쇼이발레단 지원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구소련이 붕괴한 뒤인 1992년부터 무려 13년 동안 빠짐없이 볼쇼이발레단에 후원금을 보탰다. 악화일로를 걸었던 십여 년을 생각하면 삼성의 고민도 적지 않았을 터이다.
이들의 재정난이 극도로 악화된 1991년, 당시로서는 국제 사회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삼성전자가 경영진의 결단 하에 매년 14만 달러를 발레단에 보내기로 했다. 그밖에 회사는 극장에 필요한 와이드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현물까지 보탰고, 급기야 홍보전단 인쇄까지 맡았다.
1998년 한국과 러시아가 비슷한 시기에 국가 재정난에 빠졌지만 삼성전자는 볼쇼이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윽고 2000년 푸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이 보태진 이래 3년이 지나서야 발레단은 안정을 되찾았다. 볼쇼이의 부활과 함께 삼성전자는 이제 러시아에서 국민기업에 어울리는 대접을 받게 됐다.
그럼에도 최근 경제주간지 배런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지난해보다 6계단이나 떨어진 48위를 차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이는 한국 기업 윤리경영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시장경제 운명 걸린 문제
20세기에 많은 초대형 부패사건이 터졌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속도나 규모는 21세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록히드사에서 뇌물을 받은 일로 일본의 내각이 무너지고 남아프리카에 무기를 수출했다는 이유로 올린사가 기소당하거나 걸프석유회사의 회장이 뇌물 스캔들 때문에 사임한 일 따위가 그렇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엘빈 토플러는 “20세기 들어 기업의 윤리적 자세가 환경이나 사회체제에 버금가는 문제로 등장한 것”이라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금은 이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 기업의 윤리의식 부재가 세계 경제의 운명마저 좌우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안철수 박사는 이를 두고 지금이 ‘좀비 하나가 멀쩡한 사람들을 물어 모두 좀비로 만드는 시대’라 규정한다.
기업이 사회적 존재인 이상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요구하는 양식을 지켜야 함은 당연하다. 윤리학자들은 그 양식이 사회로부터 강제된 법과 제도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된 도덕규범까지 포괄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더욱이 법과 도덕 가운데 우위에 있는 것은 도덕이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강조한 것처럼 “도덕은 오랜 시일에 걸쳐 형성되지만 결국에는 사회를 지탱하는 확고부동한 초석을 이루기 때문이다.”
기업이 법과 제도에만 머물 때 일시적으로 이윤 추구에 집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도덕규범을 외면하는 행태를 누적시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존립 기반이 고객에 있고 그 고객은 시장경쟁이라는 조건 속에서 동등한 환경이라면 언제나 도덕적으로 더 나은 기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당장 한 푼의 이익이 아쉬운 기업이라면 윤리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매순간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기업들은 언제나 이와 같은 미망에 사로잡힐 수 있다. 현대 기업이 빠지기 쉬운 이 함정을 갈파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들에게 “탐욕이 아닌 혁신과 창업가정신에 기초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라”고 권했다. 그렇게 쌓은 부가가치를 사회에 환원시킬 때 비로소 지속가능경영이 가능함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위기는 이윤에 집착한 일부 민간의 탐욕과 제어 능력을 상실한 공공부문이 결합할 때 시장경제를 뿌리째 뒤흔들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서운 것은 오늘날 지구촌 변두리 매장을 스쳐지나가는 소비자조차 거대기업의 사소한 부도덕에 즉시 등 돌릴 자세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포춘지는 매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을 선정하는데, 2004년까지 최상위에 올랐던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저임금과 성차별 혐의로 구설에 오르면서 2007년 한 해만에 순위가 19위로 떨어졌다. 회사가 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회복하는데 무려 2년이 걸렸다.
부도덕에는 크고 작음이 구별되지 않는다. 햄릿이 “위대하다는 것은 위대한 명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린 문제라면 지푸라기 하나를 놓고도 싸우는 것”이라 말한 것처럼, 21세기 시공간에 내던져진 기업들은 얼핏 실수라 치부될 행위 하나도 방치하지 않으며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윤리경영이 그 지점에서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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