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수사로 ‘신뢰 타격’ 천성관 사퇴로 ‘도덕성 붕괴’
중앙정보부·보안사 이어 절대권력 몰락 역사 재연
무소불위. 대한민국 하늘 아래 무서울게 없던 검(檢)이 부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 검찰권력의 핵인 수사권이 국민적 불신을 받더니 검찰 최고수장인 총장 후보자의 구린내나는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도덕성마저 무너졌다. 검찰이 ‘절대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70년대 중앙정보부와 80년대 보안사령부라는 절대권력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져간 장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암흑시절 군림했던 절대권력 =
61년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세력은 곧장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본뜬 중앙정보부를 창설했다. 이후 중정은 절대권력으로 급부상했다. 미행과 도청, 고문을 동원해 반체제세력을 탄압했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용공조작도 저질렀다.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를 뒤흔드는 부정선거도 기획했다. 대한민국 어느 국가기관도, 어떤 정치인도 중정 앞에선 무기력했다.
절대권력화된 중정도 권력교체란 난세를 피해가진 못했다. 10·26사태를 계기로 보안사 출신 전두환 장군이 권력이 잡은 뒤 중정은 해체되고 안기부로 대체됐다. 군부출신 전 장군에게 중정은 또다른 위협이었던 셈이다.
80년대는 보안사가 절대권력으로 군림했다. 보안사령관을 지낸 전두환·노태우씨가 대통령 에 오른 대가였다. 보안사는 중정이 물러난 공백을 고스란히 차지하면서 절대권력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면서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기무사령부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절대권력에서 내려왔다.
◆90년대 절대권력 오른 검찰 =
검찰은 87년 6월항쟁과 92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중정과 보안사가 거쳐갔던 절대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권력 하수인 노릇에 머물렀던 검찰은 절대권력이 무너진 뒤엔 자신이 쥔 기소권과 수사권을 앞세워 스스로 권력화된 것이다.
검찰은 20여년간 무소불위 권력으로 군림해왔다. 도덕성이 취약했던 역대 대통령과 실세, 권력기관, 재벌들을 줄줄히 처벌하면서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위에 서는 동시에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던 검찰도 몰락을 자초했다. 정권교체기마다 ‘죽은 권력’에 대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러 ‘산 권력’의 입맛을 맞췄던 검찰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또다시 ‘죽은 권력’에 칼을 꽂다가 노무현 서거라는 암초를 만났다.
국민은 검찰이 형평성 잃은 수사를 했다는 심증을 굳혔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지난달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2%가 “수사가 편파적이었다”고 응답했다. 민심은 검찰권력의 핵인 수사권에 대해 근본적 불신을 표한 것이다.
수사권이 ‘탄핵’ 당한 검찰은 천성관 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면서 마지막 보루인 도덕성마저 붕괴되는 아픔을 맛보게됐다. 겉으론 고고한 권력으로 행세하면서 뒤로는 스폰서로부터 해외골프 접대부터 아파트구입자금까지 얻어쓰는 고위검사의 행태에 대해 국민은 질타를 넘어 실소를 보냈다. 이는 검찰이 휘둘러온 절대권력에 대한 파산선고를 의미한다.
검찰의 몰락은 절대권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확인시켜줬다는 평가이다. 물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절대권력을 꿈꾸는 집단이 없는건 아니다. 국세청은 서민과 기업이 벌벌 떠는 징세권을 앞세워 절대권력의 끈을 놓지않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도 전직 청장 3명이 잇따라 비위로 낙마한데 이어 청장 후보자는 부동산투기와 탈세논란으로 심하게 얼룩지면서 국민적 신뢰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절대권력에 대한 허망한 욕망에 매달려있는 모양새다.
동국대 박명호(정외과) 교수는 “최후의 권력기관으로 꼽히던 검찰이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면서 초유의 위기를 맞고있다”며 “외부수혈 등 파격조치를 통해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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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보안사 이어 절대권력 몰락 역사 재연
무소불위. 대한민국 하늘 아래 무서울게 없던 검(檢)이 부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 검찰권력의 핵인 수사권이 국민적 불신을 받더니 검찰 최고수장인 총장 후보자의 구린내나는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도덕성마저 무너졌다. 검찰이 ‘절대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70년대 중앙정보부와 80년대 보안사령부라는 절대권력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져간 장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암흑시절 군림했던 절대권력 =
61년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세력은 곧장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본뜬 중앙정보부를 창설했다. 이후 중정은 절대권력으로 급부상했다. 미행과 도청, 고문을 동원해 반체제세력을 탄압했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용공조작도 저질렀다.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를 뒤흔드는 부정선거도 기획했다. 대한민국 어느 국가기관도, 어떤 정치인도 중정 앞에선 무기력했다.
절대권력화된 중정도 권력교체란 난세를 피해가진 못했다. 10·26사태를 계기로 보안사 출신 전두환 장군이 권력이 잡은 뒤 중정은 해체되고 안기부로 대체됐다. 군부출신 전 장군에게 중정은 또다른 위협이었던 셈이다.
80년대는 보안사가 절대권력으로 군림했다. 보안사령관을 지낸 전두환·노태우씨가 대통령 에 오른 대가였다. 보안사는 중정이 물러난 공백을 고스란히 차지하면서 절대권력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면서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기무사령부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절대권력에서 내려왔다.
◆90년대 절대권력 오른 검찰 =
검찰은 87년 6월항쟁과 92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중정과 보안사가 거쳐갔던 절대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권력 하수인 노릇에 머물렀던 검찰은 절대권력이 무너진 뒤엔 자신이 쥔 기소권과 수사권을 앞세워 스스로 권력화된 것이다.
검찰은 20여년간 무소불위 권력으로 군림해왔다. 도덕성이 취약했던 역대 대통령과 실세, 권력기관, 재벌들을 줄줄히 처벌하면서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위에 서는 동시에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던 검찰도 몰락을 자초했다. 정권교체기마다 ‘죽은 권력’에 대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러 ‘산 권력’의 입맛을 맞췄던 검찰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또다시 ‘죽은 권력’에 칼을 꽂다가 노무현 서거라는 암초를 만났다.
국민은 검찰이 형평성 잃은 수사를 했다는 심증을 굳혔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지난달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2%가 “수사가 편파적이었다”고 응답했다. 민심은 검찰권력의 핵인 수사권에 대해 근본적 불신을 표한 것이다.
수사권이 ‘탄핵’ 당한 검찰은 천성관 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면서 마지막 보루인 도덕성마저 붕괴되는 아픔을 맛보게됐다. 겉으론 고고한 권력으로 행세하면서 뒤로는 스폰서로부터 해외골프 접대부터 아파트구입자금까지 얻어쓰는 고위검사의 행태에 대해 국민은 질타를 넘어 실소를 보냈다. 이는 검찰이 휘둘러온 절대권력에 대한 파산선고를 의미한다.
검찰의 몰락은 절대권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확인시켜줬다는 평가이다. 물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절대권력을 꿈꾸는 집단이 없는건 아니다. 국세청은 서민과 기업이 벌벌 떠는 징세권을 앞세워 절대권력의 끈을 놓지않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도 전직 청장 3명이 잇따라 비위로 낙마한데 이어 청장 후보자는 부동산투기와 탈세논란으로 심하게 얼룩지면서 국민적 신뢰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절대권력에 대한 허망한 욕망에 매달려있는 모양새다.
동국대 박명호(정외과) 교수는 “최후의 권력기관으로 꼽히던 검찰이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면서 초유의 위기를 맞고있다”며 “외부수혈 등 파격조치를 통해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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