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는 정부와 금융업계의 총체적 위험관리 부재가 불러온 비극이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판을 깔았고, 금융기관들은 그 위에서 빚잔치를 벌인 셈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금융위험 감독 및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각국 시장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다.
◆위험관리 부재에서 온 금융위기 =
시장의 위험을 키운 것은 금융당국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의장은 2000년 IT버블 때는 물론이고, 2001년 9·11테러나 2002년 엔론 사태이후에도 ‘시장회복’을 명목으로 초저금리 대책으로 일관했다. 이는 도를 넘은 과잉유동성을 촉발했다.
바통은 금융권이 받았다. 은행을 위시한 모든 금융기관들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이용한 유동화채권들을 파생상품화해 확대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도 급격히 증대해 규모가 2006년말 기준 약 1조4000억 달러로 전체 모기지 대출(약 10.4조 달러)의 13.5%에 달했고 이 중 변동금리 모기지 대출이 전체의 약 85%를 차지했다.
곧 빌린 돈을 못 갚는 사람이 늘었다. 주택가격의 버블이 붕괴되면서 2007년 3분기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은 사상최고(16.31%)를, 주택 차압률은 4년이래 최고수준(6.89%)을 기록했다. 그해 3월 미국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9월 리먼브러더스와 미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사실상 파산했다. 이 무렵 미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받은 금융기관은 600개가 넘었다.
◆위험관리 때문에 엇갈린 생사 =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비는 엇갈렸다. 위험관리를 어떻게 해 왔느냐가 문제였다.
‘금융공룡’ 씨티그룹은 경영진이 위험자산 투자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수익성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사실상 국유화됐다. 거액의 성과급이 임원들을 위험으로부터 눈멀게 했다. 주당 순이익 따라 성과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가장 위험한 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A등급으로 둔갑시켜 유동화한 구조화증권이 최고의 돈줄이 됐다. 위험한 투자로 씨티그룹의 순이익은 2004년 170억달러에서 2005년 245억달러, 2006년 215억달러로 늘어났다가 2007년 36억달러, 지난해 277억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투자은행 부문 6위에서 2위로 뛰어오른 JP모건은 리스크 관리에 철저했다. JP모건은 시장위험 조사 시 과거 4년치의 자료를 사용했고 투자자산에는 스트레스테스트를 적용했다. 전 사업부 임원이 참석하는 월간회의에서 CEO를 위시한 위험관리팀이 추진사업별 위험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등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했다는 평이다.
◆미·영 감독기능 강화 분주 =
세계 각국 정부는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추가적인 위험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타격이 컸던 미국과 영국은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권한을 강화하고, 대형 금융기관, 헤지펀드 등의 금융기관이나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시키고 있다.
미 정부는 금융시장의 감독 및 규제를 통한 위험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재무부가 제안한 금융감독체제 개혁방안에 따르면 금융감독위원회(FSOB), 소비자 금융보호기구(CFPA), 전국은행감독기구(NBS), 전국보험감독사무소(ONI) 등 4개 기관이 신설된다. FSOC는 위험 발생여부를 감시하고 감독기관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NBS는 연방정부의 인가를 받은 은행들을 감독하게 될 예정이다. 통화정책을 주로 담당하던 FRB에는 금융기관 감독권이 부여된다. 일정규모 이상의 헤지펀드나 개별 투자펀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케 한다.
지난 5월에는 장외시장 파생상품 거래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앙청산소를 통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제개혁안을 발표했다.
영국은 금융감독청에 파산은행 처리를 위한 상설특별정리제도(SSR) 운영권한을 부여, 건전성이 악화된 은행에 대해 영란은행 및 재무부 합의하에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은행 역시 일반기업 파산절차에 따라 정리돼 예금자들이 상당기간 돈을 뺄 수가 없게 돼 있었다. 자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 ‘금융안정위원회’를 설치, 통화뿐만 아닌 금융 위험관리에 동참토록 했다.
◆한국, 피해 적어도 안심 못해 =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이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금감원은 최근 13개 금융회사와 협의해 장외파생상품의 스트레스테스트를 직접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지금까지 장외파생상품의 스트레스테스트는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이 자체 시행해 결과를 보고해왔다. 금감원은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우선 74개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장외파생상품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은행도 혹독한 검사를 받고 있다. 금감원이 실시하는 강도 높은 종합검사에 기존의 우량은행들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종합검사 결과 기존 미국 신용부도스와프(CDS)와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파생상품 투자 손실 외에 ‘바이백(buyback) 옵션 형태의 신탁을 통한 4000억원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지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지난 5월 종합검사를 받으며 키코 사태 이후 강화된 파생상품 감독 기준에 따라 두터운 충당금을 쌓으라는 충고를 받았다. 지난달 종합검사가 끝난 수협은행은 향후 경기변동에 대비해 ‘고정’ 등급 이하의 여신비율을 더 떨어뜨리라는 지적을 받았다.
불공정거래를 예방하고 내부통제를 선진화하기 위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4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준법감시협의회’를 발족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으로 인한 피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위험관리나 수익변동성 측면에서 취약한 것으로 분석한다. 우리나라 역시 유동성관리, 금융감독 및 규제 등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처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가 ‘물가안정’에서 ‘금융안정’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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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관리 부재에서 온 금융위기 =
시장의 위험을 키운 것은 금융당국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의장은 2000년 IT버블 때는 물론이고, 2001년 9·11테러나 2002년 엔론 사태이후에도 ‘시장회복’을 명목으로 초저금리 대책으로 일관했다. 이는 도를 넘은 과잉유동성을 촉발했다.
바통은 금융권이 받았다. 은행을 위시한 모든 금융기관들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이용한 유동화채권들을 파생상품화해 확대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도 급격히 증대해 규모가 2006년말 기준 약 1조4000억 달러로 전체 모기지 대출(약 10.4조 달러)의 13.5%에 달했고 이 중 변동금리 모기지 대출이 전체의 약 85%를 차지했다.
곧 빌린 돈을 못 갚는 사람이 늘었다. 주택가격의 버블이 붕괴되면서 2007년 3분기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은 사상최고(16.31%)를, 주택 차압률은 4년이래 최고수준(6.89%)을 기록했다. 그해 3월 미국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9월 리먼브러더스와 미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사실상 파산했다. 이 무렵 미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받은 금융기관은 600개가 넘었다.
◆위험관리 때문에 엇갈린 생사 =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비는 엇갈렸다. 위험관리를 어떻게 해 왔느냐가 문제였다.
‘금융공룡’ 씨티그룹은 경영진이 위험자산 투자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수익성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사실상 국유화됐다. 거액의 성과급이 임원들을 위험으로부터 눈멀게 했다. 주당 순이익 따라 성과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가장 위험한 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A등급으로 둔갑시켜 유동화한 구조화증권이 최고의 돈줄이 됐다. 위험한 투자로 씨티그룹의 순이익은 2004년 170억달러에서 2005년 245억달러, 2006년 215억달러로 늘어났다가 2007년 36억달러, 지난해 277억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투자은행 부문 6위에서 2위로 뛰어오른 JP모건은 리스크 관리에 철저했다. JP모건은 시장위험 조사 시 과거 4년치의 자료를 사용했고 투자자산에는 스트레스테스트를 적용했다. 전 사업부 임원이 참석하는 월간회의에서 CEO를 위시한 위험관리팀이 추진사업별 위험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등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했다는 평이다.
◆미·영 감독기능 강화 분주 =
세계 각국 정부는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추가적인 위험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타격이 컸던 미국과 영국은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권한을 강화하고, 대형 금융기관, 헤지펀드 등의 금융기관이나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시키고 있다.
미 정부는 금융시장의 감독 및 규제를 통한 위험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재무부가 제안한 금융감독체제 개혁방안에 따르면 금융감독위원회(FSOB), 소비자 금융보호기구(CFPA), 전국은행감독기구(NBS), 전국보험감독사무소(ONI) 등 4개 기관이 신설된다. FSOC는 위험 발생여부를 감시하고 감독기관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NBS는 연방정부의 인가를 받은 은행들을 감독하게 될 예정이다. 통화정책을 주로 담당하던 FRB에는 금융기관 감독권이 부여된다. 일정규모 이상의 헤지펀드나 개별 투자펀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케 한다.
지난 5월에는 장외시장 파생상품 거래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앙청산소를 통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제개혁안을 발표했다.
영국은 금융감독청에 파산은행 처리를 위한 상설특별정리제도(SSR) 운영권한을 부여, 건전성이 악화된 은행에 대해 영란은행 및 재무부 합의하에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은행 역시 일반기업 파산절차에 따라 정리돼 예금자들이 상당기간 돈을 뺄 수가 없게 돼 있었다. 자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 ‘금융안정위원회’를 설치, 통화뿐만 아닌 금융 위험관리에 동참토록 했다.
◆한국, 피해 적어도 안심 못해 =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이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금감원은 최근 13개 금융회사와 협의해 장외파생상품의 스트레스테스트를 직접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지금까지 장외파생상품의 스트레스테스트는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이 자체 시행해 결과를 보고해왔다. 금감원은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우선 74개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장외파생상품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은행도 혹독한 검사를 받고 있다. 금감원이 실시하는 강도 높은 종합검사에 기존의 우량은행들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종합검사 결과 기존 미국 신용부도스와프(CDS)와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파생상품 투자 손실 외에 ‘바이백(buyback) 옵션 형태의 신탁을 통한 4000억원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지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지난 5월 종합검사를 받으며 키코 사태 이후 강화된 파생상품 감독 기준에 따라 두터운 충당금을 쌓으라는 충고를 받았다. 지난달 종합검사가 끝난 수협은행은 향후 경기변동에 대비해 ‘고정’ 등급 이하의 여신비율을 더 떨어뜨리라는 지적을 받았다.
불공정거래를 예방하고 내부통제를 선진화하기 위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4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준법감시협의회’를 발족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으로 인한 피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위험관리나 수익변동성 측면에서 취약한 것으로 분석한다. 우리나라 역시 유동성관리, 금융감독 및 규제 등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처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가 ‘물가안정’에서 ‘금융안정’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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