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로 계획은 시대역행
지하도로는 얼핏 들으면 도시 교통문제의 해결책인 것 같다. 지하철처럼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교통경찰도 없는 땅속을 신나게 달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는 것이 여러 경험의 결론이다.
5일 서울시가 발표한 149km 지하도로망 건설계획은 그런 점에서 걱정스럽다. 은평구에서 도심부를 관통해 금천구에 이르는 24.5km, 강북구와 서초구를 잇는 26.3km, 강남구와 도봉구를 잇는 22.8km. 이 세 도로는 공공재정으로 2017년까지 건설하고, 동서축 3개도로는 민간자본으로 2014년 이후 착공하겠다는 것이 계획의 대강이다.
11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조달도 문제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은 지하도로망이 안전과 위생 문제로 골머리 앓게 하는 구조물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차라리 그 돈으로 지하철을 더 만들든지, 아니면 그린 웨이 조성에 쓰는 게 옳지 않을까.
지금 세계의 도시교통정책 추세는 친환경적인 대중교통 수단 확충이다. 수송효율이 높은 철도와 버스를 어떻게 하면 이용하기 편하고 안락하게 할 것인가,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논스톱 지하도로망 건설계획은 어렵게 지하철과 버스로 돌려세운 서울시민의 교통생리를 다시 승용차로 돌아가게 하는 시대 역행적인 시책이 되고 말 것이다.
‘U 스마트 웨이’라는 서울시의 계획은 남북축 도로 3개가 동서축 도로 3개와 거미줄 같이 교차하게 된다. 1990년대 초에 검토하다가 중단한 계획이 2배 이상의 규모로 확대되고 포장지만 화려한 무늬로 바뀐 ‘재탕’이다. 당시 서울시민들은 이 계획이 자가용승용차 중시시책의 표본이라고 반대했다. 배기가스 문제와 안전사고 위험성, 지하철 공사장과 마주치는 부분의 기술적인 문제 등도 거론되었다.
재탕계획을 발표하면서 서울시는 효율적인 환기시설을 설치해 지하도로 공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복층구조로 만들어 사고에 대비하겠으며, 고속 엘리베이터와 대형주차장을 건설해 지상교통과 쉽게 연결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시설을 한다고 해도 지하 40~60m 깊은 땅속에 수많은 자동차가 통행하면서 뿜어낼 배기가스와 안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방도는 없을 것이다. 개발시대에 건설한 남산1호 터널 환기문제를 아직도 안고 있는 현실이 그 한계를 말해준다.
몇 해 전 내부순환도로 북악터널 안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질식해 숨진 사고는 지하도로의 위험성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작은 실수로 일어난 차량화재 유해가스 때문에 어떻게 손을 써볼 겨를도 없었던 엄청난 참사였다. 대구지하철 화재로 인한 대참사도 지하공간에서 유해가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왜 다시 자동차 위주의 정책으로 회귀하느냐는 것이다. 대도시의 교통문제 해결에 대중교통 수단 확충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단기간에 갑자기 인구가 불어난 서울시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와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내해 가면서 지하철 건설에 힘써 아홉 개 노선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 버스 중앙차로 같은 지상 대중교통 시설을 확충해 지하철과 버스 타기가 편해졌다. 이만하면 아쉬운 대로 대중교통 시스템의 골격이 섰다. 승용차의 불편을 감내하면서 추진한 대중교통 위주의 정책을 배우러 오는 나라도 생겼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하도로망인가.
경기도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와의 상관관계는 또 어떻게 되는가. ‘경기도 따로 서울시 따로’의 교통정책이 초래할 혼란과 중복투자는 생각해 보았는가.
승용차 중심의 도로교통 시설은 아무리 확충해도 부족하다. 차를 몰기 편하면 너도 나도 차를 가지고 나와 금세 길이 막힌다. 교통인구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승용차는 타기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해외의 지하도로는 미국 보스턴의 빅 딕 터널, 프랑스 파리의 도로터널, 노르웨이 라달의 도로터널, 일본 도쿄의 중앙환상2호선(건설 중) 등 몇몇 사례가 있다. 그러나 모두 지상도로의 연장 및 보조 개념이지, 지하도로망은 없다. 아이디어와 돈이 없어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에 지적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문 창 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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