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지역내일 2009-08-17
< 대북="" 각론="" 탄력성="" 높일="" 때다="">

갈대가 우거진 습지 사이로 나 있는 풀밭 길을 걸어가는 데 깜작 놀랐다. 길이 60cm 쯤 되는 유혈목이(꽃뱀)를 밟을 뻔 했다. 땅 바닥을 살펴보며 수십 보 더 가는 데 이번에는 중지 손가락 길이의 가느다란 몸통에 발이 달린 도마뱀 모양의 장지뱀을 만났다. 지난주 DMZ 일원의 생태탐사트래킹코스 개발을 위한 답사팀의 일원으로 임진강 북쪽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민통지역을 돌아보았다. 철책선을 따라 고라니들이 뛰어 놀고, 까투리가 새끼 5마리를 이끌고 지나갔다. DMZ는 남북 분단의 아픈 유산이긴 하지만, 생태 면에선 훌륭한 유산이다. 이 일대는 비록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 등의 장벽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동식물의 서식처로서는 따로 구분되어있지 않고 하나의 생태군으로 모두 결합되어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생태계는 이처럼 하나인데, 같은 땅에 사는 인간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달 들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두 여 기자 석방으로 북·미간에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또 북한에 억류돼 있던 개성공단 근로자가 137일 만에 풀려났다. 16일 낮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 체류일정을 5차례나 연장하면서 7일째 대기 중이던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을 면담하고 오찬을 함께 함으로써 개성관광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포함한 남북한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베트남, 몽고를 잇달아 방문한 북한 외무상 부상은 미국과의 대화 용의를 밝히는가 하면 ‘북미간 중대한 진전’을 예고했다고 한다. 미 국무부도 6자 회담 틀 안에서 북한과 대화 할 용의를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계속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신 평화구상’을 내놓았다. 남북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회의 설치,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 추진, 재래식 무기 및 병력 감축 논의, ‘언제, 어떤 수준에서든 남북간 대화 용의’ 등을 밝혔다. 대선 공약인 ‘비핵·개방·3000’ 구상에서 ‘개방’을 빼고, 평화를 강조하면서 그 실천방안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한 프로그램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잇단 석방으로 짐짓 유화 제스처를 취한 반면, 한미 양국은 화답은커녕 겉으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정부의 요지부동한 대북 압박 정책은 총론에서는 맞을지 모른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의 2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잘못된 행동에 채찍을 드는 마당에 당근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문화적 특수 관계를 바탕에 깔고 있는 대북관계를 총론의 고수만으로는 풀어나갈 수 없다. 일관된 총론 속에서도 각론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북이 핵 폐기를 표명하기 이전이라도 비핵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도 부분적으로 가동시킬 필요가 있다. 북이 남측을 따돌리고, 미국하고만 상대하겠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도 지금은 한미 공조로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지만, 예측불허의 북한이 갑자기 6자 회담 복귀 제스처를 취하면서 북미간의 ‘포괄적 패키지’ 협상을 급진전시킬 경우도 상정해야한다. 그럴 경우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 가운데 일부 프로젝트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떠밀려 가동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도래할 수 있다.
대북정책의 모드가 압박 모드로 되어있다고 해서 하나에서 백까지 모두 압박으로 가는 것은 하지하책이다. 북핵 문제와 직결된 정책 총론은 그렇다 하더라도, 인도적 교류, 지원 문제는 정책의 각론으로서 탄력성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유씨 석방을 계기로 그 동안 정부가 제동을 걸어온 민간 방북과 민간 차원의 인도적 대북 지원은 과감히 푸는 것이 좋다. 물론 북측에 나포된 ‘800 연안호’ 선원 4명의 귀환문제나 금강산 관광객 총격피살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등을 방치한 채, 인적, 물적 교류 확대나 정부 차원의 쌀, 비료 지원은 국민정서상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주의와 통합,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강조를 남북관계에도 적용해보면 그래도 살기가 나은 남쪽이 나눔의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이 순리다.
남북관계는 대단히 민감한 관계다.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를 수 있다. 가령 유씨 석방에 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일관된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치 ‘일관된 대북 기조’에 북측이 결국 손을 든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깔린 논평을 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남북 간의 신뢰는 크게 훼손되었다. 왜 신뢰가 깨졌는지 책임을 따지는 것은 현 시점에서 별 의미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신뢰부터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의 첫 단계는 대북정책의 각론에 탄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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