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철도를 가다(상)

지역내일 2009-08-25
시베리아횡단철도 매력에 푹 빠지다
1만㎞ 중 절반 기차로 여행 … 대륙진출의 꿈, 상상만으로 가슴 벅차


(편집자주)
우리나라 철도와 역사 관계자들 180여명은 지난 8월 6일부터 18일까지 12박13일 동안 러시아와 중국의 철도를 직접 체험하고, 안중근 장군의 항일 루트를 열차로 탐방하는 행사를 가졌다. 철도 110주년과 안중근 장군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였다. 한국철도협회와 한국철도대학, 안중근 하얼빈학회가 주관하고, 국회 국토해양위,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공사, 동북아역사재단 등이 후원했다. 한국 철도의 대륙진출 꿈을 키우는 자리이며, 안중근 장군의 항일투쟁 정신을 되세기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12박13일 일정 중 6일부터 13일까지가 러시아에서의 일정이고 이후 18일까지는 중국 일정이었다. 내일신문은 이 행사 동행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 바로 TSR 체험이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철도대학 철도협회 등에 소속된, 대부분 철도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철도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TSR은 동경의 대상이자 넘어야 할 과제다. 남북분단으로 섬 아닌 섬에 갇혀있다 보니 대륙을 지나 유럽으로의 진출은 꿈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남북 철도만 연결된다면 이 꿈은 곧바로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물류의 시·종착지로 거듭날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물류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철도공사 소속으로 이번 일정에서 러시아 통역을 담당한 코레일연구소 박은경 연구원은 “머지않아 우리 철도가 이 길을 통해 유럽으로 진출할 날이 올 것”이라며 “그날을 대비해서라도 철로 하나, 열차의 이음쇠 하나 허투로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일정 중 객차 구석구석, 선로 요모조모를 꼼꼼히 관찰하며 대륙 진출의 꿈을 키웠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노선이다. 러시아 국토를 횡단하며 유럽과 아시아 두 개의 대륙을 잇는 러시아 철도의 상징이다. 총연장 9288㎞. 서울-부산 거리의 20배가 넘으며, 지구 둘레의 4분의 1에 가까운 거리다.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줄곧 달려도 6박7일, 탑승시간만 156시간에 달한다. 달리는 동안 7번이나 시간대가 바뀌는데, 출발역인 모스크바와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시차가 11시간이나 된다. 1916년 개통됐으며, 전철화는 2002년에 완성됐다.


기차에서 80시간, 색다른 경험

일행은 8일 오후 7시(현지시간)쯤 한국의 철도관계자 140여명이 이르쿠츠크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기차에 올랐다. 6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이르쿠츠크에서 이틀을 머문 뒤였다.
이동 거리는 4900여㎞.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절반쯤 되는 거리다. 기차를 타는 시간만 80여 시간이나 되는 엄청난 일정이었다. 9288㎞ 전 구간을 타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TSR의 꽃이라 불리는 바이칼호 구간을 지나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5000㎞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기차에 물을 채우거나 신호대기를 위해 잠시 정차하는 역에서 10~20분쯤 내려 사진을 찍는 일 외에는 기차에서만 생활했다. 기차여행 4일째 되는 11일 오후에만 하바롭스크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 극동철도대학과 한국 철도대학이 마련한 양국 철도발전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열차는 80여시간 내내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달렸다. 자작나무와 전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동안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너른 초지가 펼쳐졌다. 시베리아의 짧은 여름은 상상과는 달리 우리와 비슷한 기후였다. 아직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의 세계를 달리는 색다른 경험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열차 승객들은 대부분 낮 시간을 책을 읽거나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보냈다. 하지만 저녁에는 삼삼오오 보드카를 들고 열차 객실을 오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처음 출발할 당시 낯선 140여명이 함께 탔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모두들 너무도 친해져 있었다. 이것이 오랜 시간 열차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코레일 투어서비스 박우성 과장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의 심정 같다”며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철도여행의 새로운 모습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골프공 하나가 주는 ‘작은 행복’

TSR은 4인실 침대차로 구성돼 있다. 열차에는 샤워시설이 없다. 각 객차마다 화장실이 하나씩 있는데, 이곳에서 볼일도 보고 씻기도 해야 한다. 수도꼭지는 손으로 누르고 있어야만 물이 나오는데 세면대 마개가 없어 고양이 세수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반 여행객들이 TSR을 타는 일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우선 구멍 뚫린 세면대는 골프공이나 소주잔용 종이컵이면 해결된다. 물을 받아 쓸 수 있다. 컵라면 용기나 뚜껑을 잘라낸 페트병을 바가지 삼아 사용하면 거뜬히 샤워도 할 수 있다. 물론 열차 승무원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승무원들이 친절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한국 열차 승무원들 같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끔 승객들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열차 내 식사는 잘 나오는 편이다. 대부분 러시아 현지 음식인데, 전통 스프인 보르쉬(빨간 무와 고기가 주재료)와 빵을 곁들인 각종 스테이크 종류의 음식이 나온다. 식재료는 하루 한 두차례 정차하는 역에서 공급받아 신선하다.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었지만, 계속 기름진 음식만 먹는 게 조금은 불편하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컵라면과 햇반, 김치가 이런 불편을 들어줬다. 백야현상(해가 오전 4시쯤 떠 오후 10시가 돼야 진다)과 시차 때문에 식사시간 개념이 없어져 하루 세 끼 배꼽시계가 가르치는 데로 식사를 해야만 했다.


한국철도, 대륙진출의 꿈을 품다

“승객여러분 지금 기차는 잠시 후 남북 국경을 통과합니다. 여권을 준비해 주세요. 이 기차는 북한을 경유, 러시아 모스크바와 프랑스 파리를 지나 영국 런던까지 가는 대륙횡단열차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상상 속 장면이다. 하지만 그리 머지않은 때에 현실로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연결돼 있다. 북한 나진과 러시아(TSR) 하산을 연결하는 사업도 2006년부터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삼척~포항을 잇는 동해중부선이 지난해 3월 착공(2014년 완공)했으며, 강릉~제진 구간(동해북부선)에 대한 신설도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남은 과제는 북한이 동해선 북쪽 구간을 개방하는 일과, 북한 철도의 현대화. 하지만 한반도종단철도(TKR)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사업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이제 기차를 타고 북한과 러시아를 지나 유럽 각 나라로 가는 날도 머지않은 듯 하다.
이르쿠츠크·블라디보스토크=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이르쿠츠크 어린이 철도학교
철도강국의 꿈이 무르익는 곳

이르쿠츠크에서 들른 ‘어린이 철도학교’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로 치면 여름 계절학교쯤 되는 철도 전문 교육기관인데, 해마다 여름방학 때 4주간 학생들에게 철도 관련 내용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12살부터 입학할 수 있다. 교육기간은 3년이다.
이곳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열차 운전에서부터 정비, 역 운영, 설로 유지·보수 등 철도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공부한다. 3~4냥의 객차를 단 열차도 시범 운행하고 있는데, 표를 파는 일부터 열차를 운전하고 차량과 선로를 정비하는 일까지 전 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한다.
이 열차는 한 사람에 7~15루블(한화 280~600원 수준)씩을 받는데, 앙가라강을 따라 20분 정도를 돌아보는 코스로 돼 있다. 이렇게 열차를 운행해 생긴 수입은 모두 아이들의 급식비 등 철도학교 운영에 쓰인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장차 철도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게 된다. 이 학교는 올해로 70년이나 됐다. 지금까지 4만2000여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졸업했으며, 올해도 85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르쿠츠크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전역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는다.
러시아에는 이런 어린이 철도학교가 20여 곳 이상 있다. 해마다 전국 어린이 철도학교 학생들이 경진대회도 연다.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CIS(독립국가연합, 10개국) 나라들에도 대부분 어린이 철도학교가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10개가 넘는다. 이들 나라들의 철도는 러시아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구소련 시절부터 철도를 운영해온 탓이다.
러시아 인구 1억5000만명 중 2.2%에 달하는 200여만명이 철도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어린이철도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철도 관련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입학한다.
러시아의 어린이 철도학교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코레일 전략기획팀 인태명 부장은 “한국 철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어린이 철도학교 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며 “철도에 대한 국민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어린이 철도학교가 마련된다면 국민들의 철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릴 때부터 철도와 관련된 직업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국토해양위 강길부 의원(한나라·울산 울주)은 “그동안 도로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철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대학 최연혜 총장도 “지금의 철도대학만으로는 전문적인 철도 인력을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우리도 좀 더 어린 학생들에게 철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르쿠츠크=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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