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실패를 답습할 것인가
원승연 (영남대 교수·경제학)
지난달 말 일본의 선거에서 전후 54년간 정권을 잡았던 자민당이 패배하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것도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압도적인 차이로 자민당은 여당의 지위에서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자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가장 큰 계기는 금융위기로부터 촉발된 일본 경제의 불황이었다고 한다.
올해 일본의 1/4분기 성장률은 11.7% 하락하여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극심한 불황의 여파에 시달렸다. 정부의 2700억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7월 현재 일본의 실업률은 5.7%로 최고점을 기록하였다. 혹자는 압승을 거둔 민주당의 주요 슬로건이 사회안전망의 확대 및 비정규직 제한 등이었다는 점에서, 2000년대 전반에 작은 정부를 지향한 고이즈미 개혁이 부메랑처럼 자민당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린 요인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20년 전부터 나타났던 경제성장의 한계와 사회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수출주도적인 성장 모형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수출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부닥쳤고, 이후 20년의 시간은 일본이 새로운 성장동력, 새로운 성장방식을 모색한 기간이었다.
1990년대 일본은 경기불황을 극복하고자 건설을 중심으로 한 공공투자를 실시했으나, 그것은 정부의 재정적자 누적만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또한,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고이즈미의 개혁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재정적자 누적, 양극화 심화
또한 진작 예견되었던 고령화 사회의 문제는 그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한 채, 현재 일본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20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새로운 성장방식을 찾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고이즈미조차도 일본 사회에 진정한 경쟁 방식을 도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속되어온 자민당 관료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은 일련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슘페터가 지적한 것과 같은 혁신적인 기업가 또는 기업이 생성되고 성장하는 것을 막아왔다.
자민당 정부는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일본 중산층의 높은 저축률과 수출을 통한 흑자를 배경으로 재정적자를 오히려 확대시켜 건설족과 같은 집단에게 혜택을 주어왔다.
현재 일본의 젊은 계층은 기존세대의 압박으로 경제적 상승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려니와 고용불안까지 시달리고 있다. 결국 외견상 과감해보였던 고이즈미의 개혁은 기득권 세력을 그대로 둔 채 일본 사회에 제한적으로 경쟁을 도입한, 불안정한 더 나아가서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개혁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옛말처럼, 1960년대부터 한국경제의 성장모형은 상당 부분 일본의 경험에 기초하였다. 그리고 일본과 유사한 한국의 수출주도형 성장방식은 세계적으로 성공사례로 불릴만큼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최근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적인 불황에서도 대기업의 성과는 바로 높아진 한국경제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의 우려는 우리가 일본의 성공을 잘 뒤쫓아왔듯이, 일본의 실패 역시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유감스럽지만 그 가능성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높은 기득권의 벽 허물지 못해
부동산 가격의 불안정성, 무역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경제성장률의 정체, 국민연금의 고갈 가능성, 급속한 고령화 추세 및 청년실업 등은 이미 과거 일본에서 경험했던 현상들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경계해야 할 것은 그동안 경제성장으로 지위를 확보한 중장년층, 대기업과 관료, 전문 영역의 집단들이 기득권을 유지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역동성이 상실될 가능성이다.
일본의 외형적인 개혁이 결국에는 기득권층의 높은 벽을 허물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듯이, 한국의 현재 역시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증거들이 여러 사회적 현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타산지석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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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승연 (영남대 교수·경제학)
지난달 말 일본의 선거에서 전후 54년간 정권을 잡았던 자민당이 패배하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것도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압도적인 차이로 자민당은 여당의 지위에서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자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가장 큰 계기는 금융위기로부터 촉발된 일본 경제의 불황이었다고 한다.
올해 일본의 1/4분기 성장률은 11.7% 하락하여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극심한 불황의 여파에 시달렸다. 정부의 2700억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7월 현재 일본의 실업률은 5.7%로 최고점을 기록하였다. 혹자는 압승을 거둔 민주당의 주요 슬로건이 사회안전망의 확대 및 비정규직 제한 등이었다는 점에서, 2000년대 전반에 작은 정부를 지향한 고이즈미 개혁이 부메랑처럼 자민당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린 요인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20년 전부터 나타났던 경제성장의 한계와 사회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수출주도적인 성장 모형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수출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부닥쳤고, 이후 20년의 시간은 일본이 새로운 성장동력, 새로운 성장방식을 모색한 기간이었다.
1990년대 일본은 경기불황을 극복하고자 건설을 중심으로 한 공공투자를 실시했으나, 그것은 정부의 재정적자 누적만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또한,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고이즈미의 개혁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재정적자 누적, 양극화 심화
또한 진작 예견되었던 고령화 사회의 문제는 그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한 채, 현재 일본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20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새로운 성장방식을 찾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고이즈미조차도 일본 사회에 진정한 경쟁 방식을 도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속되어온 자민당 관료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은 일련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슘페터가 지적한 것과 같은 혁신적인 기업가 또는 기업이 생성되고 성장하는 것을 막아왔다.
자민당 정부는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일본 중산층의 높은 저축률과 수출을 통한 흑자를 배경으로 재정적자를 오히려 확대시켜 건설족과 같은 집단에게 혜택을 주어왔다.
현재 일본의 젊은 계층은 기존세대의 압박으로 경제적 상승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려니와 고용불안까지 시달리고 있다. 결국 외견상 과감해보였던 고이즈미의 개혁은 기득권 세력을 그대로 둔 채 일본 사회에 제한적으로 경쟁을 도입한, 불안정한 더 나아가서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개혁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옛말처럼, 1960년대부터 한국경제의 성장모형은 상당 부분 일본의 경험에 기초하였다. 그리고 일본과 유사한 한국의 수출주도형 성장방식은 세계적으로 성공사례로 불릴만큼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최근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적인 불황에서도 대기업의 성과는 바로 높아진 한국경제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의 우려는 우리가 일본의 성공을 잘 뒤쫓아왔듯이, 일본의 실패 역시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유감스럽지만 그 가능성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높은 기득권의 벽 허물지 못해
부동산 가격의 불안정성, 무역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경제성장률의 정체, 국민연금의 고갈 가능성, 급속한 고령화 추세 및 청년실업 등은 이미 과거 일본에서 경험했던 현상들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경계해야 할 것은 그동안 경제성장으로 지위를 확보한 중장년층, 대기업과 관료, 전문 영역의 집단들이 기득권을 유지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역동성이 상실될 가능성이다.
일본의 외형적인 개혁이 결국에는 기득권층의 높은 벽을 허물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듯이, 한국의 현재 역시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증거들이 여러 사회적 현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타산지석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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