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금감원 사람들> 이순철 금감원 부원장

보소신 굽히지않는 원칙주의자

지역내일 2001-08-09 (수정 2001-08-11 오후 12:42:25)
“해태타이거스 이순철은 야구도 잘하고 매너도 좋은디…. 우리공장 이순철은 언제나 철이 들까.” 지난 89년 한국은행 벽보에 나붙었던 ‘노동조합원 발언대’의 한 구절이다.
한 10여년 전쯤 한국은행에 근무했던 사람 치고 이순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당시 해태 타이거스 이순철과 비교되면서 한은 벽보를 장식했던 ‘이순철’이 지금의 이순철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10여년전 한은 행원 1명과 노동조합 간에 벌어진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는 얘기를 듣고 사건의 전말에 대해 묻자 이 부원장보의 얼굴은 삽시간에 상기됐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물으시니 당황스럽습니다.”
이 부원장보는 가슴 한켠 깊이 묻어 둔 힘들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이 부원장보가 말하는, 일명 ‘한국은행 노동조합 간부들의 외화자금과 난동사건 일지’의 개요는 대충 이랬다.
89년 이순철 부원장보가 한국은행 외화자금과장이던 시절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그해 6월 이순철 과장이 당시 부하직원이었던 김 모씨가 단체교섭위원으로 노조에 1개월간 파견 근무하게 돼 자금관련 업무에 차질이 생기자 다른 직원을 그 자리에 대신 임명, 업무공백을 메우려 한 일부터 시작됐다. 89년 당시는 사회적으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어 노동조합 활동이 격렬한 시기였다.
한은 노조는 이 과장의 업무조치가 노조탄압 행위라며 원색적인 표현으로 이 과장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한은 내에 붙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노조 간부들이 이 과장의 사무실에 찾아와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까지 번졌다.
이유야 어찌됐건 당시 대자보 내용은 이 과장의 인격을 짓밟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과장은 은행발전의 위해자” “이 과장은 바보 병신 짓거리 그만두거라” 등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했다.
“당시 저는 노조 간부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여버리겠다. 생에 애착이 없냐는 얘기까지 들었으니까요.”

아픈 상처로 남아버린 법정 싸움
그때 한은 노조간부들과 이 과장은 극단적인 감정 대립으로 치달았다. 결국 양측의 싸움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당시 이 과장은 노조간부들을 상대로 폭력행위, 명예훼손, 모욕 등 7번의 민형사 소송을 제기, 89년 말부터 3년여 동안 법정싸움을 벌였다.
한은 경영진에게는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다섯 차례나 보내고, 행내 폭력사태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경영진에 항의했다. 또 노조는 이순철 과장을 한은에서 내보내지 않으면 경영진에 책임을 묻겠다고 나오는 등 이래저래 한은 내부는 노조와 이 과장 사이의 싸움으로 시끄러웠다.
“전 그때 경영진이 무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행내에서 벌어진 노조의 폭력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경영진에게 대놓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쯤해서 그만두라’는 경영진의 회유에 더욱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노조가 이 과장에게 사과하고 한은 13개 지점에 일주일간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93년 8월 그는 지난 3년여 동안 노조와 벌어졌던 일들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해 책을 한권 펴냈다. 제목은 <한국은행 노동조합="" 간부들의="" 외화자금과="" 난동사건="" 일지="">. 책 서문에 그는 “다시는 소신 없고 무책임한 최고 경영층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빌면서, 그리고 나를 도와주신 행 내의 많은 분들에게 그간의 투쟁경과를 보고 드리기 위해, 조금의 보탬도 없이 있었던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깁니다”라고 썼다.

노조와 인연은 계속되다
그가 한국은행에 입행한 것은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65학번) 졸업 후 2년 뒤인 72년이었다. 한은 입행 후 그는 주로 외환과 국제업무를 주로 맡았다. 99년 금융감독원이 출범한 이후에는 감독조정실장을 잠시 맡다가 금감원 안살림을 챙겨야 하는 총무국을 맡아 99년 9월부터 올 4월까지 2년여 동안 이끌었다.
출범초기 금감원은 은행감독국, 증권감독국, 보험감독국,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관이 합쳐진 터라 조직융합 작업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서로 섞이기 힘든 조직을 융화시키려면 각각으로 흩어져 있던 인사제도와 조직체계를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먼저 직원간 서열을 재정비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한 사람도 생겼다. 특히 은감원 출신들은 입사가 빠른 데도 타 출신보다 서열이 뒤쳐져 불만을 갖기도 했다. 이런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은감원 출신들을 발탁하는 ‘탕평책’을 썼다.
상근 노조 인원을 줄이는 일도 비교적 원만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구조조정이 진행됐기 때문에 노조전임자 인원 역시 축소해야 할 형편이었다.
금감원의 현 노조 간부는 “노조 전임자 인원을 12명에서 5명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노조와 마찰은 있었지만 별 무리 없이 일을 진행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초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란 속에서 노조가 강경 투쟁을 벌일 때도 총무국장으로서 노조의 입장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며 “노조와의 악연이 있지만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순철 부원장보는 자신이 세운 원칙에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을 하지 않는 외곬 기질이 있다”며 “그의 매력은 바로 원칙주의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독조정국 이끌어
그가 부원장보로 승진한 것은 지난 4월이다. 입행 동기이자 대학동기인 정기홍 부원장보다 승진이 약간 늦은 편이었지만 지난해부터 부원장보 승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름이 거론됐다. 현재 그는 감독총괄 부원장보로 감독조정국장을 겸하면서 경영정보실 등을 책임지고 있다.
그가 앞으로 해야 일은 많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 등 금융지주회사가 올곧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과거 그가 보여줬던 기질과 원칙에 충실하려는 모습이 금융정책에 그대로 반영돼 앞으로도 더욱 금융산업 발전에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