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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실용 vs. 포퓰리즘
김종걸(한양대국제학대학원)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가 53.8%로 상승했다고 한다. 8월에 비해 무려 14%,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작년 6월보다는 무려 4배 이상 높아졌다고 보도된다(‘내일신문’ 9월 14일). 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명박정부는 새롭게 업드레이드된 것인가?
혹자는 경제회복에 대한 공로를 이야기한다.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작년 이맘때의 공포감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경제회복은 경이적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공(功)으로 보기는 어렵다. 경제회복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발빠른 정책공조, 그리고 중국경제의 건실한 성장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년 강만수 경제팀은 환율정책의 혼선에서 보이듯 경제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는 책임론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또 다른 논자들은 대통령의 노선변화에 주목한다. 서민중시·중도실용 노선이 바로 그것이다. 거듭되는 민생현장 방문,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국장 결정,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총리지명 등은 현 정부의 노선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무엇이 중도실용인가? 무엇이 서민중시정책으로의 전환인가? 돌이켜 보건데 현 정부는 애초 하고자 했던 정책을 ‘이미 다’ 해버렸다.
부자감세 세제개편안은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재벌규제, 부동산 관련 규제도 거의 다 풀어버렸다. 공기업 선진화계획에 따라 상당수 공기업은 이미 매각중이며, 4대강유역 개발도 여전히 강행중이다. 부자감세·토건경제에 대한 비판에 대해 묵묵부답이며, 당연히 있어야 할 재정건전성이라는 단어도 정책담당자의 말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귀결될 막대한 재정자금이 그 어떠한 견제장치도 없이 마구 풀리고 있다. 결국 올 국가재정은 50조원 이상 적자가 예상되며, 2010년 국가채무는 300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만에 4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된다. 불과 10년 만에 국가재정이 완전히 파탄난 1990년대의 일본의 정책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알고 있는 ‘중도실용’이란 이런 모습이 아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반대파와의 거리를 좁히며,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도 구체적이어야만 한다. 재벌과 토건 중심의 불균등 성장모델에서 혁신 주도의 동반성장 모델로 전환해야 하며, 4대강유역 개발 및 공기업 민영화도 철저한 검증 속에서 재고되어야만 한다.
경제성장의 실효성이 없는 부자감세를 폐기하고, 알뜰한 살림 속에서도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서는 씀씀이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즉, 지금까지의 정책기조의 전환이 바로 중도실용인 것이지, 대통령의 남대문시장 방문, 정운찬 총리 지명과 같은 퍼포먼스가 중도실용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감성을 자극하는 비이성적인 정치” 혹은 “서민대중을 내세우지만 그 운동의 열매는 선동정치인의 몫으로만 귀결되는 정치”를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서병훈‘포퓰리즘’). 이미 하고 싶은 정책을 몽당 다 해버리고 나서, 단지 이미지 변신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중도실용이 아니라 단순한 포퓰리즘에 불과한 것이다.
기왕지사 서민중시·중도실용의 깃발을 내건 이 대통령의 의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지난 1년 반 동안 국가사회의 갈등이 너무나 컸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며 선의의 정책전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성과 선의에 입각한 정책전환이라면 당연히 그 내용도 구체적이어야만 한다. 부자감세 및 4대강유역개발과 같은 정책에서 가시적인 정책전환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진정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용산참사 현장에 대한 방문 등과 같은 또 다른 이미지 정치로 달려간다면, 무척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현 정부의 정책전환이 단순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리고 정운찬 총리지명자가 단순한 포퓰리즘의 꽃놀이패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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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실용 vs. 포퓰리즘
김종걸(한양대국제학대학원)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가 53.8%로 상승했다고 한다. 8월에 비해 무려 14%,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작년 6월보다는 무려 4배 이상 높아졌다고 보도된다(‘내일신문’ 9월 14일). 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명박정부는 새롭게 업드레이드된 것인가?
혹자는 경제회복에 대한 공로를 이야기한다.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작년 이맘때의 공포감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경제회복은 경이적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공(功)으로 보기는 어렵다. 경제회복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발빠른 정책공조, 그리고 중국경제의 건실한 성장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년 강만수 경제팀은 환율정책의 혼선에서 보이듯 경제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는 책임론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또 다른 논자들은 대통령의 노선변화에 주목한다. 서민중시·중도실용 노선이 바로 그것이다. 거듭되는 민생현장 방문,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국장 결정,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총리지명 등은 현 정부의 노선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무엇이 중도실용인가? 무엇이 서민중시정책으로의 전환인가? 돌이켜 보건데 현 정부는 애초 하고자 했던 정책을 ‘이미 다’ 해버렸다.
부자감세 세제개편안은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재벌규제, 부동산 관련 규제도 거의 다 풀어버렸다. 공기업 선진화계획에 따라 상당수 공기업은 이미 매각중이며, 4대강유역 개발도 여전히 강행중이다. 부자감세·토건경제에 대한 비판에 대해 묵묵부답이며, 당연히 있어야 할 재정건전성이라는 단어도 정책담당자의 말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귀결될 막대한 재정자금이 그 어떠한 견제장치도 없이 마구 풀리고 있다. 결국 올 국가재정은 50조원 이상 적자가 예상되며, 2010년 국가채무는 300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만에 4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된다. 불과 10년 만에 국가재정이 완전히 파탄난 1990년대의 일본의 정책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알고 있는 ‘중도실용’이란 이런 모습이 아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반대파와의 거리를 좁히며,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도 구체적이어야만 한다. 재벌과 토건 중심의 불균등 성장모델에서 혁신 주도의 동반성장 모델로 전환해야 하며, 4대강유역 개발 및 공기업 민영화도 철저한 검증 속에서 재고되어야만 한다.
경제성장의 실효성이 없는 부자감세를 폐기하고, 알뜰한 살림 속에서도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서는 씀씀이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즉, 지금까지의 정책기조의 전환이 바로 중도실용인 것이지, 대통령의 남대문시장 방문, 정운찬 총리 지명과 같은 퍼포먼스가 중도실용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감성을 자극하는 비이성적인 정치” 혹은 “서민대중을 내세우지만 그 운동의 열매는 선동정치인의 몫으로만 귀결되는 정치”를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서병훈‘포퓰리즘’). 이미 하고 싶은 정책을 몽당 다 해버리고 나서, 단지 이미지 변신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중도실용이 아니라 단순한 포퓰리즘에 불과한 것이다.
기왕지사 서민중시·중도실용의 깃발을 내건 이 대통령의 의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지난 1년 반 동안 국가사회의 갈등이 너무나 컸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며 선의의 정책전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성과 선의에 입각한 정책전환이라면 당연히 그 내용도 구체적이어야만 한다. 부자감세 및 4대강유역개발과 같은 정책에서 가시적인 정책전환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진정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용산참사 현장에 대한 방문 등과 같은 또 다른 이미지 정치로 달려간다면, 무척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현 정부의 정책전환이 단순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리고 정운찬 총리지명자가 단순한 포퓰리즘의 꽃놀이패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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