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보다 중요한 세제 일관성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1981년 당시 소득세 최고세율은 70%였다. 그래서 레이건 집권 이후 소득세 최고세율을 내리는 데 반발이 별로 없었다.
레이건은 70년대의 1·2차 석유위기로 초래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세율을 낮춰서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세율을 낮추면 처음에는 세수가 감소하겠지만, 점차 경제가 활성화되고 결국 세수가 더 늘어난다’는 공급측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 과감한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법인세율은 48%에서 34%로 대폭 인하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감세는 경기 활성화시키기보다 재정적자만 키워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재정건전성이 무너졌다. 레이건이 당선된 1980년 말 미국의 누적 재정적자는 7100억달러로 GDP대비 26% 정도였으나, 클린턴이 취임한 1993년 말에는 3조2500억달러로 GDP 대비 50%에 달했다. 클린턴은 세율을 다시 올릴 수밖에 없었고 1998년이 되어서야 재정수지는 다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감세보다는 재정지출 확대를 선호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의 구조적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94년, 98년, 99년 3회에 걸쳐 법인세 최고세율을 50%에서 37.5%로 내렸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의 높은 저축 선호도로 인해 감세로 인한 가처분 소득의 증가는 소비확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대부분 저축으로 흡수되어 재정적자만 커졌다.
2000년에는 재정적자가 GDP의 7%에 달했으며, 2001년도에는 국채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지출만 10.4조엔에 달했다. 일본에서도 감세는 경기를 활성화시키기보다는 재정적자만 확대시켰다. 사회복지에 소요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5%의 소비세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개진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에서 감세는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감세를 옹호했던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아랫묵이 따뜻하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트리클다운’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중론이다.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1.1%, 국민부담률은 26.8%로서 OECD 평균 27.4%와 36.6%에 비하면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아울러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가 1997년 29.8%에서 2007년 47.4%로 두배 가량 늘었으며, 자영업자의 경우에도 40% 이상이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근로자는 1997년 695만8000명에서 2007년 662만1000명으로 줄었으며, 전체 근로자의 1인당 연간 납세액은 1997년 48만8000원에서 2007년 91만8000원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감세가 불가피한 상황도 아닌데 이명박정부는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부동산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거의 모든 세목에 걸쳐 감세를 밀어붙였다. 그러더니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재정건전성을 중심으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기존의 임시투자세액공제 7%를 10%로 늘려 투자확대를 유도하겠다고 1년 전에 발표했는데, 올해는 내년도 투자를 올해로 앞당기기 위해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1년만에 ‘감세’에서 ‘증세’로 왔다갔다해서야
정책은 일관성이 중요하다. 감세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 감세를 선언했으면 최소한 몇년은 그대로 가야 한다. 당연히 그 기간에 재정건전성은 나빠지게 돼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 몇년 뒤에 다시 증세 기조로 바꾸면 된다. 1년만에 왔다갔다 해선 안된다.
5년마다 중기재정계획을 수립하도록 바꾼 것처럼 세제도 5년 단위로 큰 흐름을 잡아가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세제에 관한 중기운용계획을 5년 단위로 수립하도록 법에 명시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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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1981년 당시 소득세 최고세율은 70%였다. 그래서 레이건 집권 이후 소득세 최고세율을 내리는 데 반발이 별로 없었다.
레이건은 70년대의 1·2차 석유위기로 초래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세율을 낮춰서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세율을 낮추면 처음에는 세수가 감소하겠지만, 점차 경제가 활성화되고 결국 세수가 더 늘어난다’는 공급측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 과감한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법인세율은 48%에서 34%로 대폭 인하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감세는 경기 활성화시키기보다 재정적자만 키워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재정건전성이 무너졌다. 레이건이 당선된 1980년 말 미국의 누적 재정적자는 7100억달러로 GDP대비 26% 정도였으나, 클린턴이 취임한 1993년 말에는 3조2500억달러로 GDP 대비 50%에 달했다. 클린턴은 세율을 다시 올릴 수밖에 없었고 1998년이 되어서야 재정수지는 다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감세보다는 재정지출 확대를 선호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의 구조적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94년, 98년, 99년 3회에 걸쳐 법인세 최고세율을 50%에서 37.5%로 내렸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의 높은 저축 선호도로 인해 감세로 인한 가처분 소득의 증가는 소비확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대부분 저축으로 흡수되어 재정적자만 커졌다.
2000년에는 재정적자가 GDP의 7%에 달했으며, 2001년도에는 국채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지출만 10.4조엔에 달했다. 일본에서도 감세는 경기를 활성화시키기보다는 재정적자만 확대시켰다. 사회복지에 소요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5%의 소비세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개진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에서 감세는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감세를 옹호했던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아랫묵이 따뜻하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트리클다운’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중론이다.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1.1%, 국민부담률은 26.8%로서 OECD 평균 27.4%와 36.6%에 비하면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아울러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가 1997년 29.8%에서 2007년 47.4%로 두배 가량 늘었으며, 자영업자의 경우에도 40% 이상이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근로자는 1997년 695만8000명에서 2007년 662만1000명으로 줄었으며, 전체 근로자의 1인당 연간 납세액은 1997년 48만8000원에서 2007년 91만8000원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감세가 불가피한 상황도 아닌데 이명박정부는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부동산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거의 모든 세목에 걸쳐 감세를 밀어붙였다. 그러더니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재정건전성을 중심으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기존의 임시투자세액공제 7%를 10%로 늘려 투자확대를 유도하겠다고 1년 전에 발표했는데, 올해는 내년도 투자를 올해로 앞당기기 위해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1년만에 ‘감세’에서 ‘증세’로 왔다갔다해서야
정책은 일관성이 중요하다. 감세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 감세를 선언했으면 최소한 몇년은 그대로 가야 한다. 당연히 그 기간에 재정건전성은 나빠지게 돼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 몇년 뒤에 다시 증세 기조로 바꾸면 된다. 1년만에 왔다갔다 해선 안된다.
5년마다 중기재정계획을 수립하도록 바꾼 것처럼 세제도 5년 단위로 큰 흐름을 잡아가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세제에 관한 중기운용계획을 5년 단위로 수립하도록 법에 명시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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