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지 이보다 좋을순 없다 - 2. 병산서원

대청마루에 앉아 처마에 걸린 세월을 낚는다

지역내일 2001-07-23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여행이었다. ‘사서 고생한다’는 표현이 어쩜 잘어울린다는 느낌도 들었다. 병산서원이라는 푯말을 쫓아 험난한 자갈길을 오르고 내리던 20여분간의 순간은 그러했다. 잘못온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 짧지 않은 십여리길을 달리면서 ‘그래도 가보자’와 ‘이쯤에서 돌아서자’라는 마음이 수십번이나 교차했다. 명색이 안동을 대표한다는 서원이 들어선 곳인데 가꾸지는 못할 망정 곳곳에 널부러진 암초만은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닌가하는 질책마저 들었다. 다행히도 초행길의 설레임과 명승고적을 방문한다는 흥분이 쉽지 않은 산행길을 재촉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시야에 들어오는 고즈넉한 풍경이 땀방울 흘리며 숨차게 올라온 우
리를 다소곳이 맞아주었다. 푸른빛 고운 자태를 뽐내는 청산을 돌아 조용히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하며 동해안 어느 해변가와도 맞장떠 물러설 것 같지 않을 넓은 백사장. 한껏
물오른 이름모를 꽃들속에 수줍게 자리잡은 병산서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폭의 풍경화에
일행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간의 짜증과 고생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나절 뙤약빛을 피해 달려간 서너시간의 길지않은 병산서원 여행은 서투른 필자의 감성에
적지않은 쓸거리를 제공했다. 계명산에 이어 두 번째로 달려간 병산서원 방문기에 양념을
듬뿍발라 별미 간식으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쉽지만은 병산서원 가는길
병산서원의 명성이야 익히 잘 알려진터라 그간의 사정을 이러쿵 저러쿵하며 옮겨 적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 싶다. 필자또한 병산서원의 전신이 풍악서당이었으며 1572년 선조 5년에
서애 류성룡 선생이 옮겨 왔다는 것, 1863년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
으로 승격됐다는 것, 1868년 고종 5년 서슬퍼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때도 훼철되
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중 하나라는 것 외에는 아는바가 없다. 방문목적또한 서원이 주
(主)라기 보다는 태고의 숨결이 베여있는 자연미나 맛보기 위함이었다. 여행이란 자고로 생
활에 찌든 때를 한아름 안고가 훌훌 털어 버리고 오는 재미가 솔솔한지라 가뜩이나 아픈 머
리에 애써 가식적인 지식을 구겨넣을 필요는 없을 듯 싶었다.
34번국도를 타고 안동시내에서 병산서원을 향해 달린지 30여분. 지리적으로 하회마을과 인
접해 있던 터라 굳이 ‘병산서원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없어도 길은 손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하회마을에 막 다다른 초입길목에서 좌측으로 병산서원 가는길이라는 이정표 하나
를 발견했다. 하회길과는 달리 포장도 되어있지 않고 넓지도 않았다. 마주오는 차라도 발견
하면 낭패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아니나다를까 승용차 한 대가 쿨렁쿨렁거리며 우리차를
향해 돌진해오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대로에서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비상등을 켜고
길을 비켜주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병산서원 4km’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의 길도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이 길을 10여리나 더 가야된다고 하니 가슴이 탁 막혔다. 과연 이 길
을 달려 병산서원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10여분쯤 지나 마주오는
차 한 대를 또 하나 발견했다. 비켜주는 번거러움보다는 동지를 만난 기분이 앞섰다. 끝도없
는 자갈길을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3km, 1,5km …. 좀체 보일 것 같지 않았던 병산서원이
조금씩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어컨도 꺼고 창문을 활짝 열어 달리
던 터라 땀방울은 등줄기를 타고 연신 흘러내렸지만 고지를 향해 돌진하는 군인들처럼 오기
로 달렸다. 산마루에 이를 무렵 속내를 감추고 꼭꼭 숨어있던 자연이 하나둘씩 우리를 반기
기 시작했다. 꼬박 30여분을 달린 결과였다.

병산에 기대어 굽이치는 낙동강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은 겹겹히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병산을 휘돌아 유유히 흐르는 강
줄기와 금모래빛 백사장이었다. 백사장은 그 넓이가 얼마나 넓었던지 순간 동해안 어느 해
수욕장에 온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올라오는 길 내내 무수히 쏟아밷은 푸념과
짜증이 일순간에 자취를 감쳐버리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병산서원의 고운 자태가 울긋불긋
한 꽃들과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쉽지않은 길 덕분인지 병산서원과 주변의 자연은 손때가
별로 묻어있지 않았다. 일행중 한명인 오는길 왜그리도 험하고 험한 이유를 이제서야 알것
같다는 말로 맞장구를 쳤다. 주차장 한켠에 차를 대고 주위를 둘러보니 파아란 잔디밭 구석
그늘에서 일가족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거른 일행은 거저 입맛만 다셨다.
발길을 돌려 곧장 경내로 들어갔다. 때이른 더위를 피해 타지에서 온 듯한 대학생들이 야영
을 하고 있었다. 부러운 마음에 몇마디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다정한 분위기를 깰 것
같아 입교당으로 향했다. 그옛날 선비들이 서책을 들고 맹자왈 공자왈 했을 것 같은 입교당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글 몇자 말 몇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처마 끝에 걸린 백사장과 강줄기는 한층 더 멋스러움이 들었으며 옆으로 수백년은 됬음
직한 청송의 단아한 자태가 들어오자 그야말로 한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었다. 기록을 남기
기위해 사진기의 셔터를 연신 눌러댔지만 마음에 쏙드는 그림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가슴속에 그모습 그대로 담았다.

흐르는 강물에 발담그고 세월을 낚다.
경내 한편에서는 또다른 대학생들이 만대루의 마루에서 뭔가를 열심히 읽어내리며 말나눔을
하고 있었다. 서원의 이미지와 너무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서원
이곳저곳을 살폈다. 여름나기에 교육적 효과를 더한다면 병산서원이 안성마춤일 듯 했다. 물
론 사전에 부모들이 서원의 내력을 살펴 한자락 보탠다면 금상첨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속에서 ‘조선최고의 똥통’이라고 지칭했던
변소는 세월의 때를 벗고 현대식 재료에다 때깔나는 기와장을 얹어 옛자취는 남아있지 않았
다. 유교수가 맡았음직한 향기나는 구린내는 맡지못하는 불만아닌 불만이 들었다. 다만 변소
입구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조각난 대형거울이 찾는 이들의 이상야릇한 표정만을 전해줄 뿐
이었다.
서원을 둘러보고 자연에 취하면서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내 돈 꽤나 권력쬐끔
쥐고 있는 선비들의 풍수지리술은 여간해선 따라잡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어쩌
면 이렇게도 절묘한 곳을 찾아 터를 잡고 기둥을 세우고 기왓장을 올렸는지 감탄에 감탄만
이 나올 뿐이었다. 그 옛날 선비들은 가부좌를 틀고 책상머리에 앉아 세월을 낚으며 때론
체통도 잊고 뒤쳐나가 강물에 발을 담그고 멱을 감았을 것이 아닌가. 감탄과 아울러 부러움
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서원을 빠져나오는 길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잠시나마 한적한 곳을
찾아 여유를 찾았음에 위로를 받았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