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에 맞는 부모노릇
김이경(소설가) 또는 (작가, 도서평론가)로 소개해주세요
이번에도 자식이 문제입니다. 총리 후보자는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로,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의 병역 문제로 의혹을 사고 있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을 명문교에 보내려고 위장전입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얼마 전 간신히 청문회를 통과한 검찰총장 역시 딸들을 위해 두 차례나 위장전입을 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분개하지만 사람들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나는 빽이 없어 못한 것을 해낸 것이 부럽고 미운 한편,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자식에게 미안하고 억울합니다. 자식 일에도 무조건 원칙대로를 주장하는 부모가 있다면 앞에선 훌륭하다고 치켜세우지만 뒤에선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흉을 듣기 일쑤입니다. 대개의 부모들이 자식에 관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건 아버지건, 많이 배웠건 못 배웠건, 보수건 진보건 다 똑같습니다.
하지만 자식 일에도 차마 하지 못하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있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위장전입이나 병역 비리처럼 명백한 범법행위만이 아닙니다.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면 꼴사납듯이, 아이들이 경쟁하는 데 부모가 끼어들어서도 안 됩니다. 대학 수시 모집에 부모가 대신 자기소개서를 써 주거나 직위와 연줄을 이용해 수행평가 점수를 높이는 것 따위는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또한 규칙에서 벗어난 일이며 옳지 않은 짓입니다.
사실 부모가 직접 원칙에서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들 경쟁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지난 13일 안민석 의원이 내놓은 특목고·자사고 재학생 현황을 보면, 부모의 학력과 직위가 아이들의 경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원외고의 경우 부모가 의료·법조인인 학생이 22%였고 이화외고는 26%였으며, 민족사관고의 경우 22.3%가 의료계 종사자였습니다.
비싼 사교육이 아니더라도, 많이 배우고 돈 잘 버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공부를 잘할 확률이 높은 건 분명합니다. 환경도 좋은데다 성공한 부모를 모델 삼아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걸로도 모자라 부모가 직접 아이들 경쟁에 뛰어들어 힘을 보탠다면 그건 이미 경쟁이 아니라 횡포이며 싸움에서 진 아이들의 원망을 부르는 일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울어도 내 아이는 절대 우는 일이 없을 거라고 믿는 게 아니라면, 부모는, 부모 된 자는 차마 그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한문학자 정민 씨의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딸아이가 아우 혼인 때 친정에 와서 <임경업전>을 필서하다가 다 못하고 가기에, 아우와 종남매, 숙질이 이어 쓰고 늙은 아비도 아픈 중에 서너 장 베꼈으니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는 필사기였습니다.
책이 귀하던 조선시대에는 재미난 책을 보면 필사해서 소장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아마 시집간 딸도 친정에 왔다가 <임경업전>을 보고 재미가 있으니 필사를 시작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다 베껴 쓰기도 전에 시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겠죠. 아버지는 아쉬워하는 딸을 위해 온 가족을 동원하고, 그도 모자라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필사를 해서 책을 완성합니다. 필사본 뒤에 적은 필사기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멀리서 응원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마 책을 볼 때마다 딸은 그 마음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을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2차 대전 때 이오지마 전투에서 죽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품에 안고 있었던 편지를 65년 만에 유복자인 딸이 받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늙은 딸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며 울었답니다. 아마 그 순간 딸은 아버지 없이 살면서 겪었던 생의 모든 고단함을 잊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법을 어기는 맹목보다는 자식을 생각하며 책을 베끼고 편지를 쓰는 마음,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그 마음이 간절한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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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전>임경업전>
김이경(소설가) 또는 (작가, 도서평론가)로 소개해주세요
이번에도 자식이 문제입니다. 총리 후보자는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로,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의 병역 문제로 의혹을 사고 있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을 명문교에 보내려고 위장전입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얼마 전 간신히 청문회를 통과한 검찰총장 역시 딸들을 위해 두 차례나 위장전입을 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분개하지만 사람들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나는 빽이 없어 못한 것을 해낸 것이 부럽고 미운 한편,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자식에게 미안하고 억울합니다. 자식 일에도 무조건 원칙대로를 주장하는 부모가 있다면 앞에선 훌륭하다고 치켜세우지만 뒤에선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흉을 듣기 일쑤입니다. 대개의 부모들이 자식에 관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건 아버지건, 많이 배웠건 못 배웠건, 보수건 진보건 다 똑같습니다.
하지만 자식 일에도 차마 하지 못하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있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위장전입이나 병역 비리처럼 명백한 범법행위만이 아닙니다.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면 꼴사납듯이, 아이들이 경쟁하는 데 부모가 끼어들어서도 안 됩니다. 대학 수시 모집에 부모가 대신 자기소개서를 써 주거나 직위와 연줄을 이용해 수행평가 점수를 높이는 것 따위는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또한 규칙에서 벗어난 일이며 옳지 않은 짓입니다.
사실 부모가 직접 원칙에서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들 경쟁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지난 13일 안민석 의원이 내놓은 특목고·자사고 재학생 현황을 보면, 부모의 학력과 직위가 아이들의 경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원외고의 경우 부모가 의료·법조인인 학생이 22%였고 이화외고는 26%였으며, 민족사관고의 경우 22.3%가 의료계 종사자였습니다.
비싼 사교육이 아니더라도, 많이 배우고 돈 잘 버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공부를 잘할 확률이 높은 건 분명합니다. 환경도 좋은데다 성공한 부모를 모델 삼아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걸로도 모자라 부모가 직접 아이들 경쟁에 뛰어들어 힘을 보탠다면 그건 이미 경쟁이 아니라 횡포이며 싸움에서 진 아이들의 원망을 부르는 일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울어도 내 아이는 절대 우는 일이 없을 거라고 믿는 게 아니라면, 부모는, 부모 된 자는 차마 그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한문학자 정민 씨의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딸아이가 아우 혼인 때 친정에 와서 <임경업전>을 필서하다가 다 못하고 가기에, 아우와 종남매, 숙질이 이어 쓰고 늙은 아비도 아픈 중에 서너 장 베꼈으니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는 필사기였습니다.
책이 귀하던 조선시대에는 재미난 책을 보면 필사해서 소장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아마 시집간 딸도 친정에 왔다가 <임경업전>을 보고 재미가 있으니 필사를 시작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다 베껴 쓰기도 전에 시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겠죠. 아버지는 아쉬워하는 딸을 위해 온 가족을 동원하고, 그도 모자라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필사를 해서 책을 완성합니다. 필사본 뒤에 적은 필사기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멀리서 응원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마 책을 볼 때마다 딸은 그 마음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을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2차 대전 때 이오지마 전투에서 죽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품에 안고 있었던 편지를 65년 만에 유복자인 딸이 받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늙은 딸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며 울었답니다. 아마 그 순간 딸은 아버지 없이 살면서 겪었던 생의 모든 고단함을 잊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법을 어기는 맹목보다는 자식을 생각하며 책을 베끼고 편지를 쓰는 마음,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그 마음이 간절한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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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전>임경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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