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역사문화올레를 걷다

지역내일 2009-10-28
도심 속 역사문화올레를 걷다
제주에 자연경관과 섬사람들 삶터가 조화를 이룬 올레가 있다면 서울에는 역사와 문화 전통이 어우러진 올레가 있다. 고층 건축물 사이에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흔적이 있는가 하면 ‘서울깍쟁이’들 전통과 문화를 담은 공간들이 숨어있다. 서울 도심에서 발품 팔며 돌아볼 만한 도심 속 역사문화 올레를 소개한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대사관저 골목에서 만해 상허를 만나다
선잠단지에서 시민문화유산1호까지 … 미술관 맛집 찾는 재미도 쏠쏠

명망있는 재벌가가 몰려있어 ‘부자들의 동네’로 이름난 서울 성북구 성북동. 30개에 달하는 대사관저가 집중된 대사관저촌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니 유적지와 문화재가 그득한 동네다. 조선의 도읍 한양을 지키던 서울성곽에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왕(이 강)의 별채, 만해 한용운의 기개가 돋보이는 한옥, 요정정치 산실에서 급변신한 문화 종교시설, 민간모금운동으로 지켜낸 시민문화유산 1호까지 다양하다.
4~5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지만 볼거리가 많아 여유롭게 한나절을 할애해도 좋겠다. 미술관이며 골목골목 숨은 찻집이며 밥집까지 부대로 즐길 거리도 만만찮다. 골목끝 한옥이 어느 나라 대사님 거처인지 헤아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구청에서 만든 성북동 그림지도를 미리 챙겨 동선을 미리 짜는 방법도 권장할 만하다.

출발·도착지 삼선교 전철역

성북동 나들이는 지하철 4호선 삼선교(한성대입구)역에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삼선교역 6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성북동길을 따라 성북초등학교 옆길까지 10분여를 걷노라면 오롯한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여느 양반집 아낙을 기리는 열녀문이 아니라 살진 누에고치와 좋은 실을 기원하던 선잠단지다. 성종때 세운 뒤 선잠례를 지냈지만 1908년 제사 장소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폐허처럼 변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하늘높이 솟은 뽕나무는 아직도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문이 잠겨있지만 인근 유리가게 주인이 열쇠를 맡고 있으니 구청에 연락한 뒤 안쪽을 탐험할 수도 있다.
선잠단지길로 100m를 채 가기 전에 작은 교통섬이 나온다. 대사관저 위치를 알리는 간판을 왼쪽으로 두고 골목을 들여다보면 운우미술관이 보인다. 운보 김기창 화백과 우향 박래현 화백이 기거하던 공간을 재단장한 곳이다. 미술관 이름도 동양의 피카소라는 운보와 전통 수묵채색부터 서구 모더니즘 회화까지 두루 섭렵한 우향의 호를 땄다.(3224-6816)
다시 선잠단지길. 대사관저 간판을 마주 보고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내쳐 걷다보면 어느 새 길상사다. 길상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마담’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1987년 1000억원대에 달하는 부지와 건물을 법정스님에게 시주, 1995년 성광사 말사로 등록했다. 새로 지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요정 시절 그대로라 단청이 없는 법당과 스님들 처소로 바뀐 별실 등 여느 절과 다른 모습이 눈에 띈다. 성북동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찻집이나 경내 계곡에 자리잡은 쉼터,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느티나무가 아름답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참선수양할 수 있는 ‘침묵의 방’도 일반에 공개한다.(3672-5945)
절 건너편에는 ‘효재’가 자리잡고 있다. 한복 보자기 등 손으로 마법을 빚는다는, 숱한 주부들 기를 죽인다는 그 ‘효재’가 여기 둥지를 틀었다. 울긋불긋 가을빛을 내고 있는 담쟁이가 돋보이는 새하얀 효재네 담장이 특히 눈길을 끈다.
길상사와 쌍벽을 이루던 또하나의 요정 삼청각은 길상사에서 배밭길을 따라 삼청터널까지 고단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여야 고위급 인사들 회동은 물론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 막후협상이 이루어진 장소로 더 유명하다. 2000년 서울시가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 전통문화공연장으로 새로 단장했다. 공연장과 함께 한식당 찻집 놀이마당 등을 갖추고 있다.(765-3700)

옛 성북2동사무소, 미술관으로

다시 성북동길로 방향을 틀어 성북우정공원과 서울명수학교 앞 마을버스 종점까지 지나면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심우장 가는 길’이라는 조그만 표지판을 놓치기 십상이다. 두사람이 나란히 걷기 어려운 좁은 골목길(심우장길)이 제법 가파르다. 숨이 턱에 찰 즈음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말년을 보낸 작은 한옥집이 나온다. 심우장(尋牛莊)이란 이름은 불교의 선종에서 말하는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에서 따왔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수행 단계다.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서예가 오세창 선생이 현판을 썼다.
한옥에서 보기 드문 북향집인데 남향으로 지을 경우 조선총독부를 마주보게 되기 때문에 선생이 부러 산비탈로 방향을 틀어 지었단다. 만해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뒤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건너편에 자리잡게 되자 아버지가 그랬듯 ‘일제를 마주할 수 없다’며 명륜동으로 이주했다. 성북구에서 사들여 단장, 만해의 글과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마당 너머 한 눈에 들어오는 성북동 전경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 낮은 지붕이 마주칠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주변의 작은 집들은 서민 가옥이다. 멀리 산자락에는 예부터 성북동을 유명하게 했던 재벌가 저택이 몰려있다. 마당에서 성북동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향나무는 만해가 손수 심었다.
심우장에서 5분 거리나 될까. 작은 삼거리에 한창 공사중인 건물은 옛 성북2동사무소다. 성북1동과 통합된 뒤 빈 공간을 작은 미술관으로 꾸미고 있다. 11월 문을 열 예정이란다. 그 옆 건물은 상허 이태준 고택이다. 상허는 ‘시는 정지용, 문장은 이태준’이라 해서 최고의 산문가로 꼽히던 이다. 손녀가 ‘수연산방’이라는 전통찻집으로 개조했다.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보이는 명당이지만 지금은 내부 개조공사를 하느라 일시 휴점상태다.(764-1736)
첫 볼거리였던 선잠단지가 건너편에 보인다 싶으면 최순우 옛집이 근처에 있다는 얘기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가 살던 전통 한옥이다. 성북동 재개발로 한때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민간모금운동으로 사들여 복원, ‘시민문화유산 1호’라 불린다. 지금도 자원활동가들이 가꾸고 방문객들을 안내한다. 혜곡이 사랑했던 ‘달항아리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를 보며 공짜로 따끈한 전통차도 즐길 수 있다. 혜곡은 이곳에 기거할 때 집필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을 할인가격에 살 수도 있다. 4~11월 화~토요일만 개방한다.(3675-3401)
출발지인 전철역까지 걷는 길에는 오원 장승업의 자취도 있다. 그가 한때 성북동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점을 기려 19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기념표석을 세웠다.
성북구는 성북동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성북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을 5~10월 운영한다. 서울문화유산해설사가 동행해 선잠단지 길상사 삼청각 심우장 서울성곽 최순우옛집 등을 안내한다.(문의 문화체육과 920-3047)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