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역사문화 올레를 걷다]서울 성북구 성북동

대사관저 골목에서 만해와 상허를 만나다

지역내일 2009-10-29
선잠단지에서 시민문화유산까지
미술관·맛집 찾는 재미도 쏠쏠

제주에 자연경관과 섬사람들 삶터가 조화를 이룬 올레가 있다면 서울에는 역사와 문화 전통이 어우러진 올레가 있다. 고층 건축물 사이에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흔적, ‘서울깍쟁이’들 전통과 문화를 담은 공간들이 숨어있다. 서울 도심에서 발품 팔며 돌아볼 만한 도심 속 역사문화 올레를 소개한다.

명망있는 재벌가가 몰려있어 ‘부자들의 동네’로 이름난 서울 성북구 성북동. 30개에 달하는 대사관저가 집중된 대사관저촌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니 유적지와 문화재가 그득한 동네다. 조선의 도읍 한양을 지키던 서울성곽에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왕(이 강)의 별채, 만해 한용운의 기개가 돋보이는 한옥, 요정정치 산실에서 급변신한 문화 종교시설, 민간모금운동으로 지켜낸 시민문화유산 1호까지 다양하다.
4~5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지만 볼거리가 많아 여유롭게 한나절을 할애해도 좋겠다. 미술관이며 골목골목 숨은 찻집이며 밥집 찾기나 각 나라 대사님 거처인지 헤아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구청에서 만든 성북동 그림지도를 챙겨 동선을 미리 짜는 방법도 권장할 만하다.

출발·도착지 한성대입구 전철역
성북동 나들이는 지하철 4호선 삼선교(한성대입구)역에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삼선교역 6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성북동길을 따라 성북초등학교 옆길까지 10분여를 걷노라면 오롯한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여느 양반집 아낙을 기리는 열녀문이 아니라 살진 누에고치와 좋은 실을 기원하던 선잠단지다. 성종때 세운 뒤 선잠례를 지냈지만 1908년 제사 장소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폐허처럼 변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하늘높이 솟은 뽕나무는 아직도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문은 잠겨있지만 인근 유리가게 주인이 열쇠를 맡고 있다.
선잠단지길로 100m를 채 가기 전에 작은 교통섬이 나온다. 대사관저 위치를 알리는 간판을 왼쪽으로 두고 골목을 들여다보면 운우미술관이 보인다. 운보 김기창 화백과 우향 박래현 화백이 기거하던 공간을 재단장한 곳이다. 미술관 이름도 동양의 피카소라는 운보와 전통 수묵채색부터 서구 모더니즘 회화까지 두루 섭렵한 우향의 호를 땄다.(3224-6816)
다시 선잠단지길. 대사관저 간판을 마주 보고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내쳐 걷다보면 어느 새 길상사다. 길상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마담’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1987년 1000억원대에 달하는 부지와 건물을 법정스님에게 시주, 1995년 성광사 말사로 등록했다. 새로 지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요정 시절 그대로라 단청이 없는 법당과 스님들 처소로 바뀐 별실 등 여느 절과 다른 모습이 눈에 띈다. 성북동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찻집이나 경내 계곡에 자리잡은 쉼터,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느티나무가 아름답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참선수양할 수 있는 ‘침묵의 방’도 일반에 공개한다.(3672-5945)
절 건너편에는 ‘효재’가 자리잡고 있다. 한복 보자기 등 손으로 마법을 빚는다는, 숱한 주부들 기를 죽인다는 그 ‘효재’다. 울긋불긋 담쟁이가 돋보이는 새하얀 담장이 특히 눈길을 끈다.
길상사와 쌍벽을 이루던 또하나의 요정 삼청각은 길상사에서 배밭길을 따라 삼청터널까지 고단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여야 고위급 인사들 회동은 물론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 막후협상이 이루어진 장소로 더 유명하다. 2000년 서울시가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 전통문화공연장으로 새로 단장했다. 공연장과 함께 한식당 찻집 놀이마당 등을 갖추고 있다.(765-3700)
다시 성북동길로 방향을 틀어 성북우정공원과 서울명수학교 앞 마을버스 종점 근처에서는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심우장 가는 길’이라는 조그만 표지판을 놓치기 십상이다. 좁은 골목길(심우장길)이 제법 가파르다. 숨이 턱에 찰 즈음 한용운 선생이 말년(1933~1944)을 보낸 심우장(尋牛莊)이 나온다.
한옥에서 보기 드문 북향집인데 남향으로 지을 경우 조선총독부를 마주보기 때문에 선생이 부러 산비탈로 방향을 틀었단다. 만해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뒤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건너편에 자리잡게 되자 아버지가 그랬듯 ‘일제를 마주할 수 없다’며 떠났다. 지금은 성북구에서 인수, 만해의 글과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마당 너머 한 눈에 들어오는 성북동 전경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 낮은 지붕이 마주칠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주변의 작은 집은 서민 가옥. 멀리 산자락에는 성북동을 유명하게 했던 재벌가가 몰려있다. 마당의 향나무는 만해가 손수 심었다.

옛 성북2동사무소, 미술관으로
심우장에서 5분 거리나 될까. 작은 삼거리에 한창 공사중인 건물은 옛 성북2동사무소다. 성북1동과 통합된 뒤 빈 공간을 작은 미술관으로 꾸미고 있다. 11월 문을 열 예정이란다. 그 옆 건물은 상허 이태준 고택이다. 상허는 ‘시는 정지용, 문장은 이태준’이라 해서 최고의 산문가로 꼽히던 이다. 손녀가 ‘수연산방’이라는 전통찻집으로 개조했다.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보이는 명당이지만 지금은 내부 개조공사를 하느라 일시 휴점상태다.(764-1736)
첫 볼거리였던 선잠단지가 건너편에 보인다 싶으면 최순우 옛집이 근처에 있다는 얘기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가 살던 전통 한옥이다. 성북동 재개발로 한때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민간모금운동으로 사들여 복원, ‘시민문화유산 1호’라 불린다. 자원활동가들이 집을 가꾸고 방문객들을 안내한다. 혜곡이 사랑했던 ‘달항아리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를 보며 공짜로 따끈한 전통차도 즐길 수 있다. 혜곡은 이곳에 기거할 때 집필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등을 할인가격에 살 수도 있다. 4~11월(화~토)만 개방한다.(3675-3401)
출발지인 전철역까지 걷는 길에는 오원 장승업의 자취도 있다. 그가 한때 성북동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점을 기려 세운 기념표석이다.
성북구는 성북동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성북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을 5~10월 운영한다. 서울문화유산해설사가 동행해 선잠단지 길상사 삼청각 심우장 서울성곽 최순우옛집 등을 안내한다.(문의 문화체육과 920-3047)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개방 안돼 아쉬운 성락원·십주원
간송미술관은 5·10월 전시때만 문 열어

성북동 숨은 볼거리 중 운우미술관 지근거리에 있는 성락원과 십주원, 그리고 이재준 고택은 소유주들이 개방을 원치 않는 곳이다.
성락원은 서울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대표별장으로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왕 이 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다. 십주원은 대한제국시기 관료이자 재력가였던 최사영 고택. 당시 서울지역 최상위계층 가옥 조성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재준 고택은 수연산방 맞은편에 있다. 소설가 이재준이 1900년대 거상 이종상의 별장을 사들여 여생을 보낸 곳이다. 바로 옆 덕수교회에서 인수, 목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5월과 10월 두차례 전시회때만 일반에 개방한다. 우리나라 첫 근대식 사립박물관으로 훈민정음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 12점이 소장돼있다.(762-2645) 길상사 인근에 문을 열 한국가구박물관은 한옥 10여채 안에 전통 목(木)가구를 보존 전시하고 있다.
김진명 기자

북악하늘길 성북천 ‘번외 올레’
성북동에는 골목 올레 외에도 수려한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번외 올레’가 있다. 서울성곽길과 북악하늘길 그리고 성북천길이다.
북악산 서울성곽길 중 개방된 곳은 창의문~와룡공원. 성북동에서는 홍련사쉼터~숙정문~전망대~와룡공원을 걸을 수 있다. 홍련사쉼터는 삼청각에서 가깝고 와룡공원은 심우장에서 가깝다. 신분증을 지참하고 출입증을 작성해야 한다.
북악스카이웨이는 북악산 능선을 따라 정릉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도로다. 구는 북악산 성북구민회관 입구에서 종로구 경계까지 찻길을 따라 산책길을 조성했다. 최근 일명 ‘김신조 루트’로 불리는 제2 산책로까지 개방했다.
북한산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성북천도 빼놓을 수 없다. 구는 한성대입구역~성북구청 1㎞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 천을 따라 산책로를 조성했다. 내년 3월이면 산책길은 대광초등학교까지 연결돼 총 2.5㎞가 된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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