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자 없는 교실은 결국 낙오자 없는 사회의 반영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박재원 해설
비아북/ 1만5천원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시험도 없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후쿠다 세이지 교수는 저자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마치 동화의 문을 여는 말투로 핀란드 교실의 문을 연다. 어떤 놀라움 속에 이 동양의 교수는 북구의 외딴 나라를 수십 차례나 찾게 되었을까?
서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핀란드의 성공 사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핀란드에는 경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 학생들의 학력은 바닥권인가? 아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치러진 OECD 주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나라가 핀란드다. 시험지옥의 절망적인 상황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우리의 시선을 대뜸 잡아당긴다.
이 책은 공허한 주장을 펴지 않는다. 그 대신 교실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줘 궁금증을 풀어간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초등학교 두 곳, 중학교 한 곳의 교실 풍경을 텔레비전 카메라처럼 묘사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은 사진들의 모자이크, 교실의 배치도 같은 게 시청각교재처럼 설명을 돕는다. 재미있다.
가령 ‘학력차가 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유연한 방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제2장은 헬싱키 시내에 있는 스트론베리 초등학교의 수업 풍경들을 소개하고 있다. 2학년과 3학년 학생이 섞인 복식학급(複式學級)의 과학 수업은 우리 눈으로 본다면 혼란 그 자체다. 동생의 교실을 찾아와 엉뚱하게 산수 문제를 푸는 여자 아이, 계속 뜨개질에 열중한 남자 아이도 그 풍경의 일부를 이룬다.
다른 교실도 비슷하다. 4학년과 5학년이 섞인 복식학급에서는 수학과 과학 수업이 혼합된 수업방식이 참관자를 혼란시킨다. 교사의 설명은 간단하게 끝나고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진도대로 학년이나 현재 배우고 있는 단원과 관계없이 교과서나 워크북을 펴놓고 공부한다. 아예 복도에 나가 과제를 푸는 아이들도 있다. 교사는 돌아다니며 개별 지도만을 한다.
보사리 기초중학교의 풍경도 별로 다를 게 없다. 8학년의 수학 수업에는 껌을 씹으며 워크맨을 듣는 남학생이 여자 친구에 기댄 채 애무하고 있는 모습도 나온다.
교사의 생각이 우리로선 파격이다. “남학생은 수업을 듣지는 않지만 적어도 학교에는 나오잖아요. 여학생은 대충이라도 수업에 참여하고 있구요. 그러다가 마음을 잡으면 달라지겠죠.”
중요한 건 이거다. 수업을 따라가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자포자기의 절망 같은 건 없다는 것. “그들이 학교 안에 있는 것은 공부가 싫어졌어도 학교가 기다려줄 거라는 안도감 때문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는다’는 핀란드 교육의 증거이다.”
핀란드 교육 관계자는 이 나라 교육의 바탕을 이렇게 설명했다. “핀란드의 교육개혁은 무척 단순한 경제적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적은 인구에 척박한 자연환경. 단 한 명도 버릴 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서 나온 생각들을 실천한 결과입니다.” 낙오자들을 양산하는 우리의 교육을 저절로 되돌아보게 된다.
이쯤에서 이 책의 매우 독특한 구성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는 하나의 꼭지가 끝날 때마다 옮긴이 가운데 한 사람인 교육전문가 박재원씨(비상교육공부연구소장)가 핀란드의 현실을 한국과 비교하는 내용이 추가돼 있다.
또한 마지막 장은 원저자의 양해를 얻어 일본의 입장이 아니라 한국의 입장에서 본 ‘진정한 핀란드 배우기’로 아예 대체됐다. 신선한 시도다.
박 소장은 해설자 서문에서 핀란드 교실에서 배운 것을 이렇게 요약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다를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분발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런 기대의 시선 속에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피그말리온효과는 모두의 것일 수밖에 없다. 결손교실, 결손교육의 근치 비결이다.
핀란드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주위에선 보기 힘든 광경 같다. 아이들은 공부가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신의,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공부만이 있을 뿐이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나 시험이 설 자리가 없다.
교사들은 자연히 도우미의 위치로 내려간다. 교사들은 ‘나를 따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옆에서 보살피며 도와주는 역할로 만족한다. 교육의 주도자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교사, 교장, 교육 행정가의 순서로 도우미들의 동심원이 그려진다. 행정이 정점에 서서 좌지우지하는 나라와는 근본이 다르다. 가르치는 데가 아니라 배우는 데가 핀란드의 교실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게 된 건 오래 전 찾아갔던 핀란드의 혹독한 겨울이 생각났기 때문인 것 같다. 대낮마저 지배하는 어둠과 정신마저 얼어붙게 하는 강추위. 그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일궈낸 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존경스럽다. 그 대척점에 선 우리의 불행한 아이들, 불행한 부모들, 그리고 이를 숙명처럼 인내하고 있는 우리의 집단적 미몽(迷夢)이 안타깝다.
뱀 다리 그리기. ‘낙오자 없는 교실’은 결국 ‘낙오자 없는 사회’의 반영이 아닐까?
박순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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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박재원 해설
비아북/ 1만5천원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시험도 없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후쿠다 세이지 교수는 저자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마치 동화의 문을 여는 말투로 핀란드 교실의 문을 연다. 어떤 놀라움 속에 이 동양의 교수는 북구의 외딴 나라를 수십 차례나 찾게 되었을까?
서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핀란드의 성공 사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핀란드에는 경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 학생들의 학력은 바닥권인가? 아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치러진 OECD 주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나라가 핀란드다. 시험지옥의 절망적인 상황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우리의 시선을 대뜸 잡아당긴다.
이 책은 공허한 주장을 펴지 않는다. 그 대신 교실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줘 궁금증을 풀어간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초등학교 두 곳, 중학교 한 곳의 교실 풍경을 텔레비전 카메라처럼 묘사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은 사진들의 모자이크, 교실의 배치도 같은 게 시청각교재처럼 설명을 돕는다. 재미있다.
가령 ‘학력차가 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유연한 방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제2장은 헬싱키 시내에 있는 스트론베리 초등학교의 수업 풍경들을 소개하고 있다. 2학년과 3학년 학생이 섞인 복식학급(複式學級)의 과학 수업은 우리 눈으로 본다면 혼란 그 자체다. 동생의 교실을 찾아와 엉뚱하게 산수 문제를 푸는 여자 아이, 계속 뜨개질에 열중한 남자 아이도 그 풍경의 일부를 이룬다.
다른 교실도 비슷하다. 4학년과 5학년이 섞인 복식학급에서는 수학과 과학 수업이 혼합된 수업방식이 참관자를 혼란시킨다. 교사의 설명은 간단하게 끝나고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진도대로 학년이나 현재 배우고 있는 단원과 관계없이 교과서나 워크북을 펴놓고 공부한다. 아예 복도에 나가 과제를 푸는 아이들도 있다. 교사는 돌아다니며 개별 지도만을 한다.
보사리 기초중학교의 풍경도 별로 다를 게 없다. 8학년의 수학 수업에는 껌을 씹으며 워크맨을 듣는 남학생이 여자 친구에 기댄 채 애무하고 있는 모습도 나온다.
교사의 생각이 우리로선 파격이다. “남학생은 수업을 듣지는 않지만 적어도 학교에는 나오잖아요. 여학생은 대충이라도 수업에 참여하고 있구요. 그러다가 마음을 잡으면 달라지겠죠.”
중요한 건 이거다. 수업을 따라가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자포자기의 절망 같은 건 없다는 것. “그들이 학교 안에 있는 것은 공부가 싫어졌어도 학교가 기다려줄 거라는 안도감 때문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는다’는 핀란드 교육의 증거이다.”
핀란드 교육 관계자는 이 나라 교육의 바탕을 이렇게 설명했다. “핀란드의 교육개혁은 무척 단순한 경제적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적은 인구에 척박한 자연환경. 단 한 명도 버릴 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서 나온 생각들을 실천한 결과입니다.” 낙오자들을 양산하는 우리의 교육을 저절로 되돌아보게 된다.
이쯤에서 이 책의 매우 독특한 구성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는 하나의 꼭지가 끝날 때마다 옮긴이 가운데 한 사람인 교육전문가 박재원씨(비상교육공부연구소장)가 핀란드의 현실을 한국과 비교하는 내용이 추가돼 있다.
또한 마지막 장은 원저자의 양해를 얻어 일본의 입장이 아니라 한국의 입장에서 본 ‘진정한 핀란드 배우기’로 아예 대체됐다. 신선한 시도다.
박 소장은 해설자 서문에서 핀란드 교실에서 배운 것을 이렇게 요약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다를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분발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런 기대의 시선 속에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피그말리온효과는 모두의 것일 수밖에 없다. 결손교실, 결손교육의 근치 비결이다.
핀란드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주위에선 보기 힘든 광경 같다. 아이들은 공부가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신의,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공부만이 있을 뿐이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나 시험이 설 자리가 없다.
교사들은 자연히 도우미의 위치로 내려간다. 교사들은 ‘나를 따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옆에서 보살피며 도와주는 역할로 만족한다. 교육의 주도자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교사, 교장, 교육 행정가의 순서로 도우미들의 동심원이 그려진다. 행정이 정점에 서서 좌지우지하는 나라와는 근본이 다르다. 가르치는 데가 아니라 배우는 데가 핀란드의 교실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게 된 건 오래 전 찾아갔던 핀란드의 혹독한 겨울이 생각났기 때문인 것 같다. 대낮마저 지배하는 어둠과 정신마저 얼어붙게 하는 강추위. 그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일궈낸 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존경스럽다. 그 대척점에 선 우리의 불행한 아이들, 불행한 부모들, 그리고 이를 숙명처럼 인내하고 있는 우리의 집단적 미몽(迷夢)이 안타깝다.
뱀 다리 그리기. ‘낙오자 없는 교실’은 결국 ‘낙오자 없는 사회’의 반영이 아닐까?
박순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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