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덮치면서 상당수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고통의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후를 생각하며 묻어둔 돈들이 위기 와중에 날아가고 있다.
연금 그 자체가 노후보장의 온전한 수단이 되는 지도 의심스러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신의 말년을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상황. 은퇴를 늦추고 황혼 취업이 일반화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3가지의 은퇴연금 제도를 가지고 있다. 모든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이 의무가입해야 하는 사회보장연금(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과 자영업자들이 주로 드는 개인은퇴계좌(IRA). 그리고 401k로 대표되는 근로자 중심의 퇴직연금이 있다. 401k는 회사가 최대 100%까지 같은 금액을 납부(매칭)해주고 세금공제 혜택도 받는다.
시사주간 ‘타임’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약 7300만명이 401k에 가입돼 있으며 이는 노동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국공채와 우량 회사채는 물론 주식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 재산증식과 노후보장을 한꺼번에 꾀할 수 있도록 설계된 401k에는 해마다 2000억 달러가 새로 유입된다. 하지만 전례없는 금융위기로 한때 미국경제의 안전판으로 불렸던 401k가 지탄의 대상이 될 운명에 처했다.
◆5년간 연금불입했는데 수익률은 -0.5% = 2008년 현재 1인당 401k 평균액은 4만5519 달러(약 5000 만원). 노후자산치고는 너무 적다. 미국대학의 2년치 등록금을 내면 딱 떨어질 금액이다. 그나마 401k 계좌의 46%는 채 1만 달러(1100 만원)도 되지 않는다. 전체 미국인의 17%만이 전통적 의미의 연금으로 보장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인들의 노후설계에 비상이 걸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8년 당시 401k 계좌 평균액이 4만7004 달러였던 것을 100이라고 한다면 10년이 지난 2008년 평균액 4만5519 달러는 73.32에 불과하다(물가상승률 적용). 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 한해 동안 401k 가입자는 평균 29.2%의 자산 손실을 보았고 이에 따라 지난 5년간 평균 수익률은 -0.5%에 불과했다. 5년 동안 돈을 불입했지만 현재가치는 오히려 원금만큼도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US 뉴스&리포트 10월호에 따르면 2008년 한해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소득의 5%씩 납입할 경우 향후 1년 9개월이, 10%씩 납입하더라도 1년 4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계적인 연금고갈 현상 = 미국의 사회보장연금은 2016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재정파탄을 막으려면 혜택을 감소하거나 납입금을 올리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로서는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
수혜시작 연령을 올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겁많은’ 정치인들은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지 않고 있다. 미 의회는 1983년 연금수혜 연령을 67세로 올리기로 결정하고도 그 시행시기는 2027년으로 멀찌감치 미뤄놓았다.
이런 현상이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현재보다 기대수명이 훨씬 낮았던 1925년 정해놓은 기준이지만 영국의 정부연금 수령연령(남자 65세, 여자 60세)을 높이자는 주장은 수 세대동안 정치적 금기사항이었다”고 전했다. 2005년 영국 의회는 2050년까지 수령연령을 68세로 올리기로 했지만 이 역시 2020년 중반에나 가야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수령연령을 1년 올리면 국내총생산(GDP) 0.7%에 해당하는 100억 파운드(약 20조원) 예산절감 효과가 있다.
◆미국 근로자 절반 은퇴 자금 확보 곤란 = 이 때문에 미국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65세에 은퇴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보스턴대학의 은퇴연구센터는 최근 가계 재무상태를 조사한 결과 근로자의 51%가 은퇴 연령인 65세에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2007년에 조사된 44%보다 늘어난 것이다.
은퇴연구센터는 지난해에 주택 가치가 폭락한 데다가 투자 손실이 겹쳐 은퇴 예정기의 재산 확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밝혔다.
은퇴연구센터의 알리샤 머넬 소장은 미국이 “은퇴의 위기 시대를 맞고 있으며 이는 젊은 세대들이 늙어갈수록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대안은 무엇? “퇴직을 늦추라” = 연금개혁의 성사 여부는 노년층이 얼마나 오랫동안 취업상태에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 ‘타임’과 ‘US 뉴스&리포트’가 공통으로 제안하는 은퇴대책도 퇴직을 최대한 늦추라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7년말 이후 55세 이상의 취업률은 4%나 증가해 100만명 가까이 새 일자리로 들어섰다. 같은 기간 평균 실업률이 9.7%로 치솟은 점을 보면 노년층의 구직활동이 얼마나 왕성한가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숙련 노동자가 퇴직을 늦춘다고 청년 일자리를 뺏는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통계이긴 하지만 62세 여성이 3년을 더 일하면 사회보장연금 수령액이 22%, 5년을 더 일하면 39%가 각각 늘어난다고 한다. “기대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오늘날, 퇴직시기를 60세나 62세쯤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비현실적”이라는 조언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오직 세 나라(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미국)만 연금수령연령이 65세 이상이지만 이를 손대야만 하는 시점이 멀지 않았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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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그 자체가 노후보장의 온전한 수단이 되는 지도 의심스러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신의 말년을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상황. 은퇴를 늦추고 황혼 취업이 일반화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3가지의 은퇴연금 제도를 가지고 있다. 모든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이 의무가입해야 하는 사회보장연금(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과 자영업자들이 주로 드는 개인은퇴계좌(IRA). 그리고 401k로 대표되는 근로자 중심의 퇴직연금이 있다. 401k는 회사가 최대 100%까지 같은 금액을 납부(매칭)해주고 세금공제 혜택도 받는다.
시사주간 ‘타임’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약 7300만명이 401k에 가입돼 있으며 이는 노동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국공채와 우량 회사채는 물론 주식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 재산증식과 노후보장을 한꺼번에 꾀할 수 있도록 설계된 401k에는 해마다 2000억 달러가 새로 유입된다. 하지만 전례없는 금융위기로 한때 미국경제의 안전판으로 불렸던 401k가 지탄의 대상이 될 운명에 처했다.
◆5년간 연금불입했는데 수익률은 -0.5% = 2008년 현재 1인당 401k 평균액은 4만5519 달러(약 5000 만원). 노후자산치고는 너무 적다. 미국대학의 2년치 등록금을 내면 딱 떨어질 금액이다. 그나마 401k 계좌의 46%는 채 1만 달러(1100 만원)도 되지 않는다. 전체 미국인의 17%만이 전통적 의미의 연금으로 보장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인들의 노후설계에 비상이 걸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8년 당시 401k 계좌 평균액이 4만7004 달러였던 것을 100이라고 한다면 10년이 지난 2008년 평균액 4만5519 달러는 73.32에 불과하다(물가상승률 적용). 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 한해 동안 401k 가입자는 평균 29.2%의 자산 손실을 보았고 이에 따라 지난 5년간 평균 수익률은 -0.5%에 불과했다. 5년 동안 돈을 불입했지만 현재가치는 오히려 원금만큼도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US 뉴스&리포트 10월호에 따르면 2008년 한해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소득의 5%씩 납입할 경우 향후 1년 9개월이, 10%씩 납입하더라도 1년 4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계적인 연금고갈 현상 = 미국의 사회보장연금은 2016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재정파탄을 막으려면 혜택을 감소하거나 납입금을 올리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로서는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
수혜시작 연령을 올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겁많은’ 정치인들은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지 않고 있다. 미 의회는 1983년 연금수혜 연령을 67세로 올리기로 결정하고도 그 시행시기는 2027년으로 멀찌감치 미뤄놓았다.
이런 현상이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현재보다 기대수명이 훨씬 낮았던 1925년 정해놓은 기준이지만 영국의 정부연금 수령연령(남자 65세, 여자 60세)을 높이자는 주장은 수 세대동안 정치적 금기사항이었다”고 전했다. 2005년 영국 의회는 2050년까지 수령연령을 68세로 올리기로 했지만 이 역시 2020년 중반에나 가야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수령연령을 1년 올리면 국내총생산(GDP) 0.7%에 해당하는 100억 파운드(약 20조원) 예산절감 효과가 있다.
◆미국 근로자 절반 은퇴 자금 확보 곤란 = 이 때문에 미국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65세에 은퇴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보스턴대학의 은퇴연구센터는 최근 가계 재무상태를 조사한 결과 근로자의 51%가 은퇴 연령인 65세에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2007년에 조사된 44%보다 늘어난 것이다.
은퇴연구센터는 지난해에 주택 가치가 폭락한 데다가 투자 손실이 겹쳐 은퇴 예정기의 재산 확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밝혔다.
은퇴연구센터의 알리샤 머넬 소장은 미국이 “은퇴의 위기 시대를 맞고 있으며 이는 젊은 세대들이 늙어갈수록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대안은 무엇? “퇴직을 늦추라” = 연금개혁의 성사 여부는 노년층이 얼마나 오랫동안 취업상태에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 ‘타임’과 ‘US 뉴스&리포트’가 공통으로 제안하는 은퇴대책도 퇴직을 최대한 늦추라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7년말 이후 55세 이상의 취업률은 4%나 증가해 100만명 가까이 새 일자리로 들어섰다. 같은 기간 평균 실업률이 9.7%로 치솟은 점을 보면 노년층의 구직활동이 얼마나 왕성한가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숙련 노동자가 퇴직을 늦춘다고 청년 일자리를 뺏는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통계이긴 하지만 62세 여성이 3년을 더 일하면 사회보장연금 수령액이 22%, 5년을 더 일하면 39%가 각각 늘어난다고 한다. “기대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오늘날, 퇴직시기를 60세나 62세쯤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비현실적”이라는 조언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오직 세 나라(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미국)만 연금수령연령이 65세 이상이지만 이를 손대야만 하는 시점이 멀지 않았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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