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판결, 약자에 더 가혹”

지역내일 2009-10-29
징역 6년 2명, 징역 5년 5명 … 기소내용 모두 인정
변호인 “사법부가 제 역할 포기하고 정치적 판단”

지난 1월 발생한 ‘용산참사’ 화재로 경찰관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철거민 9명 중 7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28일 농성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용산4구역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씨 등 2명에게 징역 6년을, 김 모씨 등 5명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비교적 가담 정도가 약한 조 모씨와 김 모씨에게는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위험물질을 붓고 화염병을 던져 공무집행 중이던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게 한 행위는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건조물침입, 업무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를 모두 인정해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원망스럽다” = 이번 판결로 법원은 사회적 약자인 철거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조합과 건설사 등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무자비한 철거로 길바닥에 내몰리는 세입자들을 법적인 잣대로만 재단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철거민들이 힘들게 벌어 일군 가게에 대한 보상 요구는 ‘현행법에 없는 과도한 행위’라고 봤고 용역업체가 폭력과 폭언을 동원해 세입자들을 강제 철거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업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잘못된 철거정책을 이유로 건물을 점거해서는 안 된다”며 “불합리한 철거정책에 대해서는 입법이나 행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은 이충연 씨의 형 이성연씨는 “재판장이 검찰이 써준 원고를 읽어내려갔다”며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진실이 이렇게 묻히는 것을 보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원망스럽다”며 통탄했다.

◆철거민이 방화 위해 고의로 화염병 던졌다? =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화재원인이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인지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 적용을 위한 경찰의 특공대 진압작전의 적법성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철거민들이 망루 내부로 진입한 경찰특공대원들에게 불이 붙은 화염병을 던져 3층 계단에서 불이 났고 세녹스의 유증기에 옮겨 붙어 전체 화재로 번졌다고 판단했다. 또 “철거민 중 정확히 누가 화염병을 던졌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망루 내에 인화물질이 있는 상황에서 화염병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죄를 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치사상죄를 묻기 위해서는 고의로 방화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며 만약 불이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이면 치사상죄로 보기 어렵다. 김갑배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자신들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화염병을 던져 고의로 방화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며 “이번 판결은 상식적 법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두 번째로 특공대를 투입할만한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교통량이 많은 한강대로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에 올라간 철거민들이 화염병, 골프공을 투척하고 장기간 농성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경찰특공대가 국가적 테러 상황에 투입되기 위한 임무를 띠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조합과 세입자 간의 민사 분쟁에 대해 특공대가 투입될 만한 테러에 준하는 국가적 긴급 상황이었다고 판단한 것은 여전히 미심쩍다. 게다가 사전에 철거민들과 경찰 간의 의미 있는 대화도 진행되지 않았고 망루에 인화물질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철거민들이 남일당 건물에 올라간 지 22시간 만에 전격 투입한 것이 적절했는지도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다.

◆“형법을 정치적으로 판단” = 재판부가 철거민들에 대해 중형을 선고한 것에 대해 변호인단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변호를 맡은 김형태 변호사는 “순수한 형법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5공, 6공 때의 모습”이라며 “정권이 재판을 하는 것인지 사법부가 재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재판에서 많은 경찰관들이 화염병을 못 봤다고 증언했고 재판부도 화염병을 정확히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사법부가 제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논평을 통해 “재판부는 검찰이 무리한 증인신청을 통해 국민참여재판을 무산시키는 데도 수수방관한 채 결국 이를 무산시켰고, 수사기록의 공개를 거부하는 검찰에 대해여 어떠한 제재를 가하지도 않았다”며 “이번 판결은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법원의 비겁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용산참사 재판’은 검찰이 철거민들에게 유리할 수 있는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돼 사실상 ‘반쪽짜리 재판’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변호인이 재판을 거부해 퇴정하기도 하고 재판기피 신청도 나오는 등 파행을 거듭했다. 법원의 태도를 수용할 수 없었던 변호인단이 결국 사퇴했고 변호인단이 다시 새롭게 구성되는 등 힘든 재판과정을 겪었다. .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재판부의 유죄 선고에 반발해 피고인 2명과 변호인이 자진 퇴장했고 곧이어 방청석에서도 “정권의 나팔수”, “이게 법치국가냐”라는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때문에 방청객 1명이 법정소란을 이유로 감치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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