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과 씨름하기
김광원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경찰이나 검찰로부터 전화로 소환통보를 받았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소환하는 담당자의 성명과 소속, 사무실 호수와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고 자신이 정식으로 입건된 ‘피의자’신분인지, 아직 입건되지 않은 ‘참고인’신분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좀 희한한 내용의 책이 나왔다. 제목이 ‘쫄지마, 형사절차!’라고 돼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만든 형사절차 가이드북이다. 공동저자인 황희석 변호사의 서문에 따르면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무렵부터 민변은 ‘5분 대기조’였다. 여기저기서 체포된 시민과 학생들이 민변에 대처방법을 물었다. 접견요청이 쇄도했다. 집회현장의 인권침해를 막아달라는 부탁도 들어왔다.
민변은 나름대로 답변하고 현장에 달려갔지만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절차가 위법한데도 무심코 응하여 스스로 죄를 뒤집어쓴 시민이 있다. 다투면 무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인데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전과자가 된 경우도 있다. 그 때마다 안타까운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인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안내하고자 한 것이다.
회귀의 시대, 저항의 시대
이 책은 경찰이나 검찰수사관의 소환에 어떻게 대처할지부터 위법한 공권력에 대응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시민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지식을 담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법치주의’가 평범한 시민에게 위압감을 주고 그들을 피의자로, 전과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민변 측의 주장이다.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와 인권침해가 빈번한 상황에서 일종의 가정 의학서처럼,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스스로 응급조치를 취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주는 ‘인권 지킴이’책자라는 설명이다.
황희석 변호사는 이 책이 “2008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거리와 광장, 학교와 언론사, 성당과 사찰 및 교회, 그리고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시민들이 흘리고 겪은 땀과 고통의 흔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민변소속 변호사들이 각종 집회현장의 대열 사이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종합해 가능한 한 쉽게 풀어 썼다.
지난 10일은 61번째 세계인권의 날이었다. 민변은 세계 인권의 날을 며칠 앞두고 이 책을 출간했다. 국가는 시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시민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을 민간단체인 민변이 안내하고 나선 셈이다.
한국 인권의 현주소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민변과 인권단체연석회의가 펴낸 ‘2009 한국인권보고대회’ 보고서는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2009년의 인권상황을 ‘어두운 회귀의 시대, 저항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의 날은 2차대전 중에 자행된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이다. 이 선언은 많은 나라에서 헌법의 기초가 됐다. 1991년 파리원칙 등 국제적 합의에 의해 2001년 출범한 우리 국가인권위(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인권전담의 독립적 국가기구다.
그럼에도 불구, 이명박정부는 출범이전부터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려고 시도했다. 더구나 인권위가 촛불집회 진압과정에 대한 인권침해 결정을 내린 이후 인력감축과 인사 등을 통해 인권위 무력화작업을 벌였다. 인권위원장에는 인권과 거리가 먼 인사가 결정됐다. 2009년을 보내며 인권위가 사실상 형해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권의 날 기념행사조차 둘로 나뉘었다. 인권위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반면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많은 인권단체들은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인권추락상’수여가 발표됐다. 올해의 인권궤적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징표다.
세계가 한국 인권상황 우려
그동안 유엔의 인권기구들은 물론 국제사면위 등 국제인권단체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거듭해왔다.
심지어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와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와 같은 세계적 지식인들과 정치인 등 20개국 173명이 세계인권의 날에 즈음해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2008년 촛불집회 탄압에 이어 올해에는 더 많은 진보단체와 민주적 시민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쫄지마, 형사절차!’의 수익금 1%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다 인권침해를 당한 시민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저자들의 희망대로 이런 책이 쓸모없어져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지난날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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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원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경찰이나 검찰로부터 전화로 소환통보를 받았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소환하는 담당자의 성명과 소속, 사무실 호수와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고 자신이 정식으로 입건된 ‘피의자’신분인지, 아직 입건되지 않은 ‘참고인’신분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좀 희한한 내용의 책이 나왔다. 제목이 ‘쫄지마, 형사절차!’라고 돼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만든 형사절차 가이드북이다. 공동저자인 황희석 변호사의 서문에 따르면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무렵부터 민변은 ‘5분 대기조’였다. 여기저기서 체포된 시민과 학생들이 민변에 대처방법을 물었다. 접견요청이 쇄도했다. 집회현장의 인권침해를 막아달라는 부탁도 들어왔다.
민변은 나름대로 답변하고 현장에 달려갔지만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절차가 위법한데도 무심코 응하여 스스로 죄를 뒤집어쓴 시민이 있다. 다투면 무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인데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전과자가 된 경우도 있다. 그 때마다 안타까운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인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안내하고자 한 것이다.
회귀의 시대, 저항의 시대
이 책은 경찰이나 검찰수사관의 소환에 어떻게 대처할지부터 위법한 공권력에 대응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시민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지식을 담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법치주의’가 평범한 시민에게 위압감을 주고 그들을 피의자로, 전과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민변 측의 주장이다.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와 인권침해가 빈번한 상황에서 일종의 가정 의학서처럼,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스스로 응급조치를 취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주는 ‘인권 지킴이’책자라는 설명이다.
황희석 변호사는 이 책이 “2008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거리와 광장, 학교와 언론사, 성당과 사찰 및 교회, 그리고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시민들이 흘리고 겪은 땀과 고통의 흔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민변소속 변호사들이 각종 집회현장의 대열 사이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종합해 가능한 한 쉽게 풀어 썼다.
지난 10일은 61번째 세계인권의 날이었다. 민변은 세계 인권의 날을 며칠 앞두고 이 책을 출간했다. 국가는 시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시민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을 민간단체인 민변이 안내하고 나선 셈이다.
한국 인권의 현주소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민변과 인권단체연석회의가 펴낸 ‘2009 한국인권보고대회’ 보고서는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2009년의 인권상황을 ‘어두운 회귀의 시대, 저항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의 날은 2차대전 중에 자행된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이다. 이 선언은 많은 나라에서 헌법의 기초가 됐다. 1991년 파리원칙 등 국제적 합의에 의해 2001년 출범한 우리 국가인권위(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인권전담의 독립적 국가기구다.
그럼에도 불구, 이명박정부는 출범이전부터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려고 시도했다. 더구나 인권위가 촛불집회 진압과정에 대한 인권침해 결정을 내린 이후 인력감축과 인사 등을 통해 인권위 무력화작업을 벌였다. 인권위원장에는 인권과 거리가 먼 인사가 결정됐다. 2009년을 보내며 인권위가 사실상 형해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권의 날 기념행사조차 둘로 나뉘었다. 인권위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반면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많은 인권단체들은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인권추락상’수여가 발표됐다. 올해의 인권궤적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징표다.
세계가 한국 인권상황 우려
그동안 유엔의 인권기구들은 물론 국제사면위 등 국제인권단체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거듭해왔다.
심지어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와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와 같은 세계적 지식인들과 정치인 등 20개국 173명이 세계인권의 날에 즈음해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2008년 촛불집회 탄압에 이어 올해에는 더 많은 진보단체와 민주적 시민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쫄지마, 형사절차!’의 수익금 1%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다 인권침해를 당한 시민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저자들의 희망대로 이런 책이 쓸모없어져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지난날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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