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단상(斷想)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난 아무래도 시대와 ‘불화’하고 있다. 물론 지난 정권에서도 불만은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고소영내각, 4대강사업, 공공기관민영화, 미국산쇠고기수입, 부자감세, 금산분리완화, 재벌규제완화, 노조탄압, 전직대통령에 대한 인격살인, 신문법과 방송법, 싹쓸이인사, 용산참사, 서울시광장폐쇄 등 모든 ‘정책’과 ‘행태’가 나의 상식에서 벗어난다.
가끔은 내 ‘상식’이 너무 편향된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자신의 인격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저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아니다. 청와대와 여의도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살벌하다. 이미 충분히 ‘유복’하고 ‘실력’ 있고 ‘수완’ 좋은 사람들만 행세하는 그런 사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잘 사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두의 능력이 최대화되어 새로운 성장의 추동력으로 되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다고 난 믿는다.
먼저 ‘안정’되지 않으면 사람의 능력은 최대화되지 않는다. 사람은 단순한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서로 즐기며(homo ludens), 이성적 결단에 의해 미래를 개척하는 현명한 존재(homo sapiens)인 것이다. ‘당근’과 ‘채찍’만이 아니라 사회 속의 ‘동감’과 ‘감동’이 곁들어져 처음으로 능력이 발휘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해도 태반이 비정규직이며, 의료와 주택과 소득에서 불안한 미래가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감동’이 들어갈 여지는 애초부터 없다.
‘학습과 참여’도 중요하다. 학생들은 입시와 입사지옥에 시달리며, 여성들은 가사노동에 매이며, 직장인들은 40이 넘으면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창조적 지식이 축적될 리가 없다. 기업이 못한다면 당연히 정부라도 해야 한다. 복지,교육, 환경, 의료의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그 일자리에 맞게 사람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가야 한다. 모두가 ‘학습’하고, ‘학습’된 지식을 생산활동 속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확대시켜야 한다.
혹자는 ‘복지병’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정부가 지출하는 복지예산규모는 GDP대비 6.9%로서 OECD 평균인 20.6%(2005년)에 비해 턱없이 낮다.
다른 혹자는 복지예산을 걱정한다. 당연히 세금을 걷어야 한다. 애초부터 한국의 국민부담율(세금과 사회보험비의 GDP비율)은 26.8%로서 OECD 평균인 35.9%(2006년)에 한참 못 미친다. 정부가 별로 해주는 것도 없지만 ‘고맙게도’ 별로 돈도 안 걷는 것이다. 세금이야 ‘있는 사람’에게 걷는 것이 상식이나 ‘세금폭탄’이라고 사방에서 아우성친다. 참 염치없는 짓이다.
일부 식자층은 증세를 하면 경제적 활력이 줄어든다고 제법 전문지식을 동원한다.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감세를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런 분들에게는 제발 부탁이다. 이론이든 사례든 증명해 주길 바란다.
적어도 나의 지식 속에서는 감세의 경제성장효과란 이론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각국이 직면하는 실질적, 경험적 사실에 입각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19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감세정책은 경제적 효과로서 발현되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지금 한국의 부자감세도 마찬가지다.
한발 더 나아가 경제통합 이후 유럽 각국에서 벌어졌던 감세경쟁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규모도 크지 않을뿐더러 대상도 주로 법인세감세에 한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양도세 모두 다 대대적으로 감세하는 경우를 적어도 지난 20년간 난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감세 속에서도 복지국가 유럽의 기본틀이 흔들린 것도 아니었다. 재정건전성과 복지국가와 안정된 경제성장이라는 3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버린 스웨덴의 사례도 존재한다.
대체 그들은 하는데 왜 우리가 못하겠는가? 복지국가도 만들고 국민소득도 3만 달러로 늘리고 노동도 안정화된 그런 사회가 왜 우리의 미래가 못 되겠는가? 중요한 것은 토건과 재벌과 특권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정책체계를 바꾸어 가는 것이다.
2000년 너머 오늘 가나안땅에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희망을 주러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한다. 수천킬로 떨어진 한국 땅에서, 오늘도 추위에 떨고 있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도 따뜻한 희망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희망이 깃든 아름다운 밤이 되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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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난 아무래도 시대와 ‘불화’하고 있다. 물론 지난 정권에서도 불만은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고소영내각, 4대강사업, 공공기관민영화, 미국산쇠고기수입, 부자감세, 금산분리완화, 재벌규제완화, 노조탄압, 전직대통령에 대한 인격살인, 신문법과 방송법, 싹쓸이인사, 용산참사, 서울시광장폐쇄 등 모든 ‘정책’과 ‘행태’가 나의 상식에서 벗어난다.
가끔은 내 ‘상식’이 너무 편향된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자신의 인격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저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아니다. 청와대와 여의도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살벌하다. 이미 충분히 ‘유복’하고 ‘실력’ 있고 ‘수완’ 좋은 사람들만 행세하는 그런 사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잘 사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두의 능력이 최대화되어 새로운 성장의 추동력으로 되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다고 난 믿는다.
먼저 ‘안정’되지 않으면 사람의 능력은 최대화되지 않는다. 사람은 단순한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서로 즐기며(homo ludens), 이성적 결단에 의해 미래를 개척하는 현명한 존재(homo sapiens)인 것이다. ‘당근’과 ‘채찍’만이 아니라 사회 속의 ‘동감’과 ‘감동’이 곁들어져 처음으로 능력이 발휘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해도 태반이 비정규직이며, 의료와 주택과 소득에서 불안한 미래가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감동’이 들어갈 여지는 애초부터 없다.
‘학습과 참여’도 중요하다. 학생들은 입시와 입사지옥에 시달리며, 여성들은 가사노동에 매이며, 직장인들은 40이 넘으면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창조적 지식이 축적될 리가 없다. 기업이 못한다면 당연히 정부라도 해야 한다. 복지,교육, 환경, 의료의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그 일자리에 맞게 사람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가야 한다. 모두가 ‘학습’하고, ‘학습’된 지식을 생산활동 속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확대시켜야 한다.
혹자는 ‘복지병’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정부가 지출하는 복지예산규모는 GDP대비 6.9%로서 OECD 평균인 20.6%(2005년)에 비해 턱없이 낮다.
다른 혹자는 복지예산을 걱정한다. 당연히 세금을 걷어야 한다. 애초부터 한국의 국민부담율(세금과 사회보험비의 GDP비율)은 26.8%로서 OECD 평균인 35.9%(2006년)에 한참 못 미친다. 정부가 별로 해주는 것도 없지만 ‘고맙게도’ 별로 돈도 안 걷는 것이다. 세금이야 ‘있는 사람’에게 걷는 것이 상식이나 ‘세금폭탄’이라고 사방에서 아우성친다. 참 염치없는 짓이다.
일부 식자층은 증세를 하면 경제적 활력이 줄어든다고 제법 전문지식을 동원한다.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감세를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런 분들에게는 제발 부탁이다. 이론이든 사례든 증명해 주길 바란다.
적어도 나의 지식 속에서는 감세의 경제성장효과란 이론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각국이 직면하는 실질적, 경험적 사실에 입각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19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감세정책은 경제적 효과로서 발현되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지금 한국의 부자감세도 마찬가지다.
한발 더 나아가 경제통합 이후 유럽 각국에서 벌어졌던 감세경쟁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규모도 크지 않을뿐더러 대상도 주로 법인세감세에 한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양도세 모두 다 대대적으로 감세하는 경우를 적어도 지난 20년간 난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감세 속에서도 복지국가 유럽의 기본틀이 흔들린 것도 아니었다. 재정건전성과 복지국가와 안정된 경제성장이라는 3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버린 스웨덴의 사례도 존재한다.
대체 그들은 하는데 왜 우리가 못하겠는가? 복지국가도 만들고 국민소득도 3만 달러로 늘리고 노동도 안정화된 그런 사회가 왜 우리의 미래가 못 되겠는가? 중요한 것은 토건과 재벌과 특권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정책체계를 바꾸어 가는 것이다.
2000년 너머 오늘 가나안땅에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희망을 주러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한다. 수천킬로 떨어진 한국 땅에서, 오늘도 추위에 떨고 있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도 따뜻한 희망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희망이 깃든 아름다운 밤이 되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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