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아련한 동경이다. 낭만과 신화가 가득 쟁여져 있는 곳이다. 섬마을 선생님은 왠지 달콤한 로맨스와 깊은 사연을 지닌 주인공 일 것만 같다. 그래서 섬마을 유람에 나섰다. 섬마을 선생님들의 훈훈한 휴먼스토리와 낙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지면에 담아낼 작정이다. 서해의 백령·연평군도에서 남해 한려수도를 돌아 동해의 울릉도까지….
겨울의 바닷가는 절간처럼 고독하다. 한 여름 뜨거운 알몸들이 뒹굴던 백사장엔 흰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어디선가 떠밀려온 빈 소주병 하나가 텅 빈 백사장 위를 나 홀로 뒹군다. 한 때는 독한 열정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겠지만, 이젠 그 뜨거움을 한 방울 남김없이 탈탈 털어낸 채 텅 빈 바닷가에서 고요히 쉬고 있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겨울 스케치다.
해수욕장 가에는 하얀 풍차 3대가 천천히 돌고 있다. 안내 표지판을 들여다보니 날개 직경이 무려 61.4m, 높이 71m나 되는 골리앗이다. 풍차를 뒤로하고 마을 쪽으로 걷는다. 마을 주변의 밭은 온통 푸른 시금치로 덮여 있다. 밭고랑 사이에 시금치를 수확하는 마을주민들의 모습이 정겹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바둑판처럼 칸을 가른 너른 벌판이 펼쳐진다. 넓이가 100ha를 넘는다는 우리나라 대표 염전지역 중 하나다. 염전의 칸칸마다 바닷물이 갇혀 있다. 어떤 건 눈밭처럼 희고, 어떤 건 거울처럼 반짝이고, 또 어떤 건 그냥 연못 같기도 하다.
광활한 염전을 가르는 길이 동서로 달린다. 그 도로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다보니 길이 남쪽으로 90도 꺾인다.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돌면서 오른편을 바라보면 멀찍이 반듯한 건물 세 동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행선지인 비금중고등학교다.
교문을 들어서자 ‘學行一致(학행일치)’라는 교훈이 새겨진 큼지막한 돌이 길손을 맞는다. 중앙 현관으로 들어서니 ‘비금의 인물’이라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이성출 육군대장과 프로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을 소개하는 액자가 걸려있다.
교무실 한 편에 놓인 소파에서 선생님 한 분과 마주 앉았다. 작달막한 키에 동그란 얼굴, 두툼한 입술…. 다부지면서도 선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다. 비금고등학교 실업과목을 담당하는 한귀석(51) 선생님이다. 조선대 상대 78학번으로 올해로 교직 경력 23년차인 베테랑이다.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선생님의 두터운 입술에서 뜨거운 열정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 땅의 교육 전반에 관한 걱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 학생들에겐 국·영·수 점수가 최고의 선입니다. 우리의 전통적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이나 전인교육이나 사회교육 등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예요. 점수벌레를 만드는 것보다 사람교육을 먼저 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섬 학교엔 조손가정 혹은 편부편모 등 결손가정의 학생들이 많다. 젊은 부모들이 뭍으로 돈을 벌기위해 떠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자식들과 함께 뭍으로 떠나지 못할 만큼 사정이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경영정보과에는 보통과에 비해 결손가정의 아이들의 비중이 훨씬 높다.
“우리 반 학생 12명 중 조손가정의 아이들이 넷, 편부편모 가정의 아이들이 둘입니다. 절반이 결손가정의 아이들인 셈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무조건 학교에 떠넘기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학교에서 점심, 저녁식사까지 제공하고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킵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물질적으로 보상을 하려 합니다. 비싼 휴대전화를 사 준다든지 쌍꺼풀 수술을 해줍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지요.”
사람의 마음은 산수를 닮는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인정과 사랑도 샘솟는 법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을 듣다보니 그게 아니다.
“요즘 섬 아이들의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어요. 남들에 대한 배려를 몰라요.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경하는 풍토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먹고 살기 힘드니까 부모들은 돈 벌러 섬을 떠나고, 그러다보니 가족 공동체가 깨지고, 아이들은 거칠어지는 거지요.”
선생님은 젊은이들이 섬을 떠나는 게 안타깝다. 아이들이 일자리 때문에 섬을 떠나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다. 섬을 떠난 제자들이 전부 걱정 없이 잘만 살아 준다면 그래도 덜 서운할 텐데, 들리는 소식은 그게 아니다.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 변변한 돈벌이도 못하면서 고생을 하는 제자들의 소식을 듣는 게 가장 안타깝다.
그래서 도시에 나가 생고생하느니 고향에서 농사짓고 어업에 종사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다. 누군가는 고향을 지켜야 하고, 그런 젊은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섬에 젊은이들이 남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더라도 도시 못지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본적 인프라를 갖춰주면 됩니다. 면장님과 군수님, 조합장님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지자체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전폭적으로 지원을 합니다. 예컨대 서울대에 합격하면 4년 전액 장학금에 기숙사비 지원까지 하거든요. 고향의 이름을 빛내는 인재를 지원한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그런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고향을 지키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난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이런 취지를 담은 편지를 군수님께 띄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남들에게만 과제를 떠넘기는 건 아니다. 선생님 스스로 수익방안을 연구하기도 한다. 얼마 전엔 방과 후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함초 소금’과 ‘함초 미숫가루’를 직접 만들었다. 함초란 갯벌이나 염전 주위에서 자라는 식물로 고혈압과 당뇨 등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이다.
“비금도는 최고품질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거기에 각종 약효를 지난 함초를 가미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일반 소금은 30kg들이 한 포대에 7000~8000원 정도지만, 함초 소금은 5kg짜리가 3만원에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무려 20배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거지요. 함초 미숫가루는 이 지역의 청정한 환경에서 재배한 검정깨와 참깨, 쌀 등과 함초를 함께 섞어 만든 겁니다. 학생들과 함께 직접 함초 소금이나 함초 미숫가루를 만들어 봄으로써 그들에게 고향의 가능성을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와 직업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걱정했다. 섬 아이들이 무작정 섬을 벗어나려 하는 것도 이 같은 사회 풍토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독일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최소한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사회구조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공부에 취미가 있건 없건 무조건 대학진학을 고집하는 사회풍토도 불식될 거고, 섬에 남으려는 젊은이들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할 거예요.”
박상주 오지여행가
새가 날개를 편 형상
다도해 비경 파노라마처럼
산비탈을 오르는데 선들선들 바람이 분다. 막 배어나오기 시작한 이마의 땀을 기분 좋게 식혀준다. 바람은 추억을 안고 떠돈다. 아주 어릴 적 내 뺨을 스치고 지났던 바람이 우주를 돌고 돌아 어른이 된 내 얼굴을 다시 스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바람이 불때마다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한 자락씩 살아나는 게 아닐까?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느낌을 ‘데자뷰(기시감)’라고 했던가? 산을 오르는데 자꾸 전에 한 번 와 본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데자뷰를 불러일으키는 정체는 아마도 바람일 것이다. 방금 전 얼굴에 스친 바람은 어린 시절 동무들과 고향의 산등성이를 오르며 맞았던 그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세상 유람을 하다가 다시 옛 친구와 섬 마을에서 조우라도 한 거겠지.
비금도 서쪽 편에 솟아있는 선왕산(255m)을 오르는 중이었다. 동남쪽 끝단인 상암마을 주차장에서 시작한 산행이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등산안내도를 보니 상암주차장~그림산 정상∼죽치우실∼선왕산 정상~서산 저수지를 거치는 5km 남짓의 평탄한 코스다. 택시기사의 말에 따르면 보통사람의 걸음으로 3시간 정도 걸리는 산행길이다.
비금도는 목포로부터 54.5km의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북동쪽으로는 자은도와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서쪽으로는 흑산도, 남쪽으로는 도초도와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4개와 무인도 76개를 거느리고 있으며 해안선은 86.4㎞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으로는 성치산맥이, 서쪽으로는 선왕산맥이 뻗쳐있다. 동서로 산맥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이 마치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양을 닮았다. 비금도(飛禽島)라는 섬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산을 오를수록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비금도를 둘러싸고 있는 다도해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보면서 베트남 하롱베이를 떠올린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하롱베이가 저토록 미려하지는 않았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 뒤지더라도 이런 천상의 풍광을 찾아낼 수 있을까?
226m높이의 그림산을 오를 때 까지는 그래도 산을 오르는 맛을 느낄 정도로 가파르다. 조금 힘은 들지만 그림산은 그 정상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전망대처럼 평평한 정상에 오르면 비금도 남쪽 해안을 따라 늘어선 진회색의 염전과 푸른 카펫처럼 동서부 평야를 덮고 있는 시금치 밭의 풍광, 멀리 북쪽의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원평 해수욕장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최정상인 선왕산에 오르는 사람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우선은 정상을 정복했다는 기쁨이 그 첫째요, 그 두 번째 선물은 하누넘 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기쁨이다.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하누넘 해수욕장은 일몰의 장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안선의 모양 때문에 ‘하트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실제로 선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누넘 해수욕장은 완전한 하트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게에서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했더니 당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택시기사라고 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음식 잘하는 식당으로 갑시다. 요즘 여긴 뭐가 맛있나요?”
“간재미(가자미) 회 무침 한번 드셔보세요. 요즘 제철입니다.”
10여분이나 달렸을까? 택시는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연륙교를 건너 도초도 화도 선착장에서 멈춰 섰다. 너 댓집 늘어선 음식점들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택시기사가 권한대로 간재미 회 무침과 도초 막걸리 한통을 주문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 할머니가 수족관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던 간재미란 놈을 뜰채로 건져내서는 회를 친다. 잘게 썬 무채와 매운 청양고추 등 야채를 초장과 함께 버무린 간재미 회 무침이 큰 쟁반에 수북하게 나온다. 한 젓가락 덥석 집어 문다. 간재미 회의 감칠맛과 무채의 아삭아삭한 시원함, 청양 고추의 맵고 단 맛 등이 한꺼번에 입안을 가득 채운다. 새콤, 달콤, 매콤함과 그 쫄깃하게 씹히는 육질이 어우러진 맛이란!. 아, 세상에 이런 맛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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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바닷가는 절간처럼 고독하다. 한 여름 뜨거운 알몸들이 뒹굴던 백사장엔 흰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어디선가 떠밀려온 빈 소주병 하나가 텅 빈 백사장 위를 나 홀로 뒹군다. 한 때는 독한 열정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겠지만, 이젠 그 뜨거움을 한 방울 남김없이 탈탈 털어낸 채 텅 빈 바닷가에서 고요히 쉬고 있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겨울 스케치다.
해수욕장 가에는 하얀 풍차 3대가 천천히 돌고 있다. 안내 표지판을 들여다보니 날개 직경이 무려 61.4m, 높이 71m나 되는 골리앗이다. 풍차를 뒤로하고 마을 쪽으로 걷는다. 마을 주변의 밭은 온통 푸른 시금치로 덮여 있다. 밭고랑 사이에 시금치를 수확하는 마을주민들의 모습이 정겹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바둑판처럼 칸을 가른 너른 벌판이 펼쳐진다. 넓이가 100ha를 넘는다는 우리나라 대표 염전지역 중 하나다. 염전의 칸칸마다 바닷물이 갇혀 있다. 어떤 건 눈밭처럼 희고, 어떤 건 거울처럼 반짝이고, 또 어떤 건 그냥 연못 같기도 하다.
광활한 염전을 가르는 길이 동서로 달린다. 그 도로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다보니 길이 남쪽으로 90도 꺾인다.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돌면서 오른편을 바라보면 멀찍이 반듯한 건물 세 동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행선지인 비금중고등학교다.
교문을 들어서자 ‘學行一致(학행일치)’라는 교훈이 새겨진 큼지막한 돌이 길손을 맞는다. 중앙 현관으로 들어서니 ‘비금의 인물’이라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이성출 육군대장과 프로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을 소개하는 액자가 걸려있다.
교무실 한 편에 놓인 소파에서 선생님 한 분과 마주 앉았다. 작달막한 키에 동그란 얼굴, 두툼한 입술…. 다부지면서도 선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다. 비금고등학교 실업과목을 담당하는 한귀석(51) 선생님이다. 조선대 상대 78학번으로 올해로 교직 경력 23년차인 베테랑이다.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선생님의 두터운 입술에서 뜨거운 열정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 땅의 교육 전반에 관한 걱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 학생들에겐 국·영·수 점수가 최고의 선입니다. 우리의 전통적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이나 전인교육이나 사회교육 등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예요. 점수벌레를 만드는 것보다 사람교육을 먼저 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섬 학교엔 조손가정 혹은 편부편모 등 결손가정의 학생들이 많다. 젊은 부모들이 뭍으로 돈을 벌기위해 떠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자식들과 함께 뭍으로 떠나지 못할 만큼 사정이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경영정보과에는 보통과에 비해 결손가정의 아이들의 비중이 훨씬 높다.
“우리 반 학생 12명 중 조손가정의 아이들이 넷, 편부편모 가정의 아이들이 둘입니다. 절반이 결손가정의 아이들인 셈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무조건 학교에 떠넘기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학교에서 점심, 저녁식사까지 제공하고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킵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물질적으로 보상을 하려 합니다. 비싼 휴대전화를 사 준다든지 쌍꺼풀 수술을 해줍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지요.”
사람의 마음은 산수를 닮는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인정과 사랑도 샘솟는 법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을 듣다보니 그게 아니다.
“요즘 섬 아이들의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어요. 남들에 대한 배려를 몰라요.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경하는 풍토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먹고 살기 힘드니까 부모들은 돈 벌러 섬을 떠나고, 그러다보니 가족 공동체가 깨지고, 아이들은 거칠어지는 거지요.”
선생님은 젊은이들이 섬을 떠나는 게 안타깝다. 아이들이 일자리 때문에 섬을 떠나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다. 섬을 떠난 제자들이 전부 걱정 없이 잘만 살아 준다면 그래도 덜 서운할 텐데, 들리는 소식은 그게 아니다.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 변변한 돈벌이도 못하면서 고생을 하는 제자들의 소식을 듣는 게 가장 안타깝다.
그래서 도시에 나가 생고생하느니 고향에서 농사짓고 어업에 종사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다. 누군가는 고향을 지켜야 하고, 그런 젊은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섬에 젊은이들이 남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더라도 도시 못지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본적 인프라를 갖춰주면 됩니다. 면장님과 군수님, 조합장님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지자체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전폭적으로 지원을 합니다. 예컨대 서울대에 합격하면 4년 전액 장학금에 기숙사비 지원까지 하거든요. 고향의 이름을 빛내는 인재를 지원한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그런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고향을 지키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난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이런 취지를 담은 편지를 군수님께 띄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남들에게만 과제를 떠넘기는 건 아니다. 선생님 스스로 수익방안을 연구하기도 한다. 얼마 전엔 방과 후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함초 소금’과 ‘함초 미숫가루’를 직접 만들었다. 함초란 갯벌이나 염전 주위에서 자라는 식물로 고혈압과 당뇨 등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이다.
“비금도는 최고품질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거기에 각종 약효를 지난 함초를 가미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일반 소금은 30kg들이 한 포대에 7000~8000원 정도지만, 함초 소금은 5kg짜리가 3만원에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무려 20배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거지요. 함초 미숫가루는 이 지역의 청정한 환경에서 재배한 검정깨와 참깨, 쌀 등과 함초를 함께 섞어 만든 겁니다. 학생들과 함께 직접 함초 소금이나 함초 미숫가루를 만들어 봄으로써 그들에게 고향의 가능성을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와 직업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걱정했다. 섬 아이들이 무작정 섬을 벗어나려 하는 것도 이 같은 사회 풍토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독일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최소한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사회구조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공부에 취미가 있건 없건 무조건 대학진학을 고집하는 사회풍토도 불식될 거고, 섬에 남으려는 젊은이들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할 거예요.”
박상주 오지여행가
새가 날개를 편 형상
다도해 비경 파노라마처럼
산비탈을 오르는데 선들선들 바람이 분다. 막 배어나오기 시작한 이마의 땀을 기분 좋게 식혀준다. 바람은 추억을 안고 떠돈다. 아주 어릴 적 내 뺨을 스치고 지났던 바람이 우주를 돌고 돌아 어른이 된 내 얼굴을 다시 스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바람이 불때마다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한 자락씩 살아나는 게 아닐까?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느낌을 ‘데자뷰(기시감)’라고 했던가? 산을 오르는데 자꾸 전에 한 번 와 본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데자뷰를 불러일으키는 정체는 아마도 바람일 것이다. 방금 전 얼굴에 스친 바람은 어린 시절 동무들과 고향의 산등성이를 오르며 맞았던 그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세상 유람을 하다가 다시 옛 친구와 섬 마을에서 조우라도 한 거겠지.
비금도 서쪽 편에 솟아있는 선왕산(255m)을 오르는 중이었다. 동남쪽 끝단인 상암마을 주차장에서 시작한 산행이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등산안내도를 보니 상암주차장~그림산 정상∼죽치우실∼선왕산 정상~서산 저수지를 거치는 5km 남짓의 평탄한 코스다. 택시기사의 말에 따르면 보통사람의 걸음으로 3시간 정도 걸리는 산행길이다.
비금도는 목포로부터 54.5km의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북동쪽으로는 자은도와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서쪽으로는 흑산도, 남쪽으로는 도초도와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4개와 무인도 76개를 거느리고 있으며 해안선은 86.4㎞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으로는 성치산맥이, 서쪽으로는 선왕산맥이 뻗쳐있다. 동서로 산맥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이 마치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양을 닮았다. 비금도(飛禽島)라는 섬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산을 오를수록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비금도를 둘러싸고 있는 다도해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보면서 베트남 하롱베이를 떠올린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하롱베이가 저토록 미려하지는 않았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 뒤지더라도 이런 천상의 풍광을 찾아낼 수 있을까?
226m높이의 그림산을 오를 때 까지는 그래도 산을 오르는 맛을 느낄 정도로 가파르다. 조금 힘은 들지만 그림산은 그 정상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전망대처럼 평평한 정상에 오르면 비금도 남쪽 해안을 따라 늘어선 진회색의 염전과 푸른 카펫처럼 동서부 평야를 덮고 있는 시금치 밭의 풍광, 멀리 북쪽의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원평 해수욕장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최정상인 선왕산에 오르는 사람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우선은 정상을 정복했다는 기쁨이 그 첫째요, 그 두 번째 선물은 하누넘 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기쁨이다.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하누넘 해수욕장은 일몰의 장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안선의 모양 때문에 ‘하트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실제로 선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누넘 해수욕장은 완전한 하트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게에서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했더니 당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택시기사라고 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음식 잘하는 식당으로 갑시다. 요즘 여긴 뭐가 맛있나요?”
“간재미(가자미) 회 무침 한번 드셔보세요. 요즘 제철입니다.”
10여분이나 달렸을까? 택시는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연륙교를 건너 도초도 화도 선착장에서 멈춰 섰다. 너 댓집 늘어선 음식점들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택시기사가 권한대로 간재미 회 무침과 도초 막걸리 한통을 주문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 할머니가 수족관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던 간재미란 놈을 뜰채로 건져내서는 회를 친다. 잘게 썬 무채와 매운 청양고추 등 야채를 초장과 함께 버무린 간재미 회 무침이 큰 쟁반에 수북하게 나온다. 한 젓가락 덥석 집어 문다. 간재미 회의 감칠맛과 무채의 아삭아삭한 시원함, 청양 고추의 맵고 단 맛 등이 한꺼번에 입안을 가득 채운다. 새콤, 달콤, 매콤함과 그 쫄깃하게 씹히는 육질이 어우러진 맛이란!. 아, 세상에 이런 맛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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