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과 생활정치연구소가 공동기획한 ‘이제는 생활정치다’가 기획 마지막인 10번째로 여야 의원과 학계전문가를 한자리에 모아 생활정치의 현주소와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김성식(한나라당) 원혜영(민주당) 의원과 정해구(성공회대)교수가 참석했다. 사회는 정상호 명지대 연구교수가 맡았다.
정상호 = 생활정치란 용어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건 91년 지방선거였다. 그때만해도 정형화된 내용없이 깃발로만 사용됐더라. 최근 생활정치가 부쩍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해구 = 압축적 성장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사회발전 방식을 모색하는 전환기에 생활정치가 나온 것 같다.
원혜영 = 지난해 촛불시위가 일어난 상황에서 시민의 요구와 정치권 기능 사이의 간극, 이를 메우기 위한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된게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 아니겠나싶다.
김성식 = 기성정치에 대한 식상함이 배경이라고 본다. 정치가 실용적이지 못하고 여전히 대립적인 구도에 매몰돼있다. 정치가 큰 이슈에만 몰두하고 생활 속의 이슈가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 때문에 생활정치가 대두되지 않았겠나.
정상호 = 생활정치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떨까.
정해구 = 그들의 정치가 있고 나의 정치, 우리의 정치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정치는 기득권의 정치, 여의도 정치다. 내가 참여하는 것은 투표정도인데, 그나마 최근엔 투표율도 떨어지고 있다. 생활정치는 반대개념으로 나의 정치, 우리의 정치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관심 갖고 내가 문제제기하는 정치다. 여기서 나는 서민일 뿐 사회적 강자가 아니다.
김성식 = 새로운 주권성의 회복 욕구다. 과거엔 절대군주로부터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주권자로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욕구였다면 경제적인 변화와 민주주의 사회로의 전환이 되면서 또다른 주권성이 나오고 있다.
내가 정치권력을 뽑아 대의적으로 맡긴다는 것을 넘어 자기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근데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기존의 대의정치 틀과 생활정치적 기제를 어떻게 잘 연결시킬 것인가이다. 국가적 이슈와 삶의 터전에서 나오는 이슈를 어떻게 조화시켜나갈 것인가 이런 숙제도 남아있다. 미지의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다.
원혜영 = 정해구 교수 말씀이 마케팅 용어로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제가 (부천)시장시절 공무원에게 강조한게 시민의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공급자 눈으로 봐선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시민 눈으로 보면 많는 문제점 찾을 수 있다. 이미 시장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정치는 여전히 공급자와 생산자 중심이다. 그게 그들만의 정치로 국민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정상호 = 생활정치는 두가지 점에 흥미롭다. 포스트모던한 서구에선 탈정치를 얘기하는데 생활정치는 정치를 중심에 두고 얘기한다. 두 번째 수요자, 나, 우리, 주권은 참여적인 개념이다. 정치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는 것 아니겠나. 대상화되고 객관화되어있는 정치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정치로 바뀌는 점을 세 분이 공통적으로 지적해주셨다고 본다.
원혜영 =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뉴민주당 플랜에 있어서 생활정치의 위상과 비중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않냐는 연속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김성식 = 생활정치가 민주화나 이념정치 등 거대담론이 사라지면서 국민의 생활터전에서 나오는 욕구의 반영이라고 본다면 각 정당이 생활정치적 요소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당론정치로부터 해방되어야한다고 본다. 의원 개개인과 상임위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회가 운영돼야한다. 권고적 당론도 예외적으로 (당) 정체성에 연관된 경우에만 국한돼야한다. 이게 첫 출발이다. 두 번째 아까 원 의원께서 핵심을 짚었는데 수요자 중심 정치원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시스템화해야 한다. 지지도 묻는 여론조사 말고 심층면접인터뷰 등을 통해 여론을 들어야 한다. 당원들에게도 동원하는데 급급할게 아니라 정책에 대해 귀를 열고 듣는, 소통하는 식으로 바뀌어야한다.
정상호 = 쟁점이 될 질문인데, 이명박정부의 기조와 핵심정책을 생활정치 측면에서 보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김성식 = 이명박정부는 경제를 살려달라는 욕구를 반영해서 좀 태동했고 과거 정치와 뭔가 대립적이지 않겠냐는 기대 속에서 출범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중 속에서 (경제살리기란) 기대에 부응하고 중도실용 기치 속에서 뭔가 탈이념적인 정치를 시도하려는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다만 생활형 아젠다를 중심으로해서 정책의 폭과 깊이를 넓혀갔느냐는 여전히 성찰의 대상이라고 본다.
또한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디딤돌이 되어주고 단순한 결과적 형평으로만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열심히 사는 분은 조금 더 신분상승, 생활상승 가능하도록 하는 기회의 사다리도 촘촘히 놓아주는 그런 측면을 강화해야하지 않을까싶다. 다만 중요한 걸림돌이 노사문제다. 시민노동세력이 직장과 생활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괴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속에서 기득권의 논리는 없는지 돌아봤으면한다.
정상호 = 4대강사업과 생활정치가 긴장과 갈등관계에 있다고 보는가.
김성식 = 4대강사업은 생활정치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측면도 있고 동시에 방향이 올바르냐는 논란을 일으키는 양 측면이 있다. 물에 대한 효율적 이용이라든가. 침수공간의 확보, 멀리있는 강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강을 만드는 그런 문제의식 있다. 다만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강을 살릴 것이냐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과연 소통을 통해 풀었느냐하는 점에서 지적을 받는게 현실이다.
어쨌든 이 부분은 국회 예결위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강을 살리자는 문제의식은 같은만큼 다만 어떤 방법으로 살릴 것인지, 보나 준설 중심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예전처럼 제방을 쌓을 것인지 이런 방법론의 논란부터 조목조목 따져봤으면 한다.
원혜영 = 이 대통령 정책기조는 거시적으로 보면 하드웨어 중심인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어야되지 않겠나. 우리 사회 경쟁력의 원천이 어디냐. 행정도시로 분할해선 안되고 강을 이대로 둬선 안되고 따위의 문제보단 인적요소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더 해야한다. 정책의 중심도 그쪽으로 옮겨야한다. 거기에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해구 = 압축성장도 어느정도 이뤄지면 역할이 마무리되고 다른 질적성장으로 넘어가는 게 필요하다. 한국은 압축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것 같다. 이명박정부의 정책은 압축성장의 가장 끝부분에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거시적으로 역사적 사이클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미래를 대표하기보단 과거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회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과거를 대표하는데 급급해 갈등이 생긴다.
김성식 = 4대강사업에 대한 집중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생활정치의 방향을 잡으려는 시도는 생활정치를 풍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예산심의도 마찬가지다. 4대강사업에 심사가 집중되니까 정작 중요한 다른 예산은 손도 못댄다. 다른 부처장관들은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낙인찍기식이나 이분법적 담론, 개인의 자율성이나 자율적 판단의 영역을 없애는 집단주의적 경향은 생활정치에 좋지않다.
원혜영 = 의회정치와 생활정치의 거리에 대해 얘기하면, 국회가 거대담론에 휩싸여 전혀 생활상의 문제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국회 구조 자체가 큰 덩어리 위주로 가게 돼있다. 법률과 예산을 갖고 싸우다보니까 마이크로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원내대표 시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게 국회의 기능과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상임위에 소위원회를 두고 일상적으로 가동시켜야한다. 전세값 상승이나 대중교통의 불편 등을 좁고 깊게 지속적으로 다뤄나갈 틀이 없다. 상임위는 의원 20명이 장관 앉혀놓고 질타만하다가 중구난방으로 끝나기 일쑤다. 그래서 국회가 정말 생활의 문제를 책임있게 접근하려면 소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상시운용해야한다.
정해구 = 국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정치 구조의 문제다. 한국정치에는 대통령과 국회정당, 그리고 시민사회의 정치가 있다. 이 세 단위가 따로논다. 대통령은 국회에 대해 신경 안쓰고 밀어붙이는 식이다. 집권당은 대통령에게 구속될 수 밖에 없고 야당은 저항할 수 밖에 없다. 국회가 제역할 못하니까 밖에선 저항의 시민사회정치가 만들어진다. 대통령과 국회정당, 시민사회가 고립분산적이고 협조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정치 전체가 망가지고 있다.
김성식 = 저 스스로 민주화세력 출신이라 애정을 갖고 시민·노동운동에 대해, 생활정치가 잘되기 위해 충언 드리고싶다. 시민·노동운동의 영역이 말그대로 탈 이념화, 탈 도그마, 탈 집단화가 됐으면 좋겠다. 시민·노동운동 세력 스스로 기존 도그마 내지 프레임에 갇혀서 기성정치를 비판하는걸 반복하면, 기성정치를 넘어서는 길이 생활정치인데, 생활정치가 차분하게 국민 속에 뿌리 내리도록 도움 주는게 어려울 수 있다.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간곡한 바람이다. 시민·노동세력이 제 방향을 잡으면 정치권의 수용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정상호 = 생활정치가 기성정치와 현정부를 비판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떻게보면 진보와 노동운동 세력을 성찰하고 변화를 모색해볼 수 있는 개념의 틀로 접근해볼 수 있지않겠냐는 지적으로 들린다. 지방선거가 6개월 남았다. 내년 지방선거가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치러지는게 좋을지.
원혜영 =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고 싶다. 그동안 선거공약은 정치인이나 정당조차 공약에 대한 책임성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이 믿어주리라 생각을 안했다. 그 무책임성의 극치가 대선 공약이고 이는 단임제의 한계다. 무책임정치의 극치인 대통령 단임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도 무책임의 반복이었는데, 이번 선거부터는 매니페스토 방식으로 공약하도록 되어있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처음으로 책임있는 공약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유권자도 후보가 공약을 어떻게 했고 이행하는지 따져볼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정치 회복의 신기원이 되지않을까 싶다.
정해구 = 내년 지방선거에선 생활정치가 담론으로서 확산되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유권자의 수요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잘못하면 1회용으로 폐기처분될 수 있다. 선거 때 떠들고 생활정치란 말을 오염시킨 다음에 폐기처분하면 생활정치를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난감한 사태가 벌어진다. 후보자나 정당이 조금 진지하게 생각했으면한다. 한번 쓰고 버리는 선거용이 아니고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꾼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했으면한다.
김성식 = 지방자치는 생활정치를 잘 구현할 수 있는 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중앙정치 차원의 거대이슈 충돌보다는 정말 풀뿌리에서 커 나온 분들이 다수 진출하는 기회가 됐으면한다. 각 정당은 다양한 후보를 발굴해내야한다. 그동안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지역유지 중심의 공천을 해온게 사실이다. 유권자도 평상시 생활정치적 관점에서 (지방)의원들을 평가하다가 막상 선거 되면 정당정치적 요소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으면한다.
정상호 = 생활정치를 가로막고있는 요인은 뭔지, 어떻게 개선되야되는지 말씀해달라.
원혜영 = 정리해보면 의회 기능이 국민 생활상 문제와 밀착하기 위해선 구조자체가 세분화되어야한다. 그래야 심도있고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점검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정치의 중심을 국민에게 돌려줘야한다. 정치권 입장에선 시민적 관점으로 시각 이동하는게 필요하다. 마케팅 용어로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생산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다. 정치인은 화자가 아니라 듣는사람, 리스너(listener)로서의 자세와 훈련이 필요하다.
김성식 = 지역주의적 투표를 부추기는 정당도 문제지만 유권자도 이번 지방선거에선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투표를 보여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정치권은 스스로 내부의 기득권과 관행에 맞서 싸워야한다. 최선 다해서 기성정치를 업그레이드 시켜야한다. 기성정치와 생활정치를 대립시키면 안된다. 기성정치를 죽이면 생활정치가 커지는게 아니다. 기성정치를 개선하면 생활정치 영역을 키울 수 있다. 선순환 모델을 생활정치론 속에서 발전시켜주셨으면 기대한다.
정리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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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호 = 생활정치란 용어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건 91년 지방선거였다. 그때만해도 정형화된 내용없이 깃발로만 사용됐더라. 최근 생활정치가 부쩍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해구 = 압축적 성장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사회발전 방식을 모색하는 전환기에 생활정치가 나온 것 같다.
원혜영 = 지난해 촛불시위가 일어난 상황에서 시민의 요구와 정치권 기능 사이의 간극, 이를 메우기 위한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된게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 아니겠나싶다.
김성식 = 기성정치에 대한 식상함이 배경이라고 본다. 정치가 실용적이지 못하고 여전히 대립적인 구도에 매몰돼있다. 정치가 큰 이슈에만 몰두하고 생활 속의 이슈가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 때문에 생활정치가 대두되지 않았겠나.
정상호 = 생활정치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떨까.
정해구 = 그들의 정치가 있고 나의 정치, 우리의 정치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정치는 기득권의 정치, 여의도 정치다. 내가 참여하는 것은 투표정도인데, 그나마 최근엔 투표율도 떨어지고 있다. 생활정치는 반대개념으로 나의 정치, 우리의 정치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관심 갖고 내가 문제제기하는 정치다. 여기서 나는 서민일 뿐 사회적 강자가 아니다.
김성식 = 새로운 주권성의 회복 욕구다. 과거엔 절대군주로부터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주권자로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욕구였다면 경제적인 변화와 민주주의 사회로의 전환이 되면서 또다른 주권성이 나오고 있다.
내가 정치권력을 뽑아 대의적으로 맡긴다는 것을 넘어 자기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근데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기존의 대의정치 틀과 생활정치적 기제를 어떻게 잘 연결시킬 것인가이다. 국가적 이슈와 삶의 터전에서 나오는 이슈를 어떻게 조화시켜나갈 것인가 이런 숙제도 남아있다. 미지의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다.
원혜영 = 정해구 교수 말씀이 마케팅 용어로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제가 (부천)시장시절 공무원에게 강조한게 시민의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공급자 눈으로 봐선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시민 눈으로 보면 많는 문제점 찾을 수 있다. 이미 시장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정치는 여전히 공급자와 생산자 중심이다. 그게 그들만의 정치로 국민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정상호 = 생활정치는 두가지 점에 흥미롭다. 포스트모던한 서구에선 탈정치를 얘기하는데 생활정치는 정치를 중심에 두고 얘기한다. 두 번째 수요자, 나, 우리, 주권은 참여적인 개념이다. 정치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는 것 아니겠나. 대상화되고 객관화되어있는 정치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정치로 바뀌는 점을 세 분이 공통적으로 지적해주셨다고 본다.
원혜영 =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뉴민주당 플랜에 있어서 생활정치의 위상과 비중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않냐는 연속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김성식 = 생활정치가 민주화나 이념정치 등 거대담론이 사라지면서 국민의 생활터전에서 나오는 욕구의 반영이라고 본다면 각 정당이 생활정치적 요소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당론정치로부터 해방되어야한다고 본다. 의원 개개인과 상임위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회가 운영돼야한다. 권고적 당론도 예외적으로 (당) 정체성에 연관된 경우에만 국한돼야한다. 이게 첫 출발이다. 두 번째 아까 원 의원께서 핵심을 짚었는데 수요자 중심 정치원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시스템화해야 한다. 지지도 묻는 여론조사 말고 심층면접인터뷰 등을 통해 여론을 들어야 한다. 당원들에게도 동원하는데 급급할게 아니라 정책에 대해 귀를 열고 듣는, 소통하는 식으로 바뀌어야한다.
정상호 = 쟁점이 될 질문인데, 이명박정부의 기조와 핵심정책을 생활정치 측면에서 보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김성식 = 이명박정부는 경제를 살려달라는 욕구를 반영해서 좀 태동했고 과거 정치와 뭔가 대립적이지 않겠냐는 기대 속에서 출범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중 속에서 (경제살리기란) 기대에 부응하고 중도실용 기치 속에서 뭔가 탈이념적인 정치를 시도하려는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다만 생활형 아젠다를 중심으로해서 정책의 폭과 깊이를 넓혀갔느냐는 여전히 성찰의 대상이라고 본다.
또한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디딤돌이 되어주고 단순한 결과적 형평으로만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열심히 사는 분은 조금 더 신분상승, 생활상승 가능하도록 하는 기회의 사다리도 촘촘히 놓아주는 그런 측면을 강화해야하지 않을까싶다. 다만 중요한 걸림돌이 노사문제다. 시민노동세력이 직장과 생활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괴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속에서 기득권의 논리는 없는지 돌아봤으면한다.
정상호 = 4대강사업과 생활정치가 긴장과 갈등관계에 있다고 보는가.
김성식 = 4대강사업은 생활정치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측면도 있고 동시에 방향이 올바르냐는 논란을 일으키는 양 측면이 있다. 물에 대한 효율적 이용이라든가. 침수공간의 확보, 멀리있는 강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강을 만드는 그런 문제의식 있다. 다만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강을 살릴 것이냐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과연 소통을 통해 풀었느냐하는 점에서 지적을 받는게 현실이다.
어쨌든 이 부분은 국회 예결위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강을 살리자는 문제의식은 같은만큼 다만 어떤 방법으로 살릴 것인지, 보나 준설 중심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예전처럼 제방을 쌓을 것인지 이런 방법론의 논란부터 조목조목 따져봤으면 한다.
원혜영 = 이 대통령 정책기조는 거시적으로 보면 하드웨어 중심인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어야되지 않겠나. 우리 사회 경쟁력의 원천이 어디냐. 행정도시로 분할해선 안되고 강을 이대로 둬선 안되고 따위의 문제보단 인적요소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더 해야한다. 정책의 중심도 그쪽으로 옮겨야한다. 거기에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해구 = 압축성장도 어느정도 이뤄지면 역할이 마무리되고 다른 질적성장으로 넘어가는 게 필요하다. 한국은 압축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것 같다. 이명박정부의 정책은 압축성장의 가장 끝부분에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거시적으로 역사적 사이클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미래를 대표하기보단 과거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회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과거를 대표하는데 급급해 갈등이 생긴다.
김성식 = 4대강사업에 대한 집중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생활정치의 방향을 잡으려는 시도는 생활정치를 풍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예산심의도 마찬가지다. 4대강사업에 심사가 집중되니까 정작 중요한 다른 예산은 손도 못댄다. 다른 부처장관들은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낙인찍기식이나 이분법적 담론, 개인의 자율성이나 자율적 판단의 영역을 없애는 집단주의적 경향은 생활정치에 좋지않다.
원혜영 = 의회정치와 생활정치의 거리에 대해 얘기하면, 국회가 거대담론에 휩싸여 전혀 생활상의 문제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국회 구조 자체가 큰 덩어리 위주로 가게 돼있다. 법률과 예산을 갖고 싸우다보니까 마이크로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원내대표 시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게 국회의 기능과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상임위에 소위원회를 두고 일상적으로 가동시켜야한다. 전세값 상승이나 대중교통의 불편 등을 좁고 깊게 지속적으로 다뤄나갈 틀이 없다. 상임위는 의원 20명이 장관 앉혀놓고 질타만하다가 중구난방으로 끝나기 일쑤다. 그래서 국회가 정말 생활의 문제를 책임있게 접근하려면 소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상시운용해야한다.
정해구 = 국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정치 구조의 문제다. 한국정치에는 대통령과 국회정당, 그리고 시민사회의 정치가 있다. 이 세 단위가 따로논다. 대통령은 국회에 대해 신경 안쓰고 밀어붙이는 식이다. 집권당은 대통령에게 구속될 수 밖에 없고 야당은 저항할 수 밖에 없다. 국회가 제역할 못하니까 밖에선 저항의 시민사회정치가 만들어진다. 대통령과 국회정당, 시민사회가 고립분산적이고 협조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정치 전체가 망가지고 있다.
김성식 = 저 스스로 민주화세력 출신이라 애정을 갖고 시민·노동운동에 대해, 생활정치가 잘되기 위해 충언 드리고싶다. 시민·노동운동의 영역이 말그대로 탈 이념화, 탈 도그마, 탈 집단화가 됐으면 좋겠다. 시민·노동운동 세력 스스로 기존 도그마 내지 프레임에 갇혀서 기성정치를 비판하는걸 반복하면, 기성정치를 넘어서는 길이 생활정치인데, 생활정치가 차분하게 국민 속에 뿌리 내리도록 도움 주는게 어려울 수 있다.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간곡한 바람이다. 시민·노동세력이 제 방향을 잡으면 정치권의 수용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정상호 = 생활정치가 기성정치와 현정부를 비판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떻게보면 진보와 노동운동 세력을 성찰하고 변화를 모색해볼 수 있는 개념의 틀로 접근해볼 수 있지않겠냐는 지적으로 들린다. 지방선거가 6개월 남았다. 내년 지방선거가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치러지는게 좋을지.
원혜영 =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고 싶다. 그동안 선거공약은 정치인이나 정당조차 공약에 대한 책임성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이 믿어주리라 생각을 안했다. 그 무책임성의 극치가 대선 공약이고 이는 단임제의 한계다. 무책임정치의 극치인 대통령 단임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도 무책임의 반복이었는데, 이번 선거부터는 매니페스토 방식으로 공약하도록 되어있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처음으로 책임있는 공약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유권자도 후보가 공약을 어떻게 했고 이행하는지 따져볼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정치 회복의 신기원이 되지않을까 싶다.
정해구 = 내년 지방선거에선 생활정치가 담론으로서 확산되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유권자의 수요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잘못하면 1회용으로 폐기처분될 수 있다. 선거 때 떠들고 생활정치란 말을 오염시킨 다음에 폐기처분하면 생활정치를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난감한 사태가 벌어진다. 후보자나 정당이 조금 진지하게 생각했으면한다. 한번 쓰고 버리는 선거용이 아니고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꾼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했으면한다.
김성식 = 지방자치는 생활정치를 잘 구현할 수 있는 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중앙정치 차원의 거대이슈 충돌보다는 정말 풀뿌리에서 커 나온 분들이 다수 진출하는 기회가 됐으면한다. 각 정당은 다양한 후보를 발굴해내야한다. 그동안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지역유지 중심의 공천을 해온게 사실이다. 유권자도 평상시 생활정치적 관점에서 (지방)의원들을 평가하다가 막상 선거 되면 정당정치적 요소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으면한다.
정상호 = 생활정치를 가로막고있는 요인은 뭔지, 어떻게 개선되야되는지 말씀해달라.
원혜영 = 정리해보면 의회 기능이 국민 생활상 문제와 밀착하기 위해선 구조자체가 세분화되어야한다. 그래야 심도있고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점검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정치의 중심을 국민에게 돌려줘야한다. 정치권 입장에선 시민적 관점으로 시각 이동하는게 필요하다. 마케팅 용어로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생산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다. 정치인은 화자가 아니라 듣는사람, 리스너(listener)로서의 자세와 훈련이 필요하다.
김성식 = 지역주의적 투표를 부추기는 정당도 문제지만 유권자도 이번 지방선거에선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투표를 보여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정치권은 스스로 내부의 기득권과 관행에 맞서 싸워야한다. 최선 다해서 기성정치를 업그레이드 시켜야한다. 기성정치와 생활정치를 대립시키면 안된다. 기성정치를 죽이면 생활정치가 커지는게 아니다. 기성정치를 개선하면 생활정치 영역을 키울 수 있다. 선순환 모델을 생활정치론 속에서 발전시켜주셨으면 기대한다.
정리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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