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탄생 100주년

‘사람중시경영’ 초일류 삼성 밑거름

지역내일 2010-02-12 (수정 2010-02-12 오전 11:24:22)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21세기 경영화두는 사람이다. 경영과 관련한 다양한 이론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경영의 주체인 사람의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고도 성공한 기업과 기업인은 드물다. 경제가 복잡해지고 세계화 될수록 그 시대에 맞는 인재를 잘 길러내 적재적소에 써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일찍이 1930년대에 사업보국의 뜻을 품고 사람을 중심으로 경영에 헌신, 오늘의 삼성을 키워낸 호암 이병철의 기업가정신을 살핀다.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세간에서 자주 하는데 나에게 그 이상 즐거운 일은 없다”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은 경영의 요체로 항상 사람을 꼽았다. 그는 사람을 잘 뽑아서 잘 키우는 데 혼신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인재경영’을 그룹 경영원칙으로 삼았다. 기업이 영속하려면 사람이 가장 중요함을 누구보다 앞서 간파했던 것이다.
21세기를 맞는 요즘 경영의 화두로 사람의 문제가 더욱 중시되는 것을 보면 호암은 몇 세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인 셈이다.
인재를 중요시한 호암의 족적은 삼성그룹의 역사 곳곳에 남아 있다.
1938년 대구 서문시장 근처의 수동(현 인교동)에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개업한 호암 이병철은 1개월쯤 뒤 일본 와세다대학 시절 친구인 이순근을 지배인으로 앉혔다. 주변에서 신설회사의 경영을 지배인에게 맞기면 안 된다며 반대를 했지만 호암은 특별한 사안을 제외하곤 이순근에게 일임했다. 이순근은 호암의 기대에 부응해 열심히 일했고, 삼성상회가 그 후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됐다.
‘의인물용 용인물의(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유명한 경구가 당시에 생겨났다.
해방 뒤인 1948년 서울에서 삼성물산공사를 세워 생필품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시작한 호암은 큰 성공을 거뒀다. 창립 1년 반 만에 일본의 강압통치 때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거대 무역회사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한국전쟁은 삼성물산공사를 파탄시켰고 호암은 빈털터리가 됐다.
구사일생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대구로 내려간 호암에게 새로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암은 1939년 대구의 조선양조장을 인수했는데,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동안 사실상 방치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회사 직원들이 3억원이라는 거금을 비축했다 사업을 재기하라며 호암에게 건넨 것이다. 호암의 사람 보는 눈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호암의 사람 중심 경영원칙은 제일모직 공장 건설 과정에서도 발휘됐다.
호암은 여성 근로자들이 숙식할 기숙사에 당시로는 최상급의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주변환경을 정비하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아, 부지 전체가 잘 다듬어진 정원으로 보일 정도로 꾸몄다.
호암이 기숙사나 조경에 그토록 마음을 쓴 것은 종업원을 가족처럼 대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면 작업능률도 반드시 향상되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런 호암의 생각이 종업원들에게 전달된 것인지, 제일모직은 착공 1년 반 만에 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 직물 선진국 제품에 못지않게 질 좋은 옷감을 생산했다.
1960년대에 삼성이 교육에 투자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호암의 인재관을 알 수 있다. 삼성은 1964년 자금 부족으로 운영난을 겪고 있던 대구대학을, 이어 1965년 성균관대학을 각각 인수하여 육영사업에 진출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런데 당시 대구대학의 인수금액은 서울에서 웬만한 일류대학 하나를 인수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호암은 “교육·문화의 서울 집중을 막고 지방에도 골고루 대학을 키워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정난과 내분으로 운영난에 빠져있던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한 것도 인재육성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삼성이 1950년대 중반 도입한 사원공채·사원연수 등은 호암의 인재경영 원칙이 기업 제도로 구체화된 사례다. 이제는 일반화된 이 제도는 삼성이 우리나라 기업가운데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당시 극히 이례적이었다. 경제·사회가 아직 성숙되어 있지 못했고 기업 자체가 채 궤도에 오르지 못한 때였다. 그렇지만 호암은 공채를 통해 고급인력을 모았고, 그 결과 삼성은 최고의 재원을 지닌 기업이 됐다.
호암의 인재경영 원칙에 대해 오늘날 세계의 경영석학들이 공감을 피력한다. 잭 웰치 GE 전 회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잭 웰치는 “나는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네 가지가, 책임감과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 그리고 올바른 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호암은 그 네 가지를 고루 갖춘 경영자였다. 특히 인제제일주의에 관해서는 호암에게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2008년 말 일어난 세계 금융위기는 자본(돈) 중심 경영방식이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국 대표기업 삼성도 자본중심의 관점에 경도됐다면 위기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재를 중심으로 하고 자본·토지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기에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삼성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병철 전 회장의 인재중심경영은 100년 전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나왔다.
20세기 초 조선은 개화된 일본에 비해 자본이 적고, 토지가 넓은 중국에 비해 왜소한 현실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시대에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체득한 호암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롭게 성장하는 자본의 중요성을 깨달아 이를 결합해 근대적 경영으로 나아갔으니, 호암의 사업보국 정신이 이렇게 형성됐다.
21세기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삼성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게 됐다. 하지만 호암이 평생을 바쳐 확립하고자 한 ‘인재 제일주의’가 유지되는 한 삼성의 미래는 충분히 기대할 만할 것이다.

호암의 연보
1910년 2월12일 경남 의령 출생
1926년 12월5일 박두을 여사와 혼인
1930년 4월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경과 입학
1936년 3월 마산 협동정미소 창업
1938년 3월 대구서 삼성상회 창업
1948년 11월 삼성물산공사 설립
1953년 8월 제일제당 설립
1963년 2월 동양TV방송 설립
1963년 7월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1965년 9월 중앙일보 창간
1967년 10월 한국비료 헌납
1969년 1월 삼성전자 설립
1974년 8월 삼성중공업 설립
1982년 12월 삼성반도체통신 발족
1985년 5월 256KD램 양산공장 준공
1987년 11월19일 별세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호암의 인재경영 관련 어록
◆모든 것의 시초는 인간이며, 모든 일의 중심은 인재이다. 60년을 넘는 나 자신의 인생체험과 40년에 걸친 기업경영의 직접 체험을 통해 내가 절실하게 통감해온 것은, 모든 일은 그 규모의 대소를 불문하고 결국 사람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1973, 9. 22. 중앙일보 창간 8주년 기념사에서

◆기업은 사람이다. 기업은 문자 그대로 업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기업을 경영한다는 이 소박한 원리를 잊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유포되고 있지만 돈을 버는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1980. 7. 3 전경련 강연에서

◆나는 50여 년간의 경영활동을 통해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으로 인재양성에 남다른 정력을 쏟아왔고 이를 실천해왔다. 삼성의 정장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인재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1985. 4. 22 KBS 방송대담에서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랬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1982. 10. ‘한국인’지 기고
◆사업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압력을 받는 수가 있다. 물건을 달라는 것은 주었으나, 내가 길러온 사람을 달라는 것은 주지 않아왔다. 기업은 바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1982 용인회의에서

◆인재를 키우지 않는 회사는 금전적 손실 이상으로 인재 손실을 가져온다. 우리는 경영을 할 때 재산 손실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인재 손실도 따져야 한다.
-1979. 12. 13. 간담회에서

◆인재들을 적소에 배치해놓고 그들의 장래와 생활안정을 보장한 후에 모든 일을 떠맡겨버리는 것이 바로 경영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즉 성실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더 욕심을 낸다면 급할 때 판단이 빠르고 부하들이 따를 수 있는 덕망까지 갖춘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버리는 것이다.
-1977. 5. ‘사보 삼성’에서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는 너무 인간적인 면에 치우치기 쉽다. 반면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인간적인 관계가 결여되기 쉽다. 규모가 크든 작든 사람은 신뢰받고 있을 때 가장 높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아무리 규모가 큰 회사에서라도 상호신뢰의 인간관계가 뒷받침이 되어 있으면 그 회사는 최대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1976. 6 재계회고(서울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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