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위건부두로 가는 길’

70년전 영국에서 오늘의 한국을 본다

지역내일 2010-02-26
‘된장녀’ 떠올리는 영국 빈민층 삶 그려 … 현대사회 물질주의 문제점 지적

조지오웰 지음/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1만2천원

고전작품의 미덕은 시대를 초월한 울림이다.
수십 혹은 수백 년 전, 심지어는 수천 년 전 쓰여 진 작품들이 현 시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진한 감동과 교훈, 재미를 선사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예지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70여 년 전 영국 사회를 그린 작품 속에서 2010년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고민들을 고스란히 발견한다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1937년 작품인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작품 속에 드러난 1930년대 영국 사회는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과 흡사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실업자와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꾸려가는 영세 자영업자, 무너지는 중산층, 재개발 바람에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빈민들, 갈팡질팡하는 진보세력들에 대한 미덥지 못한 세상의 눈초리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실업수당으로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경마도박을 즐기고, 영화를 구경하고, 통조림을 사 먹는 영국 빈민계층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된장남’과 ‘된장녀’들을 떠올리게 했다. 2500원 짜리 라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는 4000원짜리 고급 원두커피를 마신다거나, 단칸방에 살면서도 자동차를 몰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이 땅의 청춘들과 너무나도 빼닮은 모습 아닌가.
오웰은 영국 북부 탄광지대의 실업문제에 대한 르포를 써 달라는 한 사회주의 단체의 청탁을 받고 이 책을 썼다.
책은 1부 ‘탄광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과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로 크게 나뉜다.
1부는 탄광촌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조명한 르포르타주요, 2부는 사회주의에 대한 따끔한 비판과 애정 어린 제언을 중심으로 이끌어간 자전적 에세이다.
책은 르포르타주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문학적인 감동 뿐 아니라 1930년대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역사자료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책은 1930년대 영국 북부 지역의 탄광촌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 놓는다. 오웰은 자신이 직접 광부들과 함께 좁은 막장으로 기어들어가고, 노동자들의 집에서 여러 달 동안 함께 먹고 자고, 실업수당으로 사는 가정의 가계부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탄진은 목구멍과 콧구멍을 틀어막으며 눈썹에 자욱하게 쌓이며, 그 비좁은 공간 안에 있으면 기관총 소리처럼 시끄러운 컨베이어 벨트의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런데도 필러들은 철로 만든 사람처럼 보이고, 또 그렇게 일을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끈하게 덮여 있는 탄진을 보면, 그들은 정말 철의 인간 같다. (…) 온몸이 시커메진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놀랍도록 힘차고 빠르게 삽을 휘둘러 석탄을 뜬다. ‘휴식’ 시간이란 게 없으니, 그들은 이론상으론 전혀 쉬지 않고 일곱 시간 반을 일한다. (…) 도시락은 대게 비계 바른 빵 한 덩이와 차가운 차 한 병이 전부다.”(34~35쪽)
책의 2부는 젊은 작가 오웰의 자전적 고백과 대담하고 솔직한 정치 견해를 밝히는 장편 에세이다.
오웰은 자신의 모교인 명문 사립학교 이튼의 교육을 통해 다른 계급에 대한 편견을 익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버마에서 5년 동안 식민지 경찰로 복무하면서 ‘사악한 압제의 일원’으로 활동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잉글랜드 북부 탄광지대에서의 체험과 런던 및 파리에서의 부랑자 생활을 통해서는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을 발견했음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2부의 백미는 사회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오웰은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주의를 공격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악마의 대변인’을 자청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애정 어린 질책과 쓴 소리를 쏟아낸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이란 그들이 어울리고 싶어 하는 서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똑똑한 ‘우리’가 하층계급인 ‘그들’에게 부여할 일련의 개혁인 것이다.”(242쪽)
오웰은 지식층 사회주의자들 중 상당수가 마음속으로는 계급적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속물이고, ‘정·반·합’ 등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독선적 이론가들이고, 괴팍스런 기계 숭배자들이라며 직설적인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오웰은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안한다. 수입이 적고 불안정한 모든 사람들은 한 배를 탄 이들이며 한편이 되어 싸워야 한다고 촉구한다.
“아무튼 프롤레타리아는 육체노동자뿐인 듯 대하는 잘못된 습성은 버려야 한다. 사무원, 엔지니어, 출장 판매원, ‘영락한’ 중산층, 마을 식품점 주인, 하급 공무원, 그 밖의 온갖 애매한 사람들에게 바로 그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란 사실을, 그리고 사회주의란 건설인부나 농장인부 만큼이나 그들에게도 바람직한 체제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305쪽)
책은 오웰의 대표작인 ‘1984년’과 ‘동물농장’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지나친 기계화와 물질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자유를 속박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는 내용들로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오웰의 예지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박상주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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