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 - 최진봉 서울 송파어린이도서관장
“도서관은 재미있는 휴식 공간”
지역 공동체 육아·교육 시도 … 전문가 발굴 못해 아쉬움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부터 마루를 뛰어다니는 녀석, 의자에 몸을 묻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하다. 표정은 한결같이 밝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문을 연 송파어린이도서관. 처음 방문한 이라면 ‘여기가 도서관인가’ 싶을 게다. 책장 그득한 책과 자료, 대출을 위해 줄을 선 엄마들을 보니 분명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는 맘껏 뛰세요? =
“도서관은 ‘정숙해야 하는 곳’으로만 인식돼있죠. 아니에요. 아이들에게는 책이나 독서 이전에 재미있는 공간이어야 해요. 그래야 다시 찾을 수 있죠.”
최진봉(48) 관장이 아이들만큼이나 해맑은 미소를 띠운다. 그래서 송파어린이도서관 1층에는 ‘정숙’이라는 문구가 없다. 대신 ‘미끄럼 조심’이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녀석들은 2층이나 3층으로 자리를 옮기면 된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 내부 풍경부터 색다르다. 온돌이 깔린 바닥은 높낮이가 제각각이다. 벽에 기대있게 마련인 책꽂이 뒤에 또다른 공간이 숨어있다. 큰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그곳에는 낮은 책꽂이며 한눈에도 푹신해 보이는 의자, 낮은 책상이 고르게 배치돼있다. 벽으로 막힌 공간인가 싶었더니 좁은 계단에 이어 어른은 몸을 숙이고야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이 나온다.
“설계단계부터 참여해 아이들 눈높이에 맞도록 했어요. 아이들은 비밀 공간을 좋아하죠. 또 책은 의자에 앉아서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냥 맨바닥부터 딱딱한 의자, 창틀처럼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 푹신한 방석에 몸을 파묻을 수 있는 장난감같은 의자를 배치했어요.”
최 관장은 프로그램도 차별화했다. 개관과 함께 선보였던 ‘나무로 만든 곤충나라’ ‘수수깡으로 만든 세상’ ‘야생화 알아보기’ 등 자연생태과정은 기본.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아이들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간다. ‘길따라 자연따라’와 ‘신나는 도서관 버스’가 그것.
“아이들끼리 놀다가도 다툼이 잦아요.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건데요 자연을 접하는 일이 부족해서 생기는 결과입니다.”
그는 자연을 “공부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게” 한다. 경기도 양평에서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흙피리를 구우며 흙의 쓰임새를 배우는 식이다. 도서관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흙에 관한 책이나 피리며 오카리나같은 악기에 관한 책을 읽고 빌려간다. 철학에 흥미를 더한데다 몸으로 느낀 뒤 책과 연결하라는 ‘의도’가 깔린 프로그램이다. 기획부터 전시까지 아이들이 직접 맡거나 도서관에서 날밤을 새며 옛날이야기 듣는 등 그가 준비한 이색 과정들 역시 마찬가지 의도가 담겨있다.
◆“서울의 기적의도서관 지향” =
최진봉 관장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충북 제천에서 ‘기적의 도서관’을 맡아 5년간 운영하면서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내용을 서울이라는 도서관문화 불모지에서 재현하는 과정이다.
“공공도서관이라면 책을 빌리거나 독서실처럼 공부하는 곳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우리 도서관 문화가 없는 건 어른들이 역할을 하지 않아서예요. 도서관은 가르치는 곳이 아니에요. 그건 공교육 영역이고 도서관은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면 돼요.”
도서관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곳. 아이들을 위해 책과 문화 체험 과정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일 뿐이란다. 도서관장과 사서는 지역 주민들이 그 생각에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참여를 이끌어내는 이들이다. 제천에서는 그랬다. 70세가 넘은 노인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원두막과 디딜방아를 만들고 사회봉사차 도서관을 찾았던 이들까지 후원금을 보내고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해줬다. 모든 시민들은 자원봉사자였고 도서관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던 공간이었다.
도서관 설계부터 프로그램 운영, 행정까지 척척 해내는 그이지만 사실 ‘도서관 전문가’가 된 건 근자의 일이다.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에서 그에게 제천 기적의도서관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할 때 그는 12년간 대학에서 민속강의를 하던 학자였다.
“아이 손을 잡고 공공도서관을 다닐 때 느꼈던 불만을 해소하자는 제안이었어요. 맡을 가치가 있겠다 싶었죠.”
그가 연구하고 가르쳐온 세월마저 도서관과 아이들을 위한 과정이었구나 싶었다. 구비문학과 신화 민속학을 전공한데다 미술이며 음악 동식물에 대한 관심이 컸다. 손재주가 있어 이런저런 만들기에 능했고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1년간 한글을 가르치며 ‘쉬운 말로 전달하기’도 익숙해졌다.
“송파어린이도서관을 서울의 기적의도서관처럼 운영하고 싶어요. 서울 전역에서 역할모범으로 삼을 만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에요.”
지난 한해동안 서울 자치구부터 멀리 제주도에서까지 70여개 도서관에서 송파어린이도서관을 다녀갔다. 그는 도서관 외관이나 내장부터 아이들 흥미를 끌만한 과정, 도서관 운영방식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전했다. 그의 ‘욕심’을 반은 이루어진 듯하다.
◆“아이들을 보내주세요” =
대도시 주민들이 마음을 더 여는 과정이 남았다. 최진봉 관장은 “이달부터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부모교육을 시작하는데 적절한 강사진을 완벽하게 구축하지 못했다”며 “전문성보다 마음이 앞서는 전문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모들 역시 마음은 2% 부족하단다.
“아직 나눠주는 기쁨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좋은 프로그램을 소수만 독점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이거든요.”
최 관장은 무엇보다 “아이들을 도서관에 보내달라”고 부모들에게 당부했다. 송파어린이도서관만 해도 월 이용자가 2000명이 넘는데 그 중 80%는 엄마들이다.
“대출은 책 대여점처럼, 프로그램은 학원처럼 운영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도서관에 친근해져야 해요.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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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재미있는 휴식 공간”
지역 공동체 육아·교육 시도 … 전문가 발굴 못해 아쉬움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부터 마루를 뛰어다니는 녀석, 의자에 몸을 묻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하다. 표정은 한결같이 밝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문을 연 송파어린이도서관. 처음 방문한 이라면 ‘여기가 도서관인가’ 싶을 게다. 책장 그득한 책과 자료, 대출을 위해 줄을 선 엄마들을 보니 분명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는 맘껏 뛰세요? =
“도서관은 ‘정숙해야 하는 곳’으로만 인식돼있죠. 아니에요. 아이들에게는 책이나 독서 이전에 재미있는 공간이어야 해요. 그래야 다시 찾을 수 있죠.”
최진봉(48) 관장이 아이들만큼이나 해맑은 미소를 띠운다. 그래서 송파어린이도서관 1층에는 ‘정숙’이라는 문구가 없다. 대신 ‘미끄럼 조심’이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녀석들은 2층이나 3층으로 자리를 옮기면 된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 내부 풍경부터 색다르다. 온돌이 깔린 바닥은 높낮이가 제각각이다. 벽에 기대있게 마련인 책꽂이 뒤에 또다른 공간이 숨어있다. 큰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그곳에는 낮은 책꽂이며 한눈에도 푹신해 보이는 의자, 낮은 책상이 고르게 배치돼있다. 벽으로 막힌 공간인가 싶었더니 좁은 계단에 이어 어른은 몸을 숙이고야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이 나온다.
“설계단계부터 참여해 아이들 눈높이에 맞도록 했어요. 아이들은 비밀 공간을 좋아하죠. 또 책은 의자에 앉아서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냥 맨바닥부터 딱딱한 의자, 창틀처럼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 푹신한 방석에 몸을 파묻을 수 있는 장난감같은 의자를 배치했어요.”
최 관장은 프로그램도 차별화했다. 개관과 함께 선보였던 ‘나무로 만든 곤충나라’ ‘수수깡으로 만든 세상’ ‘야생화 알아보기’ 등 자연생태과정은 기본.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아이들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간다. ‘길따라 자연따라’와 ‘신나는 도서관 버스’가 그것.
“아이들끼리 놀다가도 다툼이 잦아요.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건데요 자연을 접하는 일이 부족해서 생기는 결과입니다.”
그는 자연을 “공부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게” 한다. 경기도 양평에서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흙피리를 구우며 흙의 쓰임새를 배우는 식이다. 도서관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흙에 관한 책이나 피리며 오카리나같은 악기에 관한 책을 읽고 빌려간다. 철학에 흥미를 더한데다 몸으로 느낀 뒤 책과 연결하라는 ‘의도’가 깔린 프로그램이다. 기획부터 전시까지 아이들이 직접 맡거나 도서관에서 날밤을 새며 옛날이야기 듣는 등 그가 준비한 이색 과정들 역시 마찬가지 의도가 담겨있다.
◆“서울의 기적의도서관 지향” =
최진봉 관장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충북 제천에서 ‘기적의 도서관’을 맡아 5년간 운영하면서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내용을 서울이라는 도서관문화 불모지에서 재현하는 과정이다.
“공공도서관이라면 책을 빌리거나 독서실처럼 공부하는 곳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우리 도서관 문화가 없는 건 어른들이 역할을 하지 않아서예요. 도서관은 가르치는 곳이 아니에요. 그건 공교육 영역이고 도서관은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면 돼요.”
도서관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곳. 아이들을 위해 책과 문화 체험 과정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일 뿐이란다. 도서관장과 사서는 지역 주민들이 그 생각에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참여를 이끌어내는 이들이다. 제천에서는 그랬다. 70세가 넘은 노인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원두막과 디딜방아를 만들고 사회봉사차 도서관을 찾았던 이들까지 후원금을 보내고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해줬다. 모든 시민들은 자원봉사자였고 도서관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던 공간이었다.
도서관 설계부터 프로그램 운영, 행정까지 척척 해내는 그이지만 사실 ‘도서관 전문가’가 된 건 근자의 일이다.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에서 그에게 제천 기적의도서관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할 때 그는 12년간 대학에서 민속강의를 하던 학자였다.
“아이 손을 잡고 공공도서관을 다닐 때 느꼈던 불만을 해소하자는 제안이었어요. 맡을 가치가 있겠다 싶었죠.”
그가 연구하고 가르쳐온 세월마저 도서관과 아이들을 위한 과정이었구나 싶었다. 구비문학과 신화 민속학을 전공한데다 미술이며 음악 동식물에 대한 관심이 컸다. 손재주가 있어 이런저런 만들기에 능했고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1년간 한글을 가르치며 ‘쉬운 말로 전달하기’도 익숙해졌다.
“송파어린이도서관을 서울의 기적의도서관처럼 운영하고 싶어요. 서울 전역에서 역할모범으로 삼을 만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에요.”
지난 한해동안 서울 자치구부터 멀리 제주도에서까지 70여개 도서관에서 송파어린이도서관을 다녀갔다. 그는 도서관 외관이나 내장부터 아이들 흥미를 끌만한 과정, 도서관 운영방식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전했다. 그의 ‘욕심’을 반은 이루어진 듯하다.
◆“아이들을 보내주세요” =
대도시 주민들이 마음을 더 여는 과정이 남았다. 최진봉 관장은 “이달부터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부모교육을 시작하는데 적절한 강사진을 완벽하게 구축하지 못했다”며 “전문성보다 마음이 앞서는 전문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모들 역시 마음은 2% 부족하단다.
“아직 나눠주는 기쁨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좋은 프로그램을 소수만 독점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이거든요.”
최 관장은 무엇보다 “아이들을 도서관에 보내달라”고 부모들에게 당부했다. 송파어린이도서관만 해도 월 이용자가 2000명이 넘는데 그 중 80%는 엄마들이다.
“대출은 책 대여점처럼, 프로그램은 학원처럼 운영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도서관에 친근해져야 해요.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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