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실효성 잃은 저금리정책(김기수 2001.08.03)
김기수 금융팀장
한국경제가 일본처럼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초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기업 설비투자나 가계소비는 좀처럼 늘지 않고, 통화당국이 돈을 풀어도 금융권에서 맴돌아 금융과 실물간 괴리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4%대로 떨어지고 기업 대출금리는 7%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은행의 총예금은 올 들어 20조원이 증가, 404조7000억원대에 이르렀다.
금리인하가 주가, 투자, 소비를 활성화시킨다는 일반적인 경제이론이 먹혀들지 않고, 설비투자는 1분기 6.2%, 2분기 4.7% 감소했고 소비(도소매판매) 증가율도 2분기엔 4.3%로 급감했다.
금리생활자 울고 신용불량자 급증 등 부작용
전체 인구 중 64세 이상 노년층 비중(2000년 기준 17.3%)이 높아 저금리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고, 가계부채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개인파산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비성향은 1990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저축요인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퇴직자와 40~50대, 노년층 등 이자소득 생활자는 금리가 떨어지면서 재산 소득이 감소, 소비 또한 줄이고 있다.
이처럼 금리인하가 실물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기는커녕 역효과를 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큰 원인은 ‘통화정책의 전달경로’가 크게 왜곡된 데 있다.
구조조정이 원활히 마무리되지 않으면 재정지출을 아무리 늘려도 그 효과는 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만 미칠 뿐이다. 경쟁력 제고나 경제활성화에 저금리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 구조조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신용위험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저금리정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최근 금융가에서는 일본의 장기불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불안의 원인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 위기는 부동산가격 하락, 부실채권 발생, 주가 하락, 금융기관 경영 파탄, 기업도산으로 이어지는 ‘자산디플레이션 주도형’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은 기업의 과다차입, 수익성 악화, 무역수지 적자확대, 기업도산, 부실채권 발생, 금융기관 경영파탄으로 연결되는 ‘기업도산 주도형’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원자재 수입 의존적 수출구조를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내수시장이 발달한 일본과 달리 외부 충격에 민감하고 장기불황에 대한 저항능력이 일본보다 훨씬 떨어진다. 또 기초체력이 약해 장기불황을 견뎌내기 힘들다.
반면 일본은 외환보유고가 약 3600억달러로 세계 1위이고 채권국인데다가 대규모 금융자산, 산업분야 국제경쟁력 등을 바탕으로 10년 이상의 장기불황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돼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금리인하가 주가, 투자,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약’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구조조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함정’에 빠진 경제 구출위한 구조조정을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업부실을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일본은 10년 간 90조엔의 부실채권을 털어 냈고, 이 과정에서 16개 은행이 파산했다. 그러나 주가 및 신용등급 하락을 우려한 은행들의 부실노출 기피와 정부의 미온적 공적자금 투입으로 64조엔의 부실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은행부실심화, 대출경색, 기업도산, 시장불신심화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 상반기까지 159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으로 98년 3월 118조원이었던 부실채권이 작년 말 64조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MH현대로 대표되는 부실은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 있다.
경기대응에서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된다. 폴 크루그먼 MIT대 교수는 일본정부의 경기대응 실기(失機)가 일본경제의 위기를 부추겼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한 가지에 너무 매달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을 경제에서는 ‘함정’(Trap)이라 부른다. 지금 한국경제는 인적자원은 물론 자본도, 기술도, 금융도 모두 ‘함정’에 빠져 매몰돼 있는 형국이다. 이 함정에서 조속히 빠져나와야 한국경제가 살아난다. 이를 위해서는 개구리가 우물을 뛰어오르듯 혼신의 힘을 다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수밖에 없다.
김기수 금융팀장
내일시론>
김기수 금융팀장
한국경제가 일본처럼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초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기업 설비투자나 가계소비는 좀처럼 늘지 않고, 통화당국이 돈을 풀어도 금융권에서 맴돌아 금융과 실물간 괴리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4%대로 떨어지고 기업 대출금리는 7%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은행의 총예금은 올 들어 20조원이 증가, 404조7000억원대에 이르렀다.
금리인하가 주가, 투자, 소비를 활성화시킨다는 일반적인 경제이론이 먹혀들지 않고, 설비투자는 1분기 6.2%, 2분기 4.7% 감소했고 소비(도소매판매) 증가율도 2분기엔 4.3%로 급감했다.
금리생활자 울고 신용불량자 급증 등 부작용
전체 인구 중 64세 이상 노년층 비중(2000년 기준 17.3%)이 높아 저금리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고, 가계부채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개인파산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비성향은 1990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저축요인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퇴직자와 40~50대, 노년층 등 이자소득 생활자는 금리가 떨어지면서 재산 소득이 감소, 소비 또한 줄이고 있다.
이처럼 금리인하가 실물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기는커녕 역효과를 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큰 원인은 ‘통화정책의 전달경로’가 크게 왜곡된 데 있다.
구조조정이 원활히 마무리되지 않으면 재정지출을 아무리 늘려도 그 효과는 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만 미칠 뿐이다. 경쟁력 제고나 경제활성화에 저금리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 구조조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신용위험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저금리정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최근 금융가에서는 일본의 장기불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불안의 원인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 위기는 부동산가격 하락, 부실채권 발생, 주가 하락, 금융기관 경영 파탄, 기업도산으로 이어지는 ‘자산디플레이션 주도형’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은 기업의 과다차입, 수익성 악화, 무역수지 적자확대, 기업도산, 부실채권 발생, 금융기관 경영파탄으로 연결되는 ‘기업도산 주도형’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원자재 수입 의존적 수출구조를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내수시장이 발달한 일본과 달리 외부 충격에 민감하고 장기불황에 대한 저항능력이 일본보다 훨씬 떨어진다. 또 기초체력이 약해 장기불황을 견뎌내기 힘들다.
반면 일본은 외환보유고가 약 3600억달러로 세계 1위이고 채권국인데다가 대규모 금융자산, 산업분야 국제경쟁력 등을 바탕으로 10년 이상의 장기불황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돼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금리인하가 주가, 투자,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약’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구조조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함정’에 빠진 경제 구출위한 구조조정을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업부실을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일본은 10년 간 90조엔의 부실채권을 털어 냈고, 이 과정에서 16개 은행이 파산했다. 그러나 주가 및 신용등급 하락을 우려한 은행들의 부실노출 기피와 정부의 미온적 공적자금 투입으로 64조엔의 부실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은행부실심화, 대출경색, 기업도산, 시장불신심화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 상반기까지 159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으로 98년 3월 118조원이었던 부실채권이 작년 말 64조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MH현대로 대표되는 부실은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 있다.
경기대응에서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된다. 폴 크루그먼 MIT대 교수는 일본정부의 경기대응 실기(失機)가 일본경제의 위기를 부추겼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한 가지에 너무 매달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을 경제에서는 ‘함정’(Trap)이라 부른다. 지금 한국경제는 인적자원은 물론 자본도, 기술도, 금융도 모두 ‘함정’에 빠져 매몰돼 있는 형국이다. 이 함정에서 조속히 빠져나와야 한국경제가 살아난다. 이를 위해서는 개구리가 우물을 뛰어오르듯 혼신의 힘을 다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수밖에 없다.
김기수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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