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권위 없는 행정의 해악(김국주 2001.08.09)

<신문로 칼럼>

지역내일 2001-08-18
<신문로 칼럼="">권위 없는 행정의 해악(김국주 2001.08.09)
김국주 몬덱스캐피탈(주) 부사장


내가 사는 동네의 길거리 군데군데 아스팔트 위에 흰색 페인트로 그려 놓은 정지 표시는 참으로 가관이다. 도로변 아파트 출입구마다 약 15미터 간격으로 그렇게 그려놓았는데 지나는 차량마다 무시하기 일쑤다. 따로 분명한 신호등을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길바닥에 큰 글씨로 씌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시해도 그만인 교통표지, 그러나 왜 위반했느냐고 추궁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도 한남대교를 건너면서 아스팔트 위에 60 이라고 또렷이 쓰여진 속도제한 표시를 읽었다. 내 차의 속도계는 80km를 넘나들고 있다. 주위의 차들도 나와 비슷한 속도로 유유하게 다리 위를 운전하며 달리고 있었다. 국내 도처에서 경험되고 있는 이런 상황은 도로 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사회생활, 경제활동 구석구석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삶을 이어 가며 지내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두고 시비를 가리는데 어느 한편을 들자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위반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쉽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관행적으로 허용되어 왔던 일들, 그러한 법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관련 법규들, 심지어 감독 당국도 알면서 묵인했던 것들이 때로는 소위 집중단속 기간이라는 이유로, 또는 집행하는 자의 자의에 따라 되살아나고 소박한 시민들에게 문제가 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 체계를 운영하는 측의 애교 섞인 하소연이 고소를 자아내는 경우도 있다. 신호등 바로 밑에 번듯이 걸어 놓은 신호위반 금지라는 표지판을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하나. 신호위반이라는 행위가 다른 곳에서는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이 구간에서만큼은 금지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인가. 참으로 해괴망칙한 표지판이 아닐 수 없다.

평소 방관하다가 칼 들이대면 당한다
남산 어귀의 힐튼호텔 앞 3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팻말이 도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신호체계 개선 중이니 사진촬영 고발을 금지합니다 - 000경찰서장. 무언가 문제가 있기는 한가 보다. 그런데 시민이 고발하면 안 되는 그런 신호체계를 왜 한시라도 켜 놓아야 하는 건지. 애써 해석하자면, 신호체계에 문제가 있어 꼭 그대로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내가 인정하는 바이니 눈치 없이 사진촬영 고발을 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법에 문제가 있으니 안 지켜도 좋다는 엄청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과외금지가 일반적 상식이었다. 그것이 작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정을 받은 이후 고액과외는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는 고액과외 신고제로 바뀌었다. 엊그제가 신고 마감일이었는데 신고 건수가 실제 추정되는 신고 대상 건수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제도의 취지가 철저히 무시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 사회의 준법의식을 가늠하는 하나의 보기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는가 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엄포용 법규, 면피용 단속에도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 시각일 것이다. 과외 신고제로 인하여 또 한번 다수의 불량 시민, 몰염치한 법규 위반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의 법행정 당국은, 지키면 좋지만 안 지켜도 좋은 법, 지키고 있는지 감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법, 그리고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 누구든 갖은 수를 써서 피하려고 하는 법규들을 고집하는 것인가.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법으로부터의 일탈을 평상시에는 방관하고 있다가 때때로 느닷없이 ‘집중단속’이라는 칼을 들이대는 것은 또한 무슨 수작인가.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이러한 법규, 나아가 기껏해야 우리의 국민성을 자조적으로 조롱하게 만드는 이러한 법행정의 진정한 문제점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작년 한 해 기업구조조정 제1의 화두였던 부채비율 200 퍼센트, 어느 기업에게는 이를 맞추느라 헐값에 재산을 처분하게 하였는가 하면 한편에선 계열사간 상호 출자라는 편법을 동원하게도 만들었던 그 게임의 법칙이 조만간 완화되리라고 한다.

제대로 된 법, 뭉갠다고 피해지지 않는다
영리하기로는 누구보다도 앞섰던 대우그룹의 김우중 씨도 정부의 구조조정압박을 조금만 더 버티면 완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벼이 보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계산이 아니었던들 대우 뿐 아니라 온 나라의 국부(國富)에 크나큰 손실을 가져올 강제 매각의 길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위가 없는 법행정의 해악은 바로 이러한 데에 있다. 제대로 된 법은 엄격하고 단호하며, 눈치 보며 뭉갠다고 피해지지 않고 이익도 돌아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법은 결코 다수의 국민이 죄인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이전에 단속을 하여 범죄인의 수를 최소화하던가, 그것이 안 될 듯 싶으면 조속히 법을 개정하던가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계속 내버려두는 것은 분명한 사회적 배임이며 그 해악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이 엄청나다. 아직 우리는 경제를 살리기 이전에 살려야 할 것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다. 법치는 경제뿐만 아니라 인간공동체의 약속이며 중요한 규범이다.
김국주 몬덱스캐피탈(주)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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