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원도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2전대장

지역내일 2010-04-09
"내 어릴적 텃밭같은 독도를 누가 감히 자기네 땅이라고?"
독도에 민간인 10여가구 이상 상주시켜 독도 영토분쟁 끝내야

"독도는 울릉주민들에게 자식같은 섬이고 생계를 해결한 텃밭 같은 곳이며 길잡이 등대입니다. 57년전 울릉도의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내온 우리 땅이지요"
25세의 젊은 나이에 독도의용수비대의 대원으로 활동한 올해 82세의 정원도(사진 ․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 3리)옹은 최근 몹시 기분이 상해 있다.
"일본이 또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교과서에 수록해 후세들에게 쇠뇌 교육을 시킬 속셈이겠죠. 하지만 57년전 민간인으로 독도에 거주하며 독도를 지켜낸 사람들이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분하고 속상합니다"
정원도 옹의 명함에는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2전대장''이라는 당시 직함을 그대로 새겨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독도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정옹은 "독도 인근 해역에는 각종 어자원이 풍부해 울릉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일주일에서 보름정도 머물러 각종 해산물을 채취한 텃밭이었으며 어선들의 휴식처요 뱃길을 안내한 등대역할을 했다"며 "특히 요즘 같은 봄철에는 미역이 많이 나와 미역채취가 한창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독도해역에는 당시 울릉주민뿐만 아니라 삼척과 울진 등 육지의 어선들도 많이 나와 일주일 정도 머물며 배 한 가득 고기를 잡아 갈 정도로 어자원이 풍족했다"고 말했다.
◆6.25 전쟁때 부상입은 몸으로 독도경비 나서
정옹은 1953년도에 독도의용수비대에 참여했다. 1948년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해 총상을 입고 제대한 후 고향인 울릉도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독도 인근 해역으로 조업을 나갔던 어민들이 일본 어선과 실습선 등이 독도에 내려 ''다케시마(竹島)''라는 푯말을 독도에 꽂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독도의용수비대 결성에 앞장섰다.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을 비롯 서기종씨 등을 포함 9명이 모여 4톤짜리 동력선을 타고 독도로 무작정 향했다. 울릉도 도동항(현 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해서 8시간 정도 파도와 싸워야 도착했다.
처음엔 물골이 있는 서도와 동도를 순찰하고 돌아온 후 동도에 막사를 지어 본격적인 독도경비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다.
독도의용수비대 9명의 동지들은 막사를 지을 목재 등을 싣고 독도의 동도로 다시 들어갔다. 그후 33명으로 대원들이 늘어나 절반씩 한달에 한번 교대근무를 했다.
정옹은 "현재 동도 전경부대 막사 옆에 움푹 파인 곳에 막사를 지었으며 소총과 기관총, 박격포 등으로 무장해 독도사수에 나섰다"고 말했다. 된장과 소금만 들고 들어가 우럭과 미역을 채취해 식사를 해결했다고 한다. 교대근무를 위해 독도에서 나오다 뱃길을 잃어 72시간 망당대해에 표류한 적도 있다.
1953년 6월엔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이 독도에 접안하려고 하자 전마선(노를 젓는 소형목선)을 타고 직접 일본 실습선에 올라가 독도에서 물러날 것을 경고하고 돌려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의용수비대원 8명이 일본 순시선 격퇴하기도
특히 1954년엔 동도 바위에 ''한국령(韓國領)''을 새기로 일본의 해안보안청 순시선과 교전도 벌였다.
"8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일본 경비정이 나타나 81mm박격포와 M1 소총, 경기관총 등을 발포해 일본군이 부상을 입기도 했었죠. 그후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정옹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무장을 하고 독도로 들어갈 때 울릉주민들은 ''미친 사람들이다'' 고 놀려대기도 했다"며 "대원들은 당시 갓 군대를 제대한 열혈청년들로 영토를 사수해야한다는 애국심이 불타올라 목숨 같은 건 계산(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독도에 민간인 살게해야 영토분쟁 종지부 찍어"
그후 우리정부는 일본의 항의를 받고 1956년 12월말에 독도에서 철수하고 정식 경찰이 주둔하게 됐다. 독도수비대원중 8명은 정식경찰로 발령나 20여년 이상 울릉도와 독도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정옹은 1년2개월 정도 경찰로 재직하다 사직하고 노동일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었다.
정옹은 "57년전 무인도인 독도를 의용수비대가 지켜냈듯 앞으로는 실제 주민들이 살게 하고 관광객들이 하루밤이라도 잘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100년, 200년 독도를 우리땅으로 온전히 지켜내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의용수비대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영토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괭이갈매기보호보다 국토사수가 우선이며 민간인이 실제 거주해야 앞으로도 시비거리를 없애고 실효적 지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옹은 "동도의 자갈지역 해안과 서도 일부지역에는 현대 건축기술로 10여가구이상 거주할 수 있는 집은 얼마든 지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울릉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사진설명
57년전 민간인 신분으로 독도사수에 나선 정원도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2전대장이 저동항 방파제에서 독도 방향을 가리키며 독도의용수비대 활동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최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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