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십자로에 숨겨진 비경
돈황문서 발견 후 110년 ... 세계사를 다시 본다
나가사와 카즈토시 지음. 민병훈 옮김
사계절. 2만5천원.
사진 1. 돈황지역 막고굴 외관. 막고굴 북측에서 남측을 바라본 모습.
사진 2. 돈황주민 생활도. 오대. 막고굴 제61굴 남벽. 미륵경변 중 부분.
세기의 대발견으로 불리는 돈황문서가 세상에 파문을 일으킨 지 1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관문이자 중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역인 돈황은 여러 문명의 해후와 다양한 민족의 활약상이 중복된 지역이다. 그리고 동양사 미술사 종교사 철학 문학 언어학 민족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돈황문서가 끼친 영향을 지대했다.
그렇다면 ‘돈황문서’는 어떤 기록이기에 현대사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할까.
중국 청조 말기 광서 26년(1900년), 돈황 막고굴에 거주하고 있던 도사 왕원록은 우연한 기회에 한 석굴에 감춰진 대량의 고문서와 미술품을 발견하게 된다. 약 5만 점에 이르는 이들 고문서와 불화 등은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부터 북송시대 사이의 것으로, 막대한 수량은 물론 그 문화적 가치로도 세기의 대발견이라고 칭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던 청조에게 돈황 지역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 여력이 미치기 힘든 변경의 작은 오아시스 도시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파미르 서측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서역지방 즉 신강 지역은 당시 국제정세하에서 일종의 지리적 공백지대가 됐기 때문에 러시아와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은 서로 앞다투어 탐험대라는 이름의 군사밀정을 파견해 이 지역에 대한 정세 파악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발견된 돈황의 고문서군과 미술품은 소문을 듣고 쇄도한 각국 탐험대의 수중에 넘어가는 비운을 겪게 된다.
하서의 끝에서
중국의 옛 수도 서안에서 위수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난주에 이르고, 다시 여기에서 황하를 넘으면 앞길이 점차 황량해진다. 그곳은 아직 중국의 영내이지만 주변의 경치는 점점 내륙아시아다워지며, 길을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한족 같지 않은 낯선 용도가 눈에 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황하를 그냥 ‘하(河)’라고 불렀다. 따라서 황하의 서쪽에 해당하는 이 지방은 광범위하게 ‘하서’로 불려왔다. 오늘날 감숙성의 대부분에 해당한다.
돈황은 문명의 십자로이자 실크로드의 요충에 있다. 돈황은 이란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 인도 문화가 실크로드의 간선인 서역북도와 서역남도를 거쳐 중국에 유입되는 관문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동부 천산산맥 북측의 유목 세력 그리고 곤륜산맥 남측의 티베트 세력이 서역으로 진출해 각축을 벌이던 접점 지역이다.
이곳은 이미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이다. 북경에서는 직선거리로 2000킬로미터가 되지만, 북경와 파미르 북부 페르가나 사이의 거의 중앙에 있다. 실크로드의 한 예로서 북경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잇는 선을 생각해 보면, 돈황은 정확히 북경으로부터 전체 행로의 3분의 1, 테헤란으로부터 3분의 2 위치에 있다.
돈황문서 반출 일본의 ‘돈황학’
일본은 돈황이라는 지역에 주목한다. 돈황문서가 발견된 후 1907년 영국의 스타인, 1908년 프랑스의 펠리오, 이어서 일본 오타니 탐험대의 요시카와 등이 이곳을 방문해 대량의 고문서와 불화, 소조상 등을 가져간다. 그리고 이들 탐험대에 의해 돈황 막고굴의 벽화와 소상 등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가 출간됨에 따라 이를 계기로 돈황문서와 돈황유품을 대상으로 한 역사학, 미술사학, 고고학, 문학, 불교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돈황학’이 대두하게 된다.
일본은 돈황문서를 소장한 국가로 돈황연구에 투자했다.
‘돈황의 역사와 문화’ 저자 나가사와 교수도 돈황에 대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낸 학자다. 돈황문서를 비롯한 관련 사료에 대한 치밀한 재검토 작업을 병행해 기존 연구 성과들에 대한 문제점을 밝히고 분석해왔다. 지금 돈황학에 대한 열기는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를 낳고 일반 독자들을 위한 개설서와 입문서 등도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이 책처럼 통사로서의 돈황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서술한 개설서는 흔치 않다.
중앙아시아 역사와 유물 전문가인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이 옮긴 이 책은 독자들이 돈황학이나 중앙아시아학을 이해하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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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문서 발견 후 110년 ... 세계사를 다시 본다
나가사와 카즈토시 지음. 민병훈 옮김
사계절. 2만5천원.
사진 1. 돈황지역 막고굴 외관. 막고굴 북측에서 남측을 바라본 모습.
사진 2. 돈황주민 생활도. 오대. 막고굴 제61굴 남벽. 미륵경변 중 부분.
세기의 대발견으로 불리는 돈황문서가 세상에 파문을 일으킨 지 1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관문이자 중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역인 돈황은 여러 문명의 해후와 다양한 민족의 활약상이 중복된 지역이다. 그리고 동양사 미술사 종교사 철학 문학 언어학 민족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돈황문서가 끼친 영향을 지대했다.
그렇다면 ‘돈황문서’는 어떤 기록이기에 현대사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할까.
중국 청조 말기 광서 26년(1900년), 돈황 막고굴에 거주하고 있던 도사 왕원록은 우연한 기회에 한 석굴에 감춰진 대량의 고문서와 미술품을 발견하게 된다. 약 5만 점에 이르는 이들 고문서와 불화 등은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부터 북송시대 사이의 것으로, 막대한 수량은 물론 그 문화적 가치로도 세기의 대발견이라고 칭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던 청조에게 돈황 지역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 여력이 미치기 힘든 변경의 작은 오아시스 도시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파미르 서측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서역지방 즉 신강 지역은 당시 국제정세하에서 일종의 지리적 공백지대가 됐기 때문에 러시아와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은 서로 앞다투어 탐험대라는 이름의 군사밀정을 파견해 이 지역에 대한 정세 파악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발견된 돈황의 고문서군과 미술품은 소문을 듣고 쇄도한 각국 탐험대의 수중에 넘어가는 비운을 겪게 된다.
하서의 끝에서
중국의 옛 수도 서안에서 위수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난주에 이르고, 다시 여기에서 황하를 넘으면 앞길이 점차 황량해진다. 그곳은 아직 중국의 영내이지만 주변의 경치는 점점 내륙아시아다워지며, 길을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한족 같지 않은 낯선 용도가 눈에 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황하를 그냥 ‘하(河)’라고 불렀다. 따라서 황하의 서쪽에 해당하는 이 지방은 광범위하게 ‘하서’로 불려왔다. 오늘날 감숙성의 대부분에 해당한다.
돈황은 문명의 십자로이자 실크로드의 요충에 있다. 돈황은 이란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 인도 문화가 실크로드의 간선인 서역북도와 서역남도를 거쳐 중국에 유입되는 관문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동부 천산산맥 북측의 유목 세력 그리고 곤륜산맥 남측의 티베트 세력이 서역으로 진출해 각축을 벌이던 접점 지역이다.
이곳은 이미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이다. 북경에서는 직선거리로 2000킬로미터가 되지만, 북경와 파미르 북부 페르가나 사이의 거의 중앙에 있다. 실크로드의 한 예로서 북경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잇는 선을 생각해 보면, 돈황은 정확히 북경으로부터 전체 행로의 3분의 1, 테헤란으로부터 3분의 2 위치에 있다.
돈황문서 반출 일본의 ‘돈황학’
일본은 돈황이라는 지역에 주목한다. 돈황문서가 발견된 후 1907년 영국의 스타인, 1908년 프랑스의 펠리오, 이어서 일본 오타니 탐험대의 요시카와 등이 이곳을 방문해 대량의 고문서와 불화, 소조상 등을 가져간다. 그리고 이들 탐험대에 의해 돈황 막고굴의 벽화와 소상 등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가 출간됨에 따라 이를 계기로 돈황문서와 돈황유품을 대상으로 한 역사학, 미술사학, 고고학, 문학, 불교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돈황학’이 대두하게 된다.
일본은 돈황문서를 소장한 국가로 돈황연구에 투자했다.
‘돈황의 역사와 문화’ 저자 나가사와 교수도 돈황에 대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낸 학자다. 돈황문서를 비롯한 관련 사료에 대한 치밀한 재검토 작업을 병행해 기존 연구 성과들에 대한 문제점을 밝히고 분석해왔다. 지금 돈황학에 대한 열기는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를 낳고 일반 독자들을 위한 개설서와 입문서 등도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이 책처럼 통사로서의 돈황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서술한 개설서는 흔치 않다.
중앙아시아 역사와 유물 전문가인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이 옮긴 이 책은 독자들이 돈황학이나 중앙아시아학을 이해하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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