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획을 그은 위대한 정신은 이를 이해한 계승자들에 의해 시대 자체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20세기에 이러한 정신이 주로 철학사상 문학예술 그리고 자연과학 분야에서 발현되었다면, 21세기와 더불어 사회 발전의 한 축으로 부상한 기업들이 시대정신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문명의 발전과 억압기제의 증가
1900년 1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나의 서평이 나왔다. 문제의 책은 “인간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놓게 될 책”으로 알려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신경병증 치료를 위한 하나의 분석방법론을 다룬 것이지만 후일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식, 즉 무의식의 존재를 밝힌 것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됐다.
지금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 억압된 자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이 이 책에서 비롯되며 20세기를 풍미한 숱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사조들이 프로이트 사상에서 단초를 얻은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문명의 발전과 함께 정신적 억압기제 또한 증가한다는 프로이트의 진단은 선구자적 예견에 비견된다.
프로이트 사상이 인류 지성사에 획을 긋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팽배한 반유대주의 분위기 속에 ‘꿈의 해석’은 학계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고, 그 뒤 8년만에 국제정신분석학회가 결성됐지만 얼마 안 가 내부 분열이 생겼다.
가장 큰 반론은 1912년 칼 융이 제기한 것인데, 융은 “리비도는 성적 본능”이라는 프로이트의 핵심 명제를 거부했다. 심지어 융은 ‘집단무의식’이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1913년 결별한 뒤 각자 자신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정신분석학의 발전은 인간 정신의 내면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이해를 끝까지 추구한 프로이트와, 그의 주장을 둘러싸고 당대 거장들 사이에 전개된 치열한 논쟁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파편화된 개인, 동질적인 인류
프란츠 카프카는 몇 안 되는 작품들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근대사회의 근원적인 불투명성을 파헤쳤다.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그이지만 “인간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그처럼 탁월하게 표현한 작가는 흔치 않다. 그의 대표작들, 즉 생전에 출판된 ‘변신’, 사후에 출판된 ‘심판’과 ‘성’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이것이다.
피터 왓슨은 미완성에 가까운 카프카의 세 작품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카프카가 현대인이 직면한 공포와 불안을 비범한 통찰로 포착했음을 의미한다.
카프카의 글들은 근대 세계에서 어떤 개인이라도 자아의 상실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 동시에, 당대 사회가 그 불안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 예언서가 됐다. 1924년 그가 죽은 뒤 유럽은 스탈린과 히틀러라는 두 독재자를 맞았고 이어 전쟁이 대륙을 휩쓸었다. 카프카는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정신적 방황을 탐구한 지적 노력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카프카가 파편화된 개인이 숙명적으로 겪는 정체성 위기를 드러냈다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어떤 개인이건 동등한 인격체임을 증명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카프카와 달리 한 세기를 온전히 살다 간 그는 신화와 부족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천착을 통해 이 일을 수행했으며 그로써 현대 인류학을 집대성하기에 이른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지구상의 모든 신화는 예외 없이 인류가 초기에 세계를 이해한 방식을 보여주며, 인간 정신의 근본적이며 무의식적인 구조를 유사한 형태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원시적 상태의 종족과 문명화된 사람들 사이에 본질적인 정신적 차이는 없다.
야만 상태의 인간은 있어도 야만인은 없으며 미개한 상태의 인간은 있어도 미개인은 없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레비스트로스는 무려 813가지나 되는 신화 속 이야기들을 분석했고, 스스로 원시부족 사회를 여행해 그 경험을 토대로 인류학의 경전이라 불리는 ‘슬픈 열대’를 펴냈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통해 유럽 문명국 시민이든 아마존의 원시부족이든 인간 본성에 질적 차이가 없음을 밝히려 했다. 그의 노력은 오랜 세월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던 인류의 유적 동질성이라는 문제를 푸는 데 심오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세기를 넘어 나아가려는 기업은
MS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미트. 세계 IT 산업을 호령하는 이 인물들은 모두 1955년생이다. 이 신기한 공통점은 그러나 우연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칼럼니스트 말콤 글래드웰에 따르면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 대학들이 고교생에게 서버컴퓨터 접근을 허용했다. 그들은 그 기회가 다시 주어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간파했으며, 동시대인들을 압도하는 노력을 쏟아부은 끝에 정상의 기량과 안목을 터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위기는 기업이 대응해야 할 변화의 범위와 속도가 이전 시대와는 차원을 달리함을 확인시켰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시장환경이 공간적으로 세계는 물론이고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시간까지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21세기 세계경제는 ‘블랙 스완’의 저자 탈레브의 말처럼 “일견 폭발성이 감소하고 안정성이 늘어나는 듯 보이지만 취약성이 서로 결합”되는 시스템이다. 국지적 충격에도 지구촌이 요동치는 오늘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려는 기업은 이러한 시대적 특징과 향배에 무심할 수 없다.
1등이라는 현실에 안주하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룡’ 도요타의 사례는 그 반면교사다. 세기를 넘어 나아가려는 기업이 필수적으로 시대정신을 곱씹어야 하는 이유다.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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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전과 억압기제의 증가
1900년 1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나의 서평이 나왔다. 문제의 책은 “인간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놓게 될 책”으로 알려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신경병증 치료를 위한 하나의 분석방법론을 다룬 것이지만 후일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식, 즉 무의식의 존재를 밝힌 것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됐다.
지금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 억압된 자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이 이 책에서 비롯되며 20세기를 풍미한 숱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사조들이 프로이트 사상에서 단초를 얻은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문명의 발전과 함께 정신적 억압기제 또한 증가한다는 프로이트의 진단은 선구자적 예견에 비견된다.
프로이트 사상이 인류 지성사에 획을 긋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팽배한 반유대주의 분위기 속에 ‘꿈의 해석’은 학계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고, 그 뒤 8년만에 국제정신분석학회가 결성됐지만 얼마 안 가 내부 분열이 생겼다.
가장 큰 반론은 1912년 칼 융이 제기한 것인데, 융은 “리비도는 성적 본능”이라는 프로이트의 핵심 명제를 거부했다. 심지어 융은 ‘집단무의식’이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1913년 결별한 뒤 각자 자신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정신분석학의 발전은 인간 정신의 내면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이해를 끝까지 추구한 프로이트와, 그의 주장을 둘러싸고 당대 거장들 사이에 전개된 치열한 논쟁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파편화된 개인, 동질적인 인류
프란츠 카프카는 몇 안 되는 작품들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근대사회의 근원적인 불투명성을 파헤쳤다.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그이지만 “인간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그처럼 탁월하게 표현한 작가는 흔치 않다. 그의 대표작들, 즉 생전에 출판된 ‘변신’, 사후에 출판된 ‘심판’과 ‘성’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이것이다.
피터 왓슨은 미완성에 가까운 카프카의 세 작품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카프카가 현대인이 직면한 공포와 불안을 비범한 통찰로 포착했음을 의미한다.
카프카의 글들은 근대 세계에서 어떤 개인이라도 자아의 상실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 동시에, 당대 사회가 그 불안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 예언서가 됐다. 1924년 그가 죽은 뒤 유럽은 스탈린과 히틀러라는 두 독재자를 맞았고 이어 전쟁이 대륙을 휩쓸었다. 카프카는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정신적 방황을 탐구한 지적 노력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카프카가 파편화된 개인이 숙명적으로 겪는 정체성 위기를 드러냈다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어떤 개인이건 동등한 인격체임을 증명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카프카와 달리 한 세기를 온전히 살다 간 그는 신화와 부족에 대한 방대한 연구와 천착을 통해 이 일을 수행했으며 그로써 현대 인류학을 집대성하기에 이른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지구상의 모든 신화는 예외 없이 인류가 초기에 세계를 이해한 방식을 보여주며, 인간 정신의 근본적이며 무의식적인 구조를 유사한 형태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원시적 상태의 종족과 문명화된 사람들 사이에 본질적인 정신적 차이는 없다.
야만 상태의 인간은 있어도 야만인은 없으며 미개한 상태의 인간은 있어도 미개인은 없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레비스트로스는 무려 813가지나 되는 신화 속 이야기들을 분석했고, 스스로 원시부족 사회를 여행해 그 경험을 토대로 인류학의 경전이라 불리는 ‘슬픈 열대’를 펴냈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통해 유럽 문명국 시민이든 아마존의 원시부족이든 인간 본성에 질적 차이가 없음을 밝히려 했다. 그의 노력은 오랜 세월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던 인류의 유적 동질성이라는 문제를 푸는 데 심오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세기를 넘어 나아가려는 기업은
MS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미트. 세계 IT 산업을 호령하는 이 인물들은 모두 1955년생이다. 이 신기한 공통점은 그러나 우연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칼럼니스트 말콤 글래드웰에 따르면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 대학들이 고교생에게 서버컴퓨터 접근을 허용했다. 그들은 그 기회가 다시 주어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간파했으며, 동시대인들을 압도하는 노력을 쏟아부은 끝에 정상의 기량과 안목을 터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위기는 기업이 대응해야 할 변화의 범위와 속도가 이전 시대와는 차원을 달리함을 확인시켰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시장환경이 공간적으로 세계는 물론이고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시간까지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21세기 세계경제는 ‘블랙 스완’의 저자 탈레브의 말처럼 “일견 폭발성이 감소하고 안정성이 늘어나는 듯 보이지만 취약성이 서로 결합”되는 시스템이다. 국지적 충격에도 지구촌이 요동치는 오늘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려는 기업은 이러한 시대적 특징과 향배에 무심할 수 없다.
1등이라는 현실에 안주하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룡’ 도요타의 사례는 그 반면교사다. 세기를 넘어 나아가려는 기업이 필수적으로 시대정신을 곱씹어야 하는 이유다.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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