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구로공단서 노조활동 중 ‘정화대상자’로 수배
유시민, 17일 밤 11시40분에 서울대서 계엄사로 연행
한명숙 “5월 20일 광주교도소서 수감 중 총소리 들어”
오세훈, 고대 법대 2학년생으로 평범한 대학생활 보내
30년전 일어난 5·18 광주항쟁 당시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한 유력 후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서울과 경기 두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만 보면 대부분 신군부에 저항하다 고난의 길을 걸었다. 특히 경기지사 후보에 출마한 한나라당 김문수, 국민참여당 유시민,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는 모두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5월 광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인 유 후보는 1980년 5월 17일 밤 11시 40분쯤 학생회 사무실에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됐다. 유 후보는 17일 밤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정확하게 30년전 이날 이맘때쯤 서울대 학생회 상황실을 지키고 있다가 계엄사에 잡혀갔다”며 “당시 혼자 상황실을 지키면서 지방의 각 대학에서 올라오는 상황을 접수하고, 서울의 상황을 지방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1979년 12·12 쿠테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80년 5월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대학생들의 가두시위가 최고조에 이른 5월 15일 서울역 시위 이후 17일 국무회의를 열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유 후보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희생양으로 계엄사에 연행된 후 강제징집으로 군에 끌려갔다. 그는 “광주항쟁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이 반영된 우리 역사의 아픔”이라며 “지금 정치·사회 환경이 과연 광주의 정신을 완결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는 5·18 당시 노동운동을 하다가 계엄령 확대로 수배를 받았다. 서울대 경영학과 70학번인 김 후보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구속과 수배, 제적을 당했다. 70년대 중반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도루코 면도날로 유명한 한일공업주식회사에 위장취업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속노조 한일공업지회 지회장을 맡는 등 당시 민주노동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80년 초 노조활동 중 불온서적 소지 등의 혐의로 치안본부에 끌려갔다가 풀려난 김 후보는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로 이른바 ‘노동운동 정화대상자’에 올라 수배자 신세가 됐다.
김 후보측 관계자는 “김 후보는 비상계엄 확대후 예비검속 대상에 올라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수배생활을 했다”며 “당시 수배를 받으면서 수녀원 등에 몸을 숨기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민주당 한명숙 후보도 80년 광주는 극적이다. 한 후보는 광주항쟁 당시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이었다. 한 후보는 고 강원룡 목사가 주도한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1979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2심판결 이후 광주교도소로 이감됐다.
한 후보는 자서전에서 “1980년 5월 20일 아침, 요란한 총성이 광주교도소에 울려 퍼졌다. 광주교도소의 여사(女舍)는 교도소 앞 도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교도소 담장 너머 머지않은 곳에서 수많은 군중의 함성이 들려왔다”고 회고했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80년 광주항쟁 당시 대학교 2학년생으로 광주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고려대 법대에 재학중이던 오 후보는 학생운동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 후보측 관계자는 “외국어대 79학번인 오 후보는 당시 고대에 편입학해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며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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