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 마이너스, 원금가치 까먹어
은행도 “돈 들어와도 반갑지 않다”
재테크의 기본이었던 정기예금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에서도 굳이 금리를 높여 정기예금을 받을 만큼 절박하지 않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사실상 ‘제로금리’에 가까워 큰 관심을 갖기 어렵게 됐다. 초저금리시대를 상당기간 이어가면서 정기예금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다른데 투자할만한 곳도 없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정기예금에 돈을 넣고 있다.
◆돈 들어와도 운용처 없다 = “역마진이 날만한 대출에 대해서는 본부에서 승인해주지 않는다.” A 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시중은행들은 요즘 대출경쟁을 하지 않는다. B은행 모 지점 관계자는 “예전에는 다른 은행과 경쟁하느라 낮은 금리라도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경쟁을 하지 않기로 방침이 정해졌다”면서 “굳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니 대출금리가 생각보다 좀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C은행 관계자는 “개인들도 자금을 운용할 데가 없지만 은행들도 마찬가지”라며 “운용해서 수익을 올려야 이자를 줄 텐데 지금처럼 운용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는 예금이 많이 들어와도 그리 반갑지 않다”고 토로했다. ◆시중은행 예금금리 최고 3.7% = 예금금리가 더 낮아지고 특판이 없어지고 있다.
우리은행이 18일 인터넷으로 가입하고 지점장 전결금리까지 합쳐 1년만기 정기예금금리를 3.7%로 고시했다. 은행권 최고금리다. 외환은행이 3.6%였고 신한은행은 3.59%였다. 국민은행은 3.5%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1억원이상 맡기면 원금의 3.3%를 이자로 주지만 3000만원미만인 경우엔 3.0%, 3000만~1억원이면 3.1%의 이자율을 적용한다. 지점장 전결금리는 카드 펀드 주택청약종합저축통장(만능통장) 등 각종 상품을 가입한 대가로 더 부여하거나 깎아줄 수 있는 금리를 말한다.
삼성생명 청약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은행들의 경쟁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신한은행만 평소 내놓던 ELD(주식연계예금)의 이름만 바꿨을 뿐 새로운 상품을 내놓지도 않았고 고금리를 보장하는 특판예금도 내놓지 않았다. 특판예금으로 예금만기고객을 재유치하기도 했지만 요즘엔 그런 모습을 찾기도 어렵다.
◆저축은행 “예금하지 말라는 거지요” = 저축은행 역시 정기예금으로 투자자금이 들어오는 게 그리 달갑지 않다. 저축은행 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에 4.75%였던 저축은행 1년만기 정기예금 평균금리가 올 2월에 5.3%로 뛰어올랐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여전히 2%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저축은행은 자금유치를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지방미분양규모가 큰 폭으로 늘면서 저축은행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건설업 침체는 지방 저축은행들의 대출처인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저축은행들이 예금자에게 고금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부동산PF처럼 위험은 크지만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출처가 필요하다. 금감원이 나서 부동산PF규모를 줄이도록 지시했다. 자금운용이 막혔다. 돈이 들어와서 운용하기 어렵고 운용한다 하더라도 고금리를 보장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저축은행은 정기예금금리를 4월에 평균 4.65%로 낮추더니 5월엔 4.31%로 떨어졌다. 은행금리와의 격차가 1%p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이 저축은행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D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이 정도 금리를 제시한다는 것은 예금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면서 “운용할 데도 없는 자금들을 계속 유치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이자는 커녕, 원금가치 깎여 = 금융기관들이 정기예금을 박대하는 만큼 예금고객 역시 투자유인이 없다.
3.7%로 은행권 중 가장 높은 금리를 주는 우리은행에서 이자를 받는다 해도 실질금리는 ‘제로’에 가깝다. 세금우대를 받게 되면 3.3%, 세금우대 마저 없으면 3.1%다.
가장 낮은 금리를 주는 하나은행에서는 실제로 예금주가 받는 이자율은 2.5%에 그친다. 지난 4월 물가상승률은 2.6%였다.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인 셈이다.
현재와 같은 저금리기조가 이어지면 실질적으로 예금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자는 사라지고 원금가치마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안정성을 중시하는 정기예금자들은 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실질가치가 줄어들더라도 정기예금 수신고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느는 ‘기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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