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공안’문화
서종택(소설가, 고려대 명예교수)
과거 어느 사회 어느 정권에서도 자주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특히 새 정부 들어서서 부쩍 늘어난 일련의 사태들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국립 미술관 관장을 비롯, 각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에 대한 자진, 강제 사퇴가 이어지더니 방송사 PD나 아나운서에 대한 물갈이가 속도위반을 하고 정부 지원금이 관의 홍보와 행사에만 몰렸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재판에 회부하여 우리를 놀래키더니, 급기야는 학술 문화단체의 정부지원금 청구요건에 정부시책에 반하는 일체의 시위에 대한 ‘불참 확인서’ 첨부를 요구했다. 촛불집회 참여 시민단체에 정부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었고 시국선언교수에 대한 연구비 지원 불가조치 의혹이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젊은 연예인들의 수난이 이어졌다. 가수 윤도현에 대한 시비에 이어 인기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활약을 해온 김C의 하차 소식에 젊은 시청자들은 놀랐고 "하차를 고민하고 있었다. 음악인으로 돌아간다"는 해명은 팬들을 더욱 슬프게 했다. ''김제동쇼''는 첫 방송을 고지했으나 취소되었고 김제동 소속사는 "김제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사회를 맡는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제작진이 추도식 참석을 재고할 수 없겠느냐는 요청을 해왔다"고 공개했다. 결국 김제동측은 방송하차를 발표했다. 공영방송의 한 개그프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막을 내렸다. 제작진은 코너 폐지에 대해 소재 고갈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소재고갈’이 아니라 ‘소재만발’이 문제였던 것 같다. 지난 4월 여당의 한 의원이 국회 문방위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가 찝찝하다”면서 “어떻게 이 프로그램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내용의 취지도 방송의 독자성도 모두 헤아리지 못한 채 그 프로그램에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지, 이건 무식의 극치이다. 더구나 그가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이었다는 점이 참으로 이해가 안 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이 낯 붉어지는 기억 - 과거 독재시절에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했던 이 ‘공안문화’에로의 시간회귀는 무엇보다도 그 방법의 진부함과 내용의 치졸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구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영화감독의 시나리오가 작품심의에서 빵점을 받았고 그 작품이 권위있는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오판도 비평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이건 아니다. 대통령과 매우 닮은 얼굴의 어떤 배우에게 연예활동을 금지시켰다던 옛 군사정권의 행태를 생각나게 한다.
치사하다, 허지만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는가고 넘어가는 것도 이제 우리는 지쳤다. 세간에 ‘웃긴다’는 말이 있고 ‘웃기지도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더 웃기는가? ‘웃기지도 않는다’가 그 대답일진데, 우리는 이 ‘웃기지도 않은’ 세월을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야 할 것인지 걱정이다. 우리들의 그동안의 삶이 지배와 통제에 익숙해 있었고 이것들은 모두 그 슬픈 잔재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유머와 풍자는 하나의 즐거운 굿판이자 쇼이다. 우리들의 삶에 대한 농담과 야유가 허용되지 않은 사회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풍자와 유머는 그것과 함께 삶의 무게와 비애를 함께 사상해 주는 소통의 수사학이다. 풍자가 허용되지 않은 사회, 굿판이 마련 되어있지 않은 축제란 상상할 수 없다.
권력은 그 속성보다는 그 품격에서 빛을 발하거나 어둠을 몰고 오거나 한다. 어차피 권력은 개인과 집단의 역학관계가 만들어낸 부산물이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종종 따르게 되는 횡포의 한 사례이기는 하지만, 힘에 의해 유지되는 권력은 또 다른 권력에 의해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선을 위해 행사되지 않은 어떠한 권력도 악의 편이다. 잘못 사용된 권력은 권리의 포기이고 함부로 사용된 권력은 폭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음모와 결탁했을 때는 이미 권력이 통제력을 잃었음을 자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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