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 하나 지켜주지 못하나?
강화 화문석마을, 평창 눈꽃마을, 땅끝 해뜰마을 …. 각종 ‘마을 만들기’가 일종의 유행이다. 피폐해진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수십억씩 돈을 들이며 마을개발사업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다른 한쪽에선, 그나마 남아 있는 전통마을, 주민들이 애써 가꾼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일들이 벌어지니 말이다. 그곳에서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강수돌 교수가 쓴 ‘나부터 마을혁명’은 강 교수가 이웃들과 함께 조치원 신안1리 전통마을을 지키려 5년간 치러야 했던 싸움의 기록이다. 고려대 세종 캠퍼스에 부임한 강 교수 가족은 1999년 신안마을에 귀틀집을 짓고 정착했다.
그런데 2005년 ‘행정도시특별법’이 통과되며 이 조용한 마을에 개발과 투기의 광풍이 불어닥친다. 논밭과 과수원을 파헤쳐 최고 20층 12동의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원래 저층 위주의 생태적 대학문화타운 지역이던 도시계획이 주민들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서류와 엉터리 교통영향평가를 내세워 고층아파트 지역으로 바뀌었다. 강 교수와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군청과 도청, 청와대와 국회를 찾아가 시위를 벌이고, ‘도시계획 결정처분 취소’ ‘고층아파트 사업승인 취소’ 소송까지 했으나 패소했다. 그런데 2007년초 시작된 공사는 2009년 하반기 제 스스로 중단됐다. 분양률이 2%에도 못 미쳐 시공사가 철수해버린 것이다.
이 싸움을 거치며, 흉물스런 시멘트 골조가 남긴 했지만, 신안마을은 활기 넘치는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 주민들과 이웃 고려대 홍익대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신안리 골목축제’가 흥을 돋우고, 마을회관에서는 어린이들의 글쓰기 교실이 열린다. 2500여권의 책을 갖춘 마을도서관도 만들어냈다.
싸움하며 가꾼 살맛나는 마을
서울 마포구의 ‘도심 속 살맛나는 성미산마을’이 2003년 ‘배수지 건설 저지’싸움을 통해 살아있는 공동체로 자라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밀집된 주택가 한가운데 겨우 남아있는 해발 66m 넓이 4만평의 ‘손바닥만한’ 성미산. 하지만 마포구의 유일한 자연숲이자, 남녀노소 주민들의 휴식처인 성미산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긍지는 대단하다.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배수지가 실제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지켜낸 성미산이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만든 4개의 어린이집, 방과 후 교실, 대안학교, 두레 생협, 반찬가게 ‘동네 부엌’, 자동차 정비소 ‘차병원’, 주민방송, 마을 극장, 유기농 카페 등에서 어울리며 재미나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동력이 거기서 나왔다.
그 성미산마을 사람들이 최근 또 다시 싸움에 돌입했다. 성미산 한쪽을 허물고 홍익 초등학교와 여중고교를 짓는 공사가 시작된 때문이다. 굴삭기가 들어와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쓰러뜨린 지난달 8일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 텐트를 치고 더 이상 훼손하지 못하게 24시간 산을 지키고 있다.
성미산의 남쪽 땅은 홍익재단 소유다. 언뜻, 사유지에 소유주인 재단이 학교를 짓는 걸 누가 뭐랄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그렇지가 않다. 본래 그 땅은 체육시설부지였다. 그리고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서울시의회에 ‘성미산 생태근린공원 지정에 관한 청원’을 내 놓은 상태다. 지형이 학교가 들어서기엔 너무 경사가 심할뿐더러, 바로 옆에 있는 성서초등학교와 경성중고교 성미산학교의 좁은 통학로가 사립 홍익초교의 스쿨버스와 통학 자가용들로 위협받을 상황이다. 그래서 서울시장도 학교신축을 위한 대체 부지 마련을 언급했다. 헌데 그 직후 열린 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체육시설부지를 학교부지로 용도변경하고, 시 교육청은 학교건축 인가를 내준 것이다. 지난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자연숲 헐고 생태학교 짓는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마을 사람들은, 서울시 교육감에게 학교시설 승인 및 건축허가를 재심의하라고, 홍익학원에 신축공사를 중지하라고, 서울시장에겐 대체부지를 마련하라고, 그리고 성미산 전체를 자연숲 그대로 생태공원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선5기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는 주민들의 이런 절실한 바람조차 들어줄 수 없는 걸까? 성미산 하나 지켜줄 수 없는 걸까?
언론인·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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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화문석마을, 평창 눈꽃마을, 땅끝 해뜰마을 …. 각종 ‘마을 만들기’가 일종의 유행이다. 피폐해진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수십억씩 돈을 들이며 마을개발사업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다른 한쪽에선, 그나마 남아 있는 전통마을, 주민들이 애써 가꾼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일들이 벌어지니 말이다. 그곳에서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강수돌 교수가 쓴 ‘나부터 마을혁명’은 강 교수가 이웃들과 함께 조치원 신안1리 전통마을을 지키려 5년간 치러야 했던 싸움의 기록이다. 고려대 세종 캠퍼스에 부임한 강 교수 가족은 1999년 신안마을에 귀틀집을 짓고 정착했다.
그런데 2005년 ‘행정도시특별법’이 통과되며 이 조용한 마을에 개발과 투기의 광풍이 불어닥친다. 논밭과 과수원을 파헤쳐 최고 20층 12동의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원래 저층 위주의 생태적 대학문화타운 지역이던 도시계획이 주민들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서류와 엉터리 교통영향평가를 내세워 고층아파트 지역으로 바뀌었다. 강 교수와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군청과 도청, 청와대와 국회를 찾아가 시위를 벌이고, ‘도시계획 결정처분 취소’ ‘고층아파트 사업승인 취소’ 소송까지 했으나 패소했다. 그런데 2007년초 시작된 공사는 2009년 하반기 제 스스로 중단됐다. 분양률이 2%에도 못 미쳐 시공사가 철수해버린 것이다.
이 싸움을 거치며, 흉물스런 시멘트 골조가 남긴 했지만, 신안마을은 활기 넘치는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 주민들과 이웃 고려대 홍익대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신안리 골목축제’가 흥을 돋우고, 마을회관에서는 어린이들의 글쓰기 교실이 열린다. 2500여권의 책을 갖춘 마을도서관도 만들어냈다.
싸움하며 가꾼 살맛나는 마을
서울 마포구의 ‘도심 속 살맛나는 성미산마을’이 2003년 ‘배수지 건설 저지’싸움을 통해 살아있는 공동체로 자라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밀집된 주택가 한가운데 겨우 남아있는 해발 66m 넓이 4만평의 ‘손바닥만한’ 성미산. 하지만 마포구의 유일한 자연숲이자, 남녀노소 주민들의 휴식처인 성미산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긍지는 대단하다.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배수지가 실제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지켜낸 성미산이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만든 4개의 어린이집, 방과 후 교실, 대안학교, 두레 생협, 반찬가게 ‘동네 부엌’, 자동차 정비소 ‘차병원’, 주민방송, 마을 극장, 유기농 카페 등에서 어울리며 재미나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동력이 거기서 나왔다.
그 성미산마을 사람들이 최근 또 다시 싸움에 돌입했다. 성미산 한쪽을 허물고 홍익 초등학교와 여중고교를 짓는 공사가 시작된 때문이다. 굴삭기가 들어와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쓰러뜨린 지난달 8일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 텐트를 치고 더 이상 훼손하지 못하게 24시간 산을 지키고 있다.
성미산의 남쪽 땅은 홍익재단 소유다. 언뜻, 사유지에 소유주인 재단이 학교를 짓는 걸 누가 뭐랄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그렇지가 않다. 본래 그 땅은 체육시설부지였다. 그리고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서울시의회에 ‘성미산 생태근린공원 지정에 관한 청원’을 내 놓은 상태다. 지형이 학교가 들어서기엔 너무 경사가 심할뿐더러, 바로 옆에 있는 성서초등학교와 경성중고교 성미산학교의 좁은 통학로가 사립 홍익초교의 스쿨버스와 통학 자가용들로 위협받을 상황이다. 그래서 서울시장도 학교신축을 위한 대체 부지 마련을 언급했다. 헌데 그 직후 열린 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체육시설부지를 학교부지로 용도변경하고, 시 교육청은 학교건축 인가를 내준 것이다. 지난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자연숲 헐고 생태학교 짓는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마을 사람들은, 서울시 교육감에게 학교시설 승인 및 건축허가를 재심의하라고, 홍익학원에 신축공사를 중지하라고, 서울시장에겐 대체부지를 마련하라고, 그리고 성미산 전체를 자연숲 그대로 생태공원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선5기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는 주민들의 이런 절실한 바람조차 들어줄 수 없는 걸까? 성미산 하나 지켜줄 수 없는 걸까?
언론인·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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