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등 중동 지역 곳곳에서 반미 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내분의 사태로까지 그 여파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공습을 지지하는 자국 정부와 반대의 입장에 있는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이 격렬한 반발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일부 국가들의 충돌이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팔레스타인에서는 그 수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9일 미국 대사관 주변에 모인 시위대가 격렬한 반미 시위를 벌였다. 이슬람수호전선인 100여명의 대원들과 수백명의 시위대들이 미국 대사관으로 접근을 시도하자 경찰은 경고 사격까지 가할 정도로 상황은 위기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다.
체루가스와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을 향해 성난 군중들이 투석전을 벌이는 등 양자간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하고 있다.
이슬람수호전선은 정부가 미국 및 동맹국들과 사흘내로 외교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다면 인도네시아 내 미국 시설물을 공격하고 미국인들을 강제 추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슬람청년운동(GPI)을 비롯한 과격 이슬람 단체들은 지하드(성전)을 위해 지원자 3000여명을 아프간으로 파견할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어 상황은 단시간내에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부는 아프간 공습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분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산 외라유다 외무장관은 8일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의 군사공격 감행은 우려되는 상황라며 "민간인 희생자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우회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이어 성명은 "국민들은 아프간 공습으로 인해 평화와 질서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이슬람 세력들의 강한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메가와티 대통령이 최근 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약속받은 상태에서 이들의 입장에 동조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양자간 무력 충돌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상황도 위태롭다. 아프간 공격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들의 시위가 최악의 내부 충돌로 번지고 있다. 8일 이슬람 무장단체들과 아세르 아라파트 수반이 이끄는 자치정부의 심한 마찰 속에서 2명이 죽고 200여명이 부상하는 유혈충돌이 발생했다.
평화협상 결렬 이후, 반이스라엘 봉기를 해온 아라파트 수반과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양자간의 시각 차이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내 무장단체들은 이스라엘과의 휴전협정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며 아라파트에게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 또 9.11 미국 공격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이슬람 세력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무력 투쟁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주민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도모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퀘타에서는 8일 반미 시위가 벌어져 이슬람 급진학생과 급진단체원 1만5000여명이 극장, 경찰서, 소방서, 유엔아동기금 건물 등에 방화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경찰에 의해 200여명이 구금 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파키스탄 최대 이슬람정당인 자미앗-울 이슬라미(JUI)를 중심으로 총 700여개 이슬람 급진단체들은 오는 12일 전국적 봉기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이 지역이 내전으로 휩싸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의 공격이 '오로지 테러와의 전쟁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국민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시위대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이슬람들은 이를 신뢰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슬람 급진 단체들은 대부분 독자적인 민병대 병력을 갖고 있다. 이들이 극단적으로 폭발할 경우 향후 시위는 내전으로 치닫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키스탄 내 이슬람 단체들은 미국의 공격이 곧 '이슬람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정부의 친미 정책은 결국 이슬람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탄시 JUI 지부장 하파즈 후세인은 "미국의 미사일이 나중에는 파키스탄에도 떨어질 것"이라며 "정부의 대미 협력은 이슬람을 말살하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미'라는 동일한 정서 외에도 아프간과 동일한 파슈툰족이라는 종족적 일체감이 작용하는 힘도 매우 클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일부 도시에 준 계엄령을 선포하는 동시에 이슬람 수호위원회의 사미울 하크 의장과 다른 급진단체인 사파리-사하바의 아짐 타리크 의장 등 핵심간부들을 체포하는 등 대대적인 검거에 돌입했다.
이숙현 기자 s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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