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버지의 꿈과 사랑”
김상홍 지음 / 글항아리
발문
다산은 따뜻한 아버지의 정이 있었기에 그것을 나라와 백성에게로 확산시킬 수 있었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재주가 없느냐. 눈과 귀가 총명하지 못하느냐. 무엇 때문에 자포자기하려 드는 것이냐.” 요즘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자녀에게 게으름을 꾸짖으며 하는 말 같다. 200년쯤 전에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했던 말이다.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기러기 아빠라도 되길 불사하는 이 시대 부모들이라면 ‘부모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군’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처자식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다산이야 말로 원조 기러기 아빠다.
‘다산 정약용’ 하면 실학을 집대성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문을 완성해 조선후기 학술문화사를 찬란하게 빛낸 큰 학자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다산도 학자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며 아버지였을 터, 20년 가까운 기간 유배생활까지 해야 했던 죄인의 처지에 도대체 자녀교육이 가능은 했을지, 했다면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어떤 아버지였는지 궁금해진다.
다산학 연구의 권위자인 김상홍 교수가 지은 이 책은 다산이 위대한 학자로서의 위상에 가려 우리가 잘 볼 수 없었던 아버지로서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척박한 유배지에서 자식들을 혹독하게 원격 교육한 강인한 아버지, 가난 속에서도 도덕성을 지킨 아버지, 9명의 자녀 중 6명의 자녀를 가슴에 묻은 아버지,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며느리를 둔 시아버지,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킬 후계자로 여겼던 조카 두 명을 잃은 작은아버지 다산의 따뜻한 사랑과 정, 그리고 시리고도 아린 슬픔과 한을 그의 학문적 생애와 연관시켜 조명하였다.
가난 때문에 평소 제대로 먹이지를 못해 아이들은 쉽게 병에 걸렸고 병을 이겨낼 힘이 없어 요절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그가 유배지로 떠난 후의 삶은 또 오죽했겠는가? 고향에 남겨놓은 어린 자식들이 늘 걱정되던 다산은 편지를 통해서나마 자식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자 애썼는데 이때 남긴 편지와 심정을 나타낸 시들은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다산 정약용은 위대한 학자이기 이전에 아버지였고 너무나 비극적인 아버지였다. 유배 죄인으로 아들의 과거 길을 막은 아버지는 자녀교육 문제에 누구보다 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먹고 입는 것조차 어려운 지독한 가난을 괴로워하였으며, 자녀 9명 중에 6명을 제대로 보듬어 주지도 못한 채 떠나보냈다. 오랜 유배생활이 끝나가고 고향에 돌아갈 날이 다가올 즈음 젊은 며느리가 요철하고 어린 조카들이 연이어 세상을 뜨는 허망한 인생사에 가슴을 쳤다.
그러나 아버지 다산은 괴로워만 하지 않았으며, 가슴만 치지 않았다. 궁핍한 유배지에서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때로는 다정하게 더러는 혹독하게 편지와 가계(家誡 : 집안사람들에게 경계하게 하는 글)로 자식들을 가르쳐 내일을 도모했다.
또한 요절한 자식과 젊은 나이에 가버린 며느리와 어린 조카들을 기록으로 남겨 하늘나라로 먼저 간 슬픈 영혼들을 위로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이 이를 알게 하였다. 이렇게 다산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아버지였다.
저자는 다산이 이러한 시리고도 아린 슬픔과 한, 따뜻한 아버지의 정이 있었기에 그것을 나라와 백성에게로 확산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며, 가정과 사회에서 날로 왜소해져 가는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며 아버지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는 부모로서 어떻게 자녀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 기본자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생각거리들이 있으며, 부정(父情)의 아름다운 세계를 다산이라는 훌륭한 거울을 통해 비춰보는 기쁨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김상홍 지음 / 글항아리
발문
다산은 따뜻한 아버지의 정이 있었기에 그것을 나라와 백성에게로 확산시킬 수 있었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재주가 없느냐. 눈과 귀가 총명하지 못하느냐. 무엇 때문에 자포자기하려 드는 것이냐.” 요즘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자녀에게 게으름을 꾸짖으며 하는 말 같다. 200년쯤 전에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했던 말이다.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기러기 아빠라도 되길 불사하는 이 시대 부모들이라면 ‘부모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군’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처자식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다산이야 말로 원조 기러기 아빠다.
‘다산 정약용’ 하면 실학을 집대성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문을 완성해 조선후기 학술문화사를 찬란하게 빛낸 큰 학자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다산도 학자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며 아버지였을 터, 20년 가까운 기간 유배생활까지 해야 했던 죄인의 처지에 도대체 자녀교육이 가능은 했을지, 했다면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어떤 아버지였는지 궁금해진다.
다산학 연구의 권위자인 김상홍 교수가 지은 이 책은 다산이 위대한 학자로서의 위상에 가려 우리가 잘 볼 수 없었던 아버지로서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척박한 유배지에서 자식들을 혹독하게 원격 교육한 강인한 아버지, 가난 속에서도 도덕성을 지킨 아버지, 9명의 자녀 중 6명의 자녀를 가슴에 묻은 아버지,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며느리를 둔 시아버지,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킬 후계자로 여겼던 조카 두 명을 잃은 작은아버지 다산의 따뜻한 사랑과 정, 그리고 시리고도 아린 슬픔과 한을 그의 학문적 생애와 연관시켜 조명하였다.
가난 때문에 평소 제대로 먹이지를 못해 아이들은 쉽게 병에 걸렸고 병을 이겨낼 힘이 없어 요절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그가 유배지로 떠난 후의 삶은 또 오죽했겠는가? 고향에 남겨놓은 어린 자식들이 늘 걱정되던 다산은 편지를 통해서나마 자식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자 애썼는데 이때 남긴 편지와 심정을 나타낸 시들은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다산 정약용은 위대한 학자이기 이전에 아버지였고 너무나 비극적인 아버지였다. 유배 죄인으로 아들의 과거 길을 막은 아버지는 자녀교육 문제에 누구보다 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먹고 입는 것조차 어려운 지독한 가난을 괴로워하였으며, 자녀 9명 중에 6명을 제대로 보듬어 주지도 못한 채 떠나보냈다. 오랜 유배생활이 끝나가고 고향에 돌아갈 날이 다가올 즈음 젊은 며느리가 요철하고 어린 조카들이 연이어 세상을 뜨는 허망한 인생사에 가슴을 쳤다.
그러나 아버지 다산은 괴로워만 하지 않았으며, 가슴만 치지 않았다. 궁핍한 유배지에서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때로는 다정하게 더러는 혹독하게 편지와 가계(家誡 : 집안사람들에게 경계하게 하는 글)로 자식들을 가르쳐 내일을 도모했다.
또한 요절한 자식과 젊은 나이에 가버린 며느리와 어린 조카들을 기록으로 남겨 하늘나라로 먼저 간 슬픈 영혼들을 위로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이 이를 알게 하였다. 이렇게 다산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아버지였다.
저자는 다산이 이러한 시리고도 아린 슬픔과 한, 따뜻한 아버지의 정이 있었기에 그것을 나라와 백성에게로 확산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며, 가정과 사회에서 날로 왜소해져 가는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며 아버지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 책에는 부모로서 어떻게 자녀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 기본자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생각거리들이 있으며, 부정(父情)의 아름다운 세계를 다산이라는 훌륭한 거울을 통해 비춰보는 기쁨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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